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음식에 적절한 술을 곁들이는 방식 외에도 음식과 술이 만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음식을 만들 때 술을 하나의 재료로 사용하는 경우인데, 우리는 왜 요리를 만들 때 술을 사용하는 것일까?
<잡내를 잡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는 잡내 제거가 있다. 음식에 알코올이 남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 열을 이용하여 조리하는 음식에 술을 사용하곤 한다. 휘발성이 강하고 끓는 점이 물보다 낮은 에탄올은 열에 노출되면 비교적 쉽게 기체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게 되는데, 이때 잡내를 내는 물질들까지 갖고 날아간다고 한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어쩌면 잡내를 잡기 위해 초록병 소주를 사용했던 경험들이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기에 의심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아쉽게도 위의 내용엔 치명적인 오류 2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알코올
먼저 첫 번째 오류는 가열하면 알코올이 다 날아간다는 내용이다. 열을 가하면 알코올이 날아가는 건 맞는 말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날아가진 않는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의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알코올을 30분간 끓이면 약 35%의 알코올이 남아 있고, 1시간을 끓이면 25%, 2시간을 끓이면 10%의 알코올이 남아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술이 들어간 음식일 경우 한번 끓였다고 안심하기보단 한 번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다.
근거 없는 잡내 제거
잡내를 잡는다는 건 그럴듯한 내용이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에탄올의 기화를 이용하여 잡내를 제거하는 거라면 물의 기화에서도 충분히 잡내 제거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잡내가 ‘나 잡내예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라고 티를 내지 않는 이상, 에탄올은 어떤 성분이 잡내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 음식의 잡내가 제거됐다고 느끼는 건 술의 풍미에 잡내가 가려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코코뱅, 뵈프 부르기뇽, 술찜 등의 요리에서 알 수 있다시피, 술을 사용하는 음식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이 술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풍미를 풍요롭게>
사실 음식에 술을 사용하는 이유는 술이 가진 풍미를 음식에 더해 풍부한 맛을 만들기 위해서다. 술은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 와인의 씁쓸한 타닌감이나 산미는 음식에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우리나라 전통 증류주나 약·청주 계열의 술들은 감칠맛과 곡물의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해주기도 한다. 베이커리에서는 주로 당분이나 과일의 향미가 깃들어 있는 럼, 리큐르 종류의 술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역시 맛과 향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모두와 친한 에탄올
술은 직접적으로 맛과 향을 더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때에 따라 여러 풍미들이 자기 자신을 어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도 한다. 이게 무슨 이유냐 하면은 우리가 맛이라고 인지하는 건 사실 향에 가깝다. 그리고 향 분자들은 대부분 기름에 잘 녹는 지용성이다. 우리는 향을 내는 분자들이 음식 곳곳에 녹아내려져 있어야만 맛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지용성인 향 분자를 녹일만한 용매가 없다면 우리는 그 맛들을 다 놓치고 간다는 말인데, 이때 활용하면 좋은 게 바로 술이다. 우리가 마시는 술에 있는 알코올인 에탄올에는 물과 친한 분자와 기름과 친한 분자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수용성과 지용성 모두 녹일 수 있다.
대부분 술 대신 미림이나 맛술을 사용하지만, 서양처럼 와인을 활용하거나 우리 전통 증류주를 활용하여 요리한다면 또 다른 재미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때 풍미 하나 없는 희석식 소주는 되도록 피하자. 하나 더 주의할 점이 있다면 뭐든지 과유불급. 적절한 양과 시간을 투자하여 요리하기를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