독일의 베를린 하면, 아직도 베를린 장벽이 먼저 떠오른다. 그 감흥 때문인지 도시 분위기도 좀 우중충해 보인다. 물론 비가 온 날씨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내부를 들어가 보면, 선진국의 여유로움과 훌륭한 시민의식 등을 순간마다 경험하게 된다. 한국인이라면 통일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이다. 슈프레 강변에 남아 있는 1.3km 길이의 베를린 장벽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지금은 오픈 갤러리로 탈바꿈되어 있다. 유명한 ‘형제의 키스’ 앞에는 너도나도 사진찍기 바쁘다. 러시아 출신 디미트리 브루벨의 작품이며,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 서기장 호네커의 입맞춤 장면을 희극적으로 표현했다. 이곳에는 전 세계 21개국의 118명의 작가가 자유와 평화를 기원하며 벽화를 그렸다. 이 갤러리는 S-bahn Ostbahnhof 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 정도 소요된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맞은편에는 O2 World 경기장이 있다.
더블린에서 홈스테이할 때 내 옆방에 독일인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그는 저녁 시간마다 영어로 본인이 사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전해줬다. 그런데 동네 이름을 매번 들어도 내겐 생소한 곳이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그에게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Berlin. 베를린이었다. 제일 중요한 퍼즐 조각을 알아낸 이후, 그의 도시 자랑이 뒤늦게 이해됐다. 참고로 그는 항상 Berlin을 ‘버-ㄹ린’이라 발음했고, 내가 ‘베를린’이라고 하니 신기한 눈치였다. 독일인 친구는 베를린이 다른 지역의 맥주보다 덜 알려졌다고 내게 전언했다. 독일은 맥주로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베를린의 맥주는 국내용 정도라고 폄하했다. 그 말은 내게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꿔 말하면, 독일의 레어템 맥주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도시 국가들은 미슐랭 스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베를린 역시 마찬가지다. 소박하고 내실 있는 술집과 레스토랑이 거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디케 비르틴 Dicke Wirtin. 독일어로 ‘뚱뚱한 아줌마’란 뜻이다. 그러나 들어가 보면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그리 풍채가 좋지 않았다. S-bahn 지하철을 타고 Savignyplatz역에 내리면 이 펍을 만날 수 있으며, 베를린 동물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이곳은 그가 추천한 펍 중의 한 곳이다. 펍이라기 보다는 독일 가정식 레스토랑이라고 더 알려졌다. 그러나 내 눈에는 맥주 탭과 바 위에 진열해 놓은 각종 브랜디만 보였다. 이 집 브랜드에 맞는 와인과 브랜디를 제공한다고 한다. 채워진 자리들을 스캔해보니, 로컬과 여행객들이 적당히 섞여 앉아 있었다. 오자마자 주인장에게 손짓으로 ‘그 맥주’를 달라는 로컬과 메뉴판 공부하고 있는 여행객… 난 당연히 후자의 입장에서 베를린의 첫 맥주맛을 고대했다. 이곳은 시쳇말로 가성비가 높은 레스토랑이다. 주인은 저렴한 가격에 예술가와 학생이 먹을 수 있는 수프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채소와 허브 향이 강한 소시지 요리와 베를린 감자 수프가 4.5유로 정도였다. 술과 요리 모두 주인의 철학이 담긴 레스토랑이었다.
이제 베를리너 킨들을 제조한 곳으로 이동했다. 일반 여행지도 중요하지만, 난 1곳이라도 베를린의 맥주 브루어리를 방문하고 싶었다. 호스텔에서 열심히 구글링한 결과, 너무나 쉽게도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베를리너 킨들 맥주는 베를린에서 가장 많이 수요되는 맥주다. 호스텔 직원에게 이곳의 이동수단을 물어보니, 다행히도 한 번에 가는 트램 노선이 있었다. M13을 타서, Betriebshof Indira-Gandhi-Str.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고 적어줬는데, 독일어에는 문외한이라 앞글자 몇 개만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입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