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와인과 각종 주류, 관련 기사를 검색하세요.

3월 17일, 성 패트릭스 데이 축제와 기네스

3월 17일, 성 패트릭스 데이 축제와 기네스

염태진 2023년 3월 15일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맥주를 좋아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기독교의 성인을 기리는 축제에 유독 특별한 맥주를 마신다는 것입니다. 가령 모든 성인의 축일(All Saint’s Day)의 전날에 즐기는 축제 할로윈 데이에 펌킨 에일을 마시거나, 아일랜드의 성인을 기리는 성 패트릭스 데이(St. Patrick’s Day) 축제에 기네스를 마시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한편, 천주교 신자들에게 자기 세례명의 주인이 되는 성인 중에 맥주와 관련된 인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예를 들자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종하기 전에 상당한 알코올음료를 마셨고, 개종 후 양조업자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성 베네딕투스는 베네딕트 수도원을 설립하고 수도사가 지켜야 할 규칙을 정립했는데, 이 규칙 중에는 수도사가 일을 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맥주를 만들고 대중에게 나눠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서양에서 기독교 성인과 맥주를 연결 짓는 일화는 무수히 많으며, 기독교 성인을 기리고 맥주를 마시는 축제는 오래된 전통입니다.

[시카고에서는 성 패트릭스 데이에 도시를 흐르는 강을 녹색으로 물들입니다.]

다가오는 3월 17일은 성 패트릭스 데이입니다. 성 패트릭스 데이는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한 파트리치오(영어 이름으로 패트릭) 성인을 기리는 축제입니다. 이날을 기념하여 아일랜드와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축제를 벌입니다. 아일랜드에서는 더블린의 오코넬 거리에서 녹색 의상을 입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가두행진을 하고,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를 중심으로 기네스 맥주를 마시면서 축제를 즐깁니다. 이날에만 관광객을 포함하여 백만 명 이상이 축제에 참여하고 축제는 5일 동안 계속됩니다.

미국의 축제 규모는 더욱 놀랍습니다.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미국 전역에 성 패트릭스 데이를 퍼트렸습니다. 시카고에서는 시카고를 가르는 강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이는데, 굉장한 장관입니다. 또한 하루 종일 녹색의 음료를 마시고, 녹색의 음식을 먹습니다.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성 패트릭스 데이 가두행진을 개최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에서 성 패트릭스 데이를 기념합니다.

[뉴욕은 성 패트릭스 데이 가두행진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했습니다.]

성 패트릭스 데이에 기념하는 파트리치오란 어떤 인물일까요? 그가 왜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일랜드는 기원전 100년경 유럽 대륙에서 넘어간 켈트족이 정착한 지역입니다. 켈트족의 하나인 게일족이 게일어를 쓰면서 그 전통이 이어진 나라가 아일랜드입니다. 반면, 파트리치오는 4세기경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파트리치오는 웨일스 지방의 부유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한 생활을 하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16살에 끔찍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 지방에 침입한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아일랜드로 끌려간 것입니다. 파트리치오는 아일랜드에서 6년간의 노예 생활을 하며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에게 항상 기도하며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항구에 배가 준비되어 있으니 탈출하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극적으로 아일랜드를 탈출에 영국으로 되돌아갑니다.

영국에 돌아온 파트리치오는 사제의 길을 걷기로 하고, 현재의 프랑스인 갈리아 지방의 교회에 들어가 주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파트리치오는 밤마다 이상한 꿈을 꾸며 신의 계시를 듣게 됩니다. 그 꿈은 아일랜드로 돌아가 아일랜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일랜드의 노예 생활은 씻기 힘든 고통의 기억인데 힘들게 탈출한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가라니, 파트리치오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지만, 신의 계시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서기 435년, 파트리치오는 아일랜드로 건너가 게일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이때 게일족에게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한 마땅한 방법을 찾는 중 주변에 흔하게 피어 있는 세 잎 클로버를 보고 이에 비유해 삼위일체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런 계기로 세 잎 클로버는 아일랜드의 국화가 되었고 초록색은 아일랜드의 상징색이 되었습니다.

