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앤슨이 플라스 드 보르도를 통해 미국 외 지역에 카베르네 위주의 프로몬토리를 출시할 계획에 대해 윌 할란과 이야기를 나누고 할란 에스테이트의 200년 계획을 들어보았다.
빌 할란이 캘리포니아 와인 업계에 등장했을 때 그가 내세운 야심 찬 목표는 무통 로쉴드 수준으로 나파의 1등급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할란 에스테이트가 지난 1996년 대망의 1990 빈티지를 출시하며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것은 캘리포니아 식 1등급이었다. 한 마디로 유명세와 희소성, 높은 가격, 대기자 명단, 이런 것들이 뒤따랐다는 뜻이었다.
할란은 굳건히 사적인 공간을 지키며 외부 방문자를 전혀 받지 않고, 경험 많은 와인 수집가들조차 이곳 와인 몇 상자 손에 넣는 것 이상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다.
몇 주 전, 빌 할란의 아들 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 이유를 알아냈다. 할란은 시장당 단 한 곳의 배급 업자를 두는 전통적인 미국 모델을 따랐을 뿐 아니라 각각의 병을 취급하는 방식이 매우 엄격했다. “단 한 번도 와인의 1% 이상을 한 명의 개인에게 판매한 적이 없습니다.” 그가 내게 말해주었다.
그것은 강한 통제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따라서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새 와인 프로몬토리의 해외 시장을 모두 플라스 드 보르도에 맡겼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양은 적다. 수출량은 현재 25,000병의 총생산량 중 40% 정도일 것으로 예상한다. 일단 다시 심은 포도나무가 완벽한 생산 수준에 이르러 6만 병 정도가 될 때까지는 그렇다.
“30년 전 우리는 뉴페이스였습니다. 시장을 직접 이해하고 싶었고 할란 와인 판매를 통제하고 싶었죠. 저는 돈 위버와 아버지가 유통망을 세우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두 사람은 판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늘 만나러 다녔고, 처음부터 수요는 공급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그래서 프로몬토리를 내놓을 준비를 하면서 저는 당시의 방식을 떠올리고 시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했어요. 어떤 식으로든 할란 와인과 경쟁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고, 그러려면 국제 시장과 다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세 곳의 보르도 네고시앙이 찾아왔는데 그들은 보르도 외의 생산자들(뒤클로, CVBG, 조안)을 대표하는 작은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돈은 1980년대부터 보르도를 드나들었고 이런 대안적 유통 모델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느닷없는 건 아니었죠. 네고시앙들이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델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우리는 가족으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어요. 하지만 해당 시장에서 이 와인상들의 자원과 깊이 있는 지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습니다.” 윌이 말했다.
윌이 책임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할란이 추구했던 나파의 1등급 전략이 곧 ‘200년 계획’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할란에서 출간한 책 『언덕에서 바라본 것들(Observations from the Hillside)』의 공동 저자 해리 에어스는 프로몬토리를,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할란 에스테이트와 본드 와인(모두 최고가를 달리는 컬트 카베르네 와인이다)과 분리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프로몬토리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토양이 다르고, 더 높은 위치에서 재배되며, 할란보다 더 양이 적어요. 원산지를 더욱 잘 표현하고자 하는 와인이죠. 그리고 이런 변화를 대표하는 건 윌뿐만이 아닙니다. 와인 양조 디렉터로서 밥 레비의 후임자인 코리 엠팅도 있죠. 코리는 36살로 윌보다 다섯 살 아래인데 와인에 대해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죠. 아들이 가업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기는 어떤 분야든 어렵습니다. 그래도 프로몬토리를 자신의 프로젝트처럼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설사 그 땅을 처음 파낸 사람이 빌이라 해도 말이죠.”
프로몬토리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할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땅을 처음 발견한 건 1980년대 초 오크빌 뒤의 언덕을 오르던 빌 할란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땅을 찾으러 다니셨어요.” 윌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그곳은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아서 포도밭도, 집도 없고 그저 금주령 시대에 밀주를 만들던 증류소 잔해만 남은, 나무 울창한 협곡이었다. 아마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직도 그곳을 포도밭이 아니라 ‘영토’라 부르는 것이리라.
그 당시에는 팔려고 내놓은 곳이 아니었기에 빌은 몇 년 동안 그곳을 주시했다. 마침내 2008년 그곳을 살 수 있게 되자 몇 사람의 손을 거쳐 포도나무가 재배되었지만 “아무도 그 땅이 받아 마땅한 관심을 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대적인 토양 연구를 실시하고 “나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변성 토양을 발견했다. 최소한 이 지역을 통과하는 두 개의 단층선으로 인한 편암과 점토 형성물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건 곧 이곳이 할란 에스테이트보다 더 다양한 토양과 높이를 자랑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높이도 150~-340미터로 더 다양해 미기후도 서늘했다. 지난 세월 동안 상당 부분이 아무렇게나 관리되었지만, 그곳의 품질을 엿보게 해줄 11헥타르의 땅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곳은 그대로 유지하고, 나머지는 2011년부터 16헥타르의 땅에 포도나무를 다시 심고, 추가로 5헥타르를 확장했다.
“나파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할란에서 겨우 20분 거리인데도 말이죠.” 지난 2008년 대학교 2학년과 3학년 동안 그곳의 땅 개간을 도왔던 윌의 말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프로몬토리까지 가는 제대로 된 도로가 없는데 그들은 그렇게 유지하고 싶어 한다. 할란과 달리 방문객에게 개방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포도밭은 아니고 할란과 본드 가까이 오크빌 그레이드 로드에 세운 와이너리와 테이스팅룸만 그렇다.)
처음 내게 이곳과 보르도와의 관계를 이야기해준 건 뒤클로의 에이드리안 카이다였다. “나파는 처음부터 개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최고급 라인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그러므로 이번 일은 수출 시장에서 보르도의 전문성을 진정으로 인정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이 옳다. 하지만 그것은 보르도와 나파가 점점 더 공통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파는 와인이 구체적인 지형과 테루아를 반영한다는 유럽식 개념을 향해 움직이고 있고, 보르도는 고객 경험의 이해와 브랜드 강화라는 점에서 나파의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 한다. 프로몬토리는 어마어마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 번째 빈티지는 이미 미국에서 출시되었고 유럽에서는 3월 8일 출시 예정이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30%만 새 배럴을 사용하고 크기가 더 큰 스토킹어 오스트리아 오크 캐스크를 사용하는, 더욱 전통적인 나파 스타일으로 회귀하는 와인으로 새로운 고품질 나파 와인을 창조했다. 거기에다가 더욱 기대감을 심어주는 건 나파에서 가장 주목받는 ‘첫 번째 가문’의 탄생이다.
“아버지는 사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걸 좋아하세요. 프로몬토리에서는 자신의 본래 생각도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보셨고, 기꺼이 자신이 할란으로 이루어낸 것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기회를 나와 제 누나 어맨다에게도 주신 겁니다.” 윌의 말이다.
작성자
Jane Anson
번역자
Sehee Koo
작성일자
2018.02.22
원문기사
*
이 기사는 Decanter의 저작물로 Decanter Magazine에 저작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