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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와인 마을 6탄 _ 바롤로

우리가 사랑한 와인 마을 6탄 _ 바롤로

와인쟁이부부 2018년 11월 30일

개인적으로 ‘바롤로’ 와인을 생각하면, 프랑스의 ‘부르고뉴 와인’이 연상된다. 둘 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사와 단일 포도 품종을 고집한다는 점, 그리고 까다로운 포도밭 분류 체계를 지녔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리고 파워풀한 바롤로를 지향하는 이들은 동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은은하고 우아한 캐릭터도 부르고뉴의 와인의 특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바롤로 마을 입구. 어떤 세계가 나를 반겨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 사진 제공: 배두환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중반까지 바롤로는 스위트 와인이었다고 한다. 바롤로를 만드는 네비올로 Nebbiolo 포도가 10월 중순이 넘어야 수확이 가능한 만생종이기 때문이다. 수확한 포도를 발효시키는 도중에 날씨가 추워지면서 자연스럽게 발효가 멈추었고, 잔당은 고스란히 와인에 남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를 이어나갈 기술력이 없었다. 그렇게 바롤로 와인은 내추럴한 스위트 와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양조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일어날 수 있었던 자연적인 해프닝이다.

이후 드라이한 바롤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재상인 카밀로 벤소 디 카부르 Camillo Benso, Conte di Cavour가 프랑스 양조학자인 루이 우다르 Louis Oudart를 초청해 와인 양조에 자문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네비올로를 완전히 발효시키는 방법을 알았던 그에 의해서 최초의 모던 바롤로, 즉 드라이한 바롤로 와인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드라이’한 레드 와인의 소문이 토리노의 귀족과 피에몬테를 다스렸던 사보이 왕가에 퍼지면서 소위 ‘있는 사람’들이 즐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바롤로는 ‘왕들의 와인, 와인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미국 보스턴 출신의 와인 비평가이자 작가인 커린 오키프 Kerin O’Keefe는 2014년 <The King and Queen of Italian Wine>이라는 저서를 발간하면서 기존의 가설을 반박했다. 그녀는 1835년 <Istruzione intorno al miglior metodo di fare e conservare i vini in Piemonte>라는 긴 이름의 책을 발간한 파올로 프란체스코 스타글리에노 Paolo Francesco Staglieno가 모던한 드라이 바롤로의 창시자라 주장한다. 그는 카밀로 벤소의 포도밭을 관리하던 책임자로 1836부터 1841년까지 일을 했고, 외국으로 수출을 할 정도로 품질 높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드라이한 바롤로 와인을 만들었던 창시자였으며, 그가 ‘드라이한 바롤로’를 만드는 방법을 당시에는 ‘The Staglieno Method’라 불렀다고 전한다.

그녀의 저서에 따르면 (첫 번째 가설에 등장했던) 우다르는 양조학자가 아닌 포도 및 와인 상인이었다. 그는 1800년대 초 제노아에 이주해서 메종 우다르 에 브루쉐 Maison Oudart et Bruché라는 와이너리를 설립했으며, 그가 알바에 와서 보니, 이미 스타글리에노 방법에 따라 드라이한 바롤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현재 많은 와인 전문가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기에 현재로서는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언덕진 포도밭의 주인은 만생종인 ‘네비올로’. 스위트 바롤로는 무슨 맛이었을지 궁금해진다. / 사진 제공: 배두환

드라이한 바롤로가 어떻게 탄생했든 간에, 바롤로 와인은 21세기에 들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많은 와인 생산지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중반까지 바롤로 와인 생산은 대형 네고시앙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1960년대가 넘어서야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직접 병입하고 자신이 재배한 포도로 싱글 빈야드 와인을 내놓기 시작했다. 1980년대가 되면서 다채로운 싱글 빈야드 와인들이 출시되었고 서서히 바롤로를 만드는 네비올로 포도밭을 세분화(일종의 크뤼 Cru)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사실 바롤로의 포도밭을 구분하는 작업은 19세기 말 로렌조 판티니 Lorenzo Fantini, 20세기 레나토 라티 Renato Ratti, 루이지 베로넬리 Luigi Veronelli에 의해서 시작되긴 했지만 2009년까지 공식적인 분류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바롤로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은 다른 이탈리아 와인 산지보다 빠르게 자신들의 와인을 고급화하는데 한발 앞서 행동했고, (마치 부르고뉴와 같이) 테루아에 맞춰 포도밭을 쪼개고 그곳에 이름을 붙여 캐릭터화하는 데 성공했다.

엄격히 ‘바롤로’라는 와인은 11개의 코뮌(쉽게 말하면 와인 마을)을 아우르는 바롤로 존에서 탄생한 와인을 통칭한다. 포도는 물론 네비올로만 재배한다. 이중 바롤로 존의 약 87%의 생산량을 책임지는 ‘라 모라 La Morra’, ‘바롤로 Barolo’, ‘카스틸리오네 팔레토 Castiglione Falletto’, ‘세라룬가 달바 Serralunga d’Alba’, ‘몬포르테 달바 Monforte d’Alba’는 최상급 바롤로 와인을 만드는 마을로 명성이 자자하다. 더 세분화해서 ‘체레퀴오 Cerequio’, ‘브루나테 Brunete’,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 Rocche di Castiglione’ 같은 싱글 빈야드는 마치 부르고뉴의 로마네 콩티나 클로 드 부조처럼 특별한 취급을 받는 특급 밭들이다. 당연히 면적이 작아질수록 가격은 비싸진다.