한편 파트리치오는 신앙생활 중에도 맥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그때의 맥주는 현대의 맥주와는 달랐겠지만, 그래도 귀리와 보리로 만든 맥주일 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트리치오의 동료 수도사 중에는 양조를 전문으로 하는 브루마스터가 있었습니다. 그 수도사의 이름은 메스칸(mescan)입니다. 파트리치오는 순례 여행 중에도 메스칸을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맥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파트리치오는 5세기경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파트리치오는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고 461년 3월 17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3월은 봄의 계절이고, 봄의 색깔은 초록입니다. 후세의 사람들은 파트리치오를 성인으로 추앙하고 매년 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녹색 옷을 입고 맥주를 마시면서 축제를 즐깁니다.

성 패트릭스 데이에는 전 세계에서 기네스를 마십니다. 아일랜드에서는 기네스가 처음 생긴 1759년부터 축제에 기네스를 마셨습니다. 미국에 기네스가 처음 수입된 해는 1817년인데, 이때부터 축제에 기네스를 마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때의 맥주는 지금의 기네스와는 조금 다른 맥주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축제에서 주로 마시는 질소가 가득한 크리미한 기네스 드래프트는 1959년에 새롭게 개발된 맥주입니다.

[성 패트릭스 데이에는 기네스를 마십니다. 이날을 위해 특별히 양조된 녹색의 기네스를 마시기도 합니다.]

기네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기네스는 어떻게 아일랜드의 국민 맥주가 되었을까요? 기네스를 세운 아서 기네스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아버지부터 기네스의 전통은 시작됩니다.

아서 기네스의 아버지 러처드 기네스는 아일랜드 킬데어 지방에서 대주교의 집사로 일했습니다. 집사의 일이 주로 가축을 돌보고 농작물을 재배하고 건물을 관리하는 일이었지만, 그의 일 중에는 맥주를 양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흑맥주는 품질이 뛰어났고 주변에 평판이 좋았습니다. 그의 맥주를 마시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맥주 양조 비법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이를 아들 아서에게만 전수하였습니다.

아서는 대주교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읽고 쓰는 법과 산수를 배우면서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두루 갖추었고, 틈틈이 아버지의 맥주 양조를 도우며 맥주 실력을 쌓았습니다. 이때부터 이미 기네스 맥주의 전통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서 기네스는 아버지의 맥주 레시피와 대주교가 남겨진 유산으로 맥주 양조장을 세웠습니다.]

대주교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동안 충실히 일한 아서에게 100파운드를 남겨 주었습니다. 이는 당시 4년 치의 월급에 해당하는 큰돈이었습니다. 아서는 이 돈을 기반으로 더블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레익슬립(Leixlip)이라는 곳에 작은 양조장을 차렸습니다. 드디어 양조장의 꿈을 이룬 아서는 이곳에서 5년간 일하면서 양조 실력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맥주 양조를 단순히 생계유지 수단이 아닌 도덕적 사명감으로 여긴 아서는 더블린에 더 큰 양조장을 지을 결심을 하게 됩니다.

당시는 한창 유행했던 진의 부정적인 문제가 부각되고, 반대급부로 맥주가 뜨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진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 정신은 피폐해졌고 게으르고 이기적이며 난폭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맥주는 건강하고 안전하며 사회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음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서는 이런 맥주 사업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고 더블린으로 이주했습니다.

[1759년, 아서 기네스는 리피 강변에 위치한 성 제임스 게이트에 양조장을 설립했습니다.]

