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슈가의 열풍이 불고 불어 소주로까지 왔다. 1급 발암 물질인 알코올을 섭취하면서 건강을 위해 당을 조절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면서도 무시하지 못할 소비 트렌드임에는 분명하다.
[ 헬시 플레저 ]
건강을 위해서라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맞다. 실제로 우리는 그동안 건강을 지키는 방법으로 ‘제한’을 택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극단적인 제한은 지속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를 대안으로 나온 것이 헬시 플레저라는 문화다.
헬시 플레저란 건강하다의 Healthy와 기쁨을 의미하는 Pleasure가 합쳐진 단어로, 건강을 즐겁게 관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트렌드코리아의 저자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는 2022년 대한민국을 이끌 10대 키워드로 헬시 플레저를 선정하기도 했다.
헬시 플레저에 맞는 대표적인 식품으로는 글루텐 프리, 저염, 저당 등이 있다. 과한 밀가루, 소금, 설탕의 섭취는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작정 끊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 성분들이 없거나 최대한 함량이 낮은 식품으로 대신하여 맛있고 재밌게 건강을 지키는 추세다.
몸에는 해롭지만 쉽게 끊지 못하는 술에서도 최근 들어 헬시 플레저와 관련된 상품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무알코올&논알코올 제품과 제로슈거 소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로슈가 소주의 인기가 엄청난 편이다.
2022년 9월 중순, 롯데칠성음료에서는 ‘새로’라는 희석식 소주 브랜드를 하나 출시했다. ‘처음처럼’을 포함해서 여러 식품에 사용하고 있는 액상과당(=기타과당)이 들어가지 않아 제로슈거 소주라고도 불리고 있다. 새로는 출시 1달 만에 680만 병이 팔렸고, 5개월 만에 누적 판매 5,000만 병을 돌파했다고 한다. 하이트 진로의 ‘진로이즈백’이 출시 후 1달 동안 200~300만 병 팔린 것을 봤을 때 뉴트로 보다 제로슈거(또는 헬시 플레저)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빠진 건 액상과당이라 제로슈거라는 말이 언짢을 수도 있지만,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제로슈거라 표현해도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 알코올보다 못한 액상과당? ]
그런데 이 액상과당이 무엇이길래 술에서도 이토록 꺼리는 걸까? 우리는 액상과당을 알아보기 전에 과당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당은 단맛을 내는 당류 중 하나이며 과일에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영어 이름으론 과일(Fruit)에서 비롯된 프록토오스(Fructose)라 불린다. 평소에 과일을 많이 먹으라고들 해서 그런진 몰라도 과당이 몸에 해로울 것 같진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딱 과일 정도로만 과당을 섭취했을 때의 일이다.
과당은 포도당과 마찬가지로 당류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단당류에 속하기 때문에 이 둘을 많이들 비교하곤 한다. 가장 작은 단위이기 때문에 어떤 당류를 섭취하든 흡수·소화되는 형태는 대부분 과당 또는 포도당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혈액에 스며들다 인슐린에 의해 몸속 세포로까지 유입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포도당과 달리 과당은 곧장 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포도당은 혈당을 급격하게 높이며 반면, 과당은 혈당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신에 과당은 지방에 많은 영향을 주는데, 간이 다 분해하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을 섭취할 시 과당은 지방으로 전환되어 몸속에 저장된다. 동시에 과당은 식욕 억제 호르몬을 분비하여 포만감을 잘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살이 찌기 딱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액상과당은 어떨까? 과당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안 좋다고 할 수 있다. 액상과당은 옥수수 전분(포도당)에 인위적으로 과당을 첨가해서 만든 합성 물질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설탕도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설탕 안의 포도당과 과당은 끈끈하게 붙어있지만, 액상과당 안의 포도당과 과당은 각각 독립되어 있다. 그래서 액상과당 안의 포도당과 과당은 흡수가 매우 빠른 편이다. 빠르게 흡수된 만큼 혈당은 가파르게 올라가고, 과당이 지방으로 전환되는 속도도 빨라진다. 여기에 더해 과당은 인슐린 분비를 저해하는 특징도 갖고 있어, 높아진 혈당이 쉽게 내려가지도 않게 된다.
이런 액상과당을 과잉 섭취하게 되면 혈액 안엔 당이 계속 쌓이고, 인슐린과 간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체내에 염증을 유발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염증은 심뇌혈관질환이나 암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식품업계에서는 차츰 액상과당을 지워나가고 있다. 액상과당으로 맛을 내던 희석식 소주 업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소주는 달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액상과당을 뺀 만큼 부족한 단맛을 채우기 위해 인공 감미료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소주뿐만 아니라 제로슈가 음료도 마찬가지다. 현재 제로슈거 소주에 사용하는 인공 감미료는 효소처리스테비아, 에리스리톨, 스테비올배당체, 토마틴 등이 있다.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단맛은 있지만 열량(칼로리)은 없다는 거다. 그 이유는 몸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부분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혈당을 높이지도 않고 간으로 이동해 지방을 합성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탄산음료나 술을 마시며 헬시 플레저라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여기서는 술의 알코올이 1급 발암물질이란 사실을 잠깐 잊어주자.
현재 인공 감미료의 일일 섭취 허용량은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편이다. 실제로 인공 감미료의 하나인 수크랄로스를 허용량 이상 섭취하려면 하루에 제로 탄산음료를 6L 이상을 마셔야 하는 꼴이다. 하지만 인공 감미료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무조건 좋다고 권유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다. 최근에는 에리스리톨이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가장 중요한 건 적정성을 지키는 일이다. 헬시 플레저랍시고 물처럼 마시다간 단맛에 중독되어, 되려 더 많은 당을 찾게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개인적으론 우리의 몸속 미생물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거로 생각한다. 그들에겐 이것들이 불량식품이나 다를 게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엔 즐겁게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양질의 식품을 찾고 먹을 줄 아는 자세도 함께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