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자스(Alsace) 와인은 치명적인 아로마 매력으로 우리의 코와 혀를 자극한다. 나의 첫 알자스 와인은 트림바흐(트림바크, Trimbach)였는데, 포도 품종이 리슬링(Riesling)이었는지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한 것은 싱그러우면서도 꽃이 아른거렸다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바디감에 살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실, 알자스 와인 산지하면 드라이 리슬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이곳은 리슬링 이외에도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블랑(Pinot Blanc), 피노 그리(Pinot Gris), 실바네르(Sylvaner), 피노 누아(Pinot Noir), 뮈스카(Muscat) 등이 자란다. 포도 품종만 보고 벌써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이곳은 레드보다는 화이트 와인이 더 많이 생산된다. 90% 이상!
알자스 와인은 보통 친절하게 어떤 품종을 사용했는지 레이블에 적는데, AOC 규정에 따라 알자스 AOC는 해당 포도 품종을 100% 사용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알자스 와인에 Riesling이라고 적혀 있으면 리슬링 100%구나! 아~ 이렇게 명확한 거 좋지 않나요?) 국가별/지역별로 상이한 규정을 적용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느슨한 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나 지역은 75% 이상이면 해당 포도 품종 표기를 허용하기도 한다. 여러 포도 품종을 섞으면? 블렌딩한 경우에는 정띠(Gentil)와 같이 다른 이름을 표기해야 한다. 가령, 위겔 정띠(Hugel Gentil)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을 듯이 단일 품종이 아니라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 리슬링, 뮈스카 그리고 실바네르 품종을 블렌딩하여 만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알자스 와인에도 부르고뉴(Bourgogne) 와인과 같은 그랑 크뤼(Grand Cru)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알자스에 그랑 크뤼로 분류된 플롯은 총 51개로 알자스 그랑 크뤼로 표기하려면 4가지 공식 포도 품종만을 사용해야 한다. 바로, 리슬링,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 및 뮈스카로 알자스의 고귀한 포도 품종(Noble Grapes of Alsace)이라 불린다. 단, 51개의 그랑 크뤼 중 조첸베르그(Zotzenberg)만 예외적으로 실바네르 품종으로 그랑 크뤼 등급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포도 품종 이외에도 수확량, 알코올 도수 등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상세 지역, 포도 품종, 빈티지 등을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알자스 와인 생산량의 5% 정도가 그랑 크뤼로 특별한 지리학적 특성, 기후, 포도 품종, 토양 등이 버무려져 지금에 이르렀다. 그랑 크뤼 플롯은 보통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며 10가지 상이한 토양이 존재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토양에서 포도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탄생한다.
알자스 그랑 크뤼는 풍성한 아로마와 숙성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또, 고급스러운 달콤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 꿀내음이 폭발하기도 한다. 보통은 잘 익은 포도를 사용하고 알코올 도수도 높은 편인데 (주의: 달달하다고 홀짝대면 금방 취할 수 있다.) 포도가 잘 익으려면 해가 잘 드는 곳에 포도가 자라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랑 크뤼 와인은 3차 향(tertiary aroma)을 뽐내며 집중력과 깊이를 맘껏 드러낸다.
알자스 와인을 마실 때 알고 있으면 꽤 유용한 정보가 있는데 하나는 방당주 타르티브(Vendages Tardives)이고, 다른 하나는 귀부병에 걸린 포도로만 선별해 만들어진 와인이라는 의미를 담은 셀렉션 드 그랑 노블(Selection de Grains Nobles: SGN)다. 방당주 타르티브는 Late Harvest 와인을 뜻하는데, 말 그대로 포도를 늦게 수확하여 수분이 다 날아가고 당도가 느껴지는 비교적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을 가리킨다. 이때, 고귀한 포도 품종만을 사용해 양조한다.
방당주 타르티브보다 더 달콤하고 좀 더 엄격한 기준에 따라 만드는 와인이 SGN이다. 귀부병(Noble Rot)에 걸린 포도를 사용하는데 포도껍질에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균에 의해 곰팡이가 생기면 작은 구멍이 만들어져 포도 안의 수분이 날아가고 쭈글쭈글하지만 건포도와 같은 포도로 당도와 집중력이 높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귀부병에 걸릴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면 다시 말해, 습해서 곰팡이가 생긴 후에 건조한 조건이 지속돼 잘 익은 포도가 말라버리면 비로소 SGN을 만들 수 있는데, 보르도(Bordeaux)의 소테른(Sauternes)이나 헝가리(Hungary)의 토카이(Tokaji)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일이 귀부병에 걸린 포도만을 선별해야 하니 비싸고 고귀한 몸인 것은 틀림없다.
드라이하든 스위트하든 오늘은 고귀한(Noble) 알자스 와인 마시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