1759년, 아서는 드디어 리피 강변에 위치한 성 제임스 게이트에 양조장을 설립했습니다. 중세의 더블린은 성문이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더블린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남서쪽의 오래된 성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성문 옆에는 제임스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을 성 제임스 게이트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에는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의 맥주 양조장이 있었습니다. 양조장은 작고 설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사용이 중단되어 있었지만, 주변에 리피 강과 축제에 사용하는 우물이 있고 교통수단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맥주 사업에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서는 이곳을 계약금 100파운드를 내고 9천 년간 매년 45파운드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임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런 대여 계약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독특한 계약으로 기네스를 말할 때 항상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서는 더블린의 양조장에서 에일 맥주와 포터 맥주 두 가지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한때 영국의 가격 통제 정책 때문에 에일 맥주만 생산한 적도 있었지만, 포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져, 1799년을 기점으로 에일 맥주 생산을 중단하고 포터 맥주 생산에만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아서 기네스는 성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을 계약금 100파운드를 내고 9천 년간 매년 45파운드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임대 계약했습니다.]

아서는 양조장을 아들인 아서 기네스 2세에게 물려주고 1803년 1월 23일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네스는 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잇다가 현재는 영국의 다국적 주류 회사인 디아지오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759년에 보잘것없는 작은 양조장에서 출발한 기네스가 26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양조장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기네스가 아일랜드의 전통과 애국심에 호소하며 아일랜드의 국민 맥주로서 자리 잡은 계기 중의 하나는 아일랜드의 전통 악기인 하프를 기네스의 로고로 채택한 것입니다. 이때는 아서 기네스의 손자인 벤저민 기네스가 경영하던 시기였습니다. 벤저민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로 그가 하프를 로고로 선택한 것은 대단한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이 하프는 트리니티 대학에 보관된 하프로 일명 브라이언 보루(Brian Boru) 하프라고 합니다.

아일랜드는 과거 11세기 초까지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고, 게일족 왕국과 바이킹 왕국 등 여러 왕국이 난립해 있었습니다. 브라이언 보루는 아일랜드 남부의 먼스터 왕국의 왕이었는데, 1006년 바이킹 왕국을 몰아내고 아일랜드에 최초의 통일된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를 ‘왕 중의 왕’이라고 해서 하이킹(High King)이라고 부릅니다. 하프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존경 받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아일랜드 사람들이 하프에 가지는 애착은 남다르며 국민들의 자부심이 새겨진 물건입니다. 하프를 로고로 채택하자 기네스의 매출은 덩달아 크게 올라갔습니다.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해외로 이주한 아일랜드 사람들이 애국심의 표현으로 기네스를 많이 마시게 된 것입니다.

[기네스는 브라이언 보루 하프를 로고로 채택하여 아일랜드 국민 맥주 마케팅에 성공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벤저민은 성 패트릭 성당의 복구를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성 패트릭 성당은 파트리치오가 순례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 사용했던 우물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성당입니다. 1192년에 세워진 이래로 아일랜드 기독교의 역사적인 상징이며 아일랜드 국민들의 종교적 자부심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이 1860년쯤에는 너무 낡고 허름해져 무너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를 가만히 볼 수 없었던 벤저민은 현재의 시가로 400만 달러에 해당하는 큰 자금을 내놓고 성당 재건을 직접 감독하며 성당의 보수가 끝날 때까지 진두지휘했습니다. 성 패트릭 성당은 이제 아일랜드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벤저민과 기네스의 아낌없는 후원 덕택으로 성 패트릭 성당은 되살아났고, 벤저민은 국민적인 영웅으로 기네스는 국민 맥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3년 성 패트릭스 데이 축제는 3월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열립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는 올해의 성 패트릭스 데이 축제를 3월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개최한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축제가 2022년 이후부터 다시 개최된 것입니다.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성 패트릭스 데이를 기념하며 기네스를 마십니다. 이 기간 전 세계 150개 이상의 나라에서 기네스를 마시는데, 코로나 전의 보고서에 의하면 총 1,300백만 파인트 잔이 하루에 소비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이 초록으로 물드는 봄, 또 하나의 축제에 우리는 맥주 마실 준비가 되었을까요?

Tags:
염태진

맥주인문학서 저자. 맥주로 내장도 채우고 뇌도 채우며 '날마다 좋은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 iharu@kakao.com / 인스타 iharu04 / 브런치 https://brunch.co.kr/@iharu

  • 1

You Might also Like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