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큐레이터, 푸드 큐레이터, 북 큐레이터 등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있을 법한 큐레이터가 다양한 분야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전통주 시장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오늘은 전통주 시장에서마저 큐레이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큐레이터란?]
박물관이나 미술관 안의 ‘큐레이터(curator)’는 돌보다 또는 관리한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curare’에서 파생된 단어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주로 전시물을 관리하고 돌보는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전시 기획이나 작품 연구를 하며 사람들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일도 한다.
다시 말해 큐레이터는 기존에 있던 콘텐츠를 발견하고 보존, 관리를 통해 공유하는 사람을 뜻한다. 큐레이터는 창작자가 아니다. 그런 의미로 잡지의 내용을 편집하는 편집장, 매장에 상품을 진열하는 슈퍼 사장님, 방송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프로그램 편성자 등의 직업군도 넓게 보면 모두 큐레이터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패션 큐레이터, 푸드 큐레이터, 북 큐레이터 등 대놓고 큐레이터라는 단어를 붙인 직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큐레이터와는 다르게 전시물(패션, 푸드, 북)을 관리, 보존하는 업무의 비중이 다소 낮은 편이다. 대신에 좋은 작품, 정보를 발견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마저도 마냥 같지는 않다.
앞서 말했던 큐레이터라 볼 수 있는 직업들은 순서나 위치, 시간 등의 1차원적인 조건에 맞춰 단순 분류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 큐레이터’들은 다르다. 이들의 역할에는 분류와 공유는 물론, 특정 주제와 목적에 맞는 추천이 있다.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는 2010년 미국에서 개최된 테크노미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2003년까지 만들어진 데이터양은 통틀어 5엑사바이트(=5,242,880TB)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이틀마다 그만큼씩의 데이터가 새로 추가되고 있으며, 이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게 온라인상의 컴퓨터 데이터뿐만일까? 오프라인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누구나 책을 낼 수 없던 것에 반해,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비교적 쉽게 누구나 출판이 가능해졌다. 모두가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게 된 시대가 된 것이다.
동시에 정보 과잉 시대가 됐다. 그렇다 보니 많은 콘텐츠의 양 탓에 보기 좋게 분류하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없게 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등장한 직업이 바로 ○○ 큐레이터이다.
[전통주 큐레이터]
전통주 큐레이터의 역할도 다른 큐레이터처럼 콘텐츠를 발견하고 공유하며 추천하는 일을 한다. 그렇다면 전통주 큐레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성장하는 시장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볼 수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발표한 2022년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주 시장 규모는 2017년 400억 이후 계속해서 성장해 왔으며 올해에는 942억을 기록했다. 2022년 원소주 출시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에 내년 자료에서는 1,000억을 훌쩍 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시장에 대한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있다.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전통주가 1~2개뿐이라면 모르겠지만, 2021년 기준으로 전통주 제조 면허만 1,401개가 존재한다. 제품 수로는 2,000여 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 보니 정작 전통주에 관심이 생기더라도 어떤 술을 소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전통주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20대에게 인기가 많은 전통주,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전통주 등 특정 주제에 맞춰 술을 추천해 주면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시장인 만큼 요즘에는 네이버나 유튜브로도 어렵지 않게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보의 업데이트가 많이 느린 편이고, 많은 콘텐츠 창작자들이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한 채 새롭게 가공 혹은 복사·붙여넣기의 수준으로만 퍼 나르고 있는 수준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술은 개인의 취향과 구매하는 과정에서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고관여 식품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추천을 해주는 전통주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물론 소주나 맥주와 같은 통일된 주종으로 저렴하게 술을 즐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의아할 수 있는 내용일 순 있다. 하지만 술은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기호식품임에는 분명하며, 최근에는 취향껏 술을 즐기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주 큐레이션 서비스가 더욱 활발해지지 않을까 싶다.
[큐레이터의 역량]
큐레이션의 목표에는 결국 사람을 모은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사람을 모으는 큐레이션에는 신속성, 다양성, 정확성, 독창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명절이 지나고 나서야 명절과 관련된 콘텐츠를 추천해선 안 되고, 늘 같은 주제, 결과로만 이야기가 흘러가서도 안 된다. 당연히 틀린 정보를 제공해서도 안 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큐레이션으로 가치를 키워나가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소비자는 큐레이터를 믿고 취향을 맡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