체레토의 바롤로 ‘브루나테’ 2009 빈티지 / 사진 제공: 배두환

지루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여행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우리 부부는 몬포르테를 제외한 나머지 4곳의 마을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마을 간 거리가 가까워서 차만 있다면 하루에 모두 둘러볼 수 있다. 5개의 마을 각자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늘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딱 하나의 마을만 추천한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바롤로다. 왜냐면 다른 곳들보다 관광객들을 위한 인프라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 어귀로 들어가는 길에 눈길을 끄는 <Enoteca Regionale del Barolo>는 만사 제치고 꼭 들어가 보기를 추천한다. 무려 32종의 바롤로 와인을 디스펜서에서 글라스로 신선하게 테이스팅 할 수 있고, 150여 종 이상의 바롤로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와인 애호가들의 성지다.

에노테카 레지오날 델 바롤로 내부 모습 / 사진 제공: 배두환

에노테카 레지오날 델 바롤로의 디스펜서. 32종의 와인을 잔 가격으로 테이스팅 할 수 있다. / 사진 제공: 배두환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Ufficio Collisioni Festival>도 추천한다. <Enoteca Regionale del Barolo>가 바롤로에 국한되어 있다면 이곳은 피에몬테 전 지역을 총망라하는 와인 디스펜서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음할 수 있는 와인의 종류는 약 40여 종이며, 잔당 1유로에서 8유로 사이로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다. 피에몬테 주 와인을 경험하고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다는 생각이 들만한 곳이다. 둘 다 카운터에서 충전식 카드를 구매해서 호기심이 가는 와인들만 쏙쏙 골라가며 테이스팅 할 수 있다. 물론 언급하지 않은 여러 에노테카와 레스토랑도 발길 가는 데로 들러보자. 어디든 실망하지 않으리라 장담한다.

우피시오 콜리아니 페스티발의 내부 모습. 와인뿐만 아니라 토양까지 볼 수 있다. / 사진 제공: 배두환

1976년 빈티지의 바롤로도 글라스로 테이스팅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현지 여행의 묘미랄까. / 사진 제공: 배두환

<Ufficio Collisioni Festival>의 바로 옆에는 마치 파리의 백화점 지하 쇼핑센터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매우 현대적인 느낌의 카페가 있다. 이 카페의 테라스에 앉으면 마을을 둘러싼 포도밭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와인도 좋지만,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만족스럽다.

카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바롤로의 포도밭.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참고로 바롤로 마을 내에 있는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차만 있다면 불과 5분 거리에 우리 부부가 정말 추천하는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이름은 <Osteria Veglio>. 마을 내의 고즈넉하고 전통적인 분위기는 아니나, 탁 트인 전망의 아름다운 테라스와 두 번 가고 싶게 만드는 정갈한 음식들이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만약 다음에 피에몬테를 다시 가게 된다면 반드시 들를 계획이다.

 

 

 

 

우리 부부는 바롤로 마을을 세 번 방문했다. 갈 때마다 이곳에 거는 기대가 꽤 컸던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여러 생산자의 와이너리를 구경해볼 수 있었다. 지아코모 콘테르노 Giacomo Conterno, 브루노 지아코사 Bruno Giacosa, 라 스피네타 La Spinetta, 도메니코 클레리코 Domenico Clerico, 엘리오 알타레 Elio Altare, 체레토 Ceretto, 프루노토 Prunotto, 보르고뇨 Borgogno, 비에티 Vietti, 레나토 라티 Renato Ratti, 마솔리노 Massolino, 폰타나프레다 Fontanafredda까지.

사실 이 중 몇몇 생산자들은 방문하기가 까다로운 편이라서 선뜻 추천하기는 내키지 않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체레토보르고뇨, 폰타나프레다가 방문객들을 오픈된 마인드로 받는 곳이라서 피에몬테 지역을 여행하게 된다면 한 번쯤은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폰타나프레다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매우 역사적인 와이너리인 동시에 마치 놀이공원을 방불케 하는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와이너리 투어도 체계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꼭 와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투어비만 낸다면 누구나 편하게 역사적인 지하 셀러를 구경할 수 있다.

체레토의 테이스팅 룸. 모던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 사진 제공: 배두환

바롤로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보르고뇨의 경우 마을을 거닐다가 충동적으로 들어가도 환한 미소를 짓는 친절한 직원과 함께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매력은 단연코 올드 빈티지인데, 2000년대 빈티지의 바롤로는 물론, 약간의 시음비만 더 추가한다면 실크처럼 우아한 90년대 빈티지의 와인도 테이스팅 할 수 있다.

보르고뇨의 테이스팅 라인업. 올드 빈티지 바롤로를 꼭 테이스팅 해보길 바란다. / 사진 제공: 배두환

바롤로 마을을 다니며 와인의 향에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기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바롤로는 그야말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추천하는 와인 마을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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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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