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인도에서 최근 100% 포도로만 제조한 인조 감미료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고급 와인 선호 현상이 목격돼서 화제다.
사실 인도 역사에 와인이 등장한 것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시작됐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인도 일부 지역에서 와인이 생산됐고 이를 통해 와인을 즐겨 마셨다는 고대 문서가 당시 분위기를 고증하고 있지만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교적 금기 사항 탓에 와인은 다른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인도인들에게 미심쩍은 음료로 규정되어 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인도 역사 여러 시대에 걸쳐 암암리에 용인됐던 알코올의 중심에 위스키, 브랜디, 럼주 등 증류주를 기반으로 한 발전이 있었던 탓에 웬일인지 와인은 인도인들의 관심 밖으로 멀리 밀려났다는 안타까운 평가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에서 매년 소비되는 알코올 중 절반 이상인 약 54%가 증류주였고, 그 나머지 파이만큼인 약 46%는 맥주가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도 주류 시장에서 와인이 설 자리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졌던 것. 실제로 지금껏 인도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와인 소비량은 단 100mL 미만에 그쳐왔다.
하지만 최근 인도에서도 점차 와인 시장의 비중이 성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현상이 있어 와인 업계의 주목을 받는 분위기다.
가장 독특한 현상은 얼마 전부터 인도의 MZ 세대 청년들 사이에서는 대중적인 중저가 와인을 넘어 최고급 와인을 소비하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목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학 첨가물이나 지나치게 높은 당 함유량 등 다른 성분은 일절 섞지 않은 포도만 100% 원액으로 한 프리미엄급 와인에 대한 선호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인도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과거 금주를 강제하는 사회, 문화적 금기가 조금씩 사라지는 분위기까지 가세하면서 상당수 인도 여성 중에 고급 와인 소비에 관심을 보이는 현상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알코올 도수 20도 미만의 마일드 한 맛의 와인이 인도 주류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덕분에 세계 와인 업계 일각에서는 인도에서 와인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고 넓게 성장할 여지가 있다고 희망을 품는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도>는 ‘인도 여성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등장하는 가장 세련된 음료로 와인이 인식되고 있다’면서 ‘이전보다 가족으로부터 독립되고, 사회적으로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인도 사회 내부적인 변화가 이 같은 와인 시장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집중 보도했다.
인도 여성들과 청년들의 와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주로 뭄바이, 벵갈루, 델리, 푸네, 하이데라바드와 같은 초대형 도시를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독립해 거주하는 전문직 출신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변혁이 진행 중이라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현지 매체들은 뭄바이와 같은 초대형 도시 거주 청년들이 소비하는 와인 소비량이 인도 전 지역에서 소비하는 연평균 소비량 대비 무려 7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2023년 상반기 기준 인도 주류 시장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연간 판매량은 단 1% 수준에 머무는 실정이지만 인도 최대 민간 은행 중 한 곳인 코탁 마힌드라 은행은 향후 5년간 인도 주류 시장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연평균 성장률(CAGR)이 10%대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등 이전과 다른 현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경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해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시장은 인도의 최고급 와인으로 꼽히는 딘도리(Dindori) 급의 프리미어 와인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 와인 시장에는 최근 △J’NOON △Signet △La Reserve 등의 제품들이 연이어 출시돼 이전에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최고급 와인에 대한 대중의 수요를 채우고 있다는 평가인데,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와인이 인도 사회 내부에서 사회적 교류를 위한 건강한 음료이자 세련된 주류라는 인식이 성별의 구분 없이 MZ세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주요하다.
그 덕분에 인도에서는 유럽과 미국 등 기존의 와인 강국을 대신해 인도판 나파밸리가 등장하는 등 미래에는 와인 산업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도 조금씩 제기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 15년 사이 인도 시장에서 고급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배경에는 인도 정부가 직접 팔을 걷고 나서 인도 국내 와이너리 육성을 위한 각종 정책을 약속, 여기에 부응해 인도 내부의 고급 와인 생산량이 이전 대비 매년 두 배가량 급증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악재로 꼽힌다. 고급 와인의 경우 만드는 과정이 길고, 세심한 관심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 투입되는 인건비와 전기료를 무시할 수 없다. 또, 고가의 와인병과 레이블용 종이 가격 등의 원가가 최근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와인 업계는 최근 눈에 띄게 증가한 인도의 와인 애호가들의 성장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특히 고급품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냉정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와인 시장의 원칙 속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성장세를 보이는 인도 와인 시장의 ‘붐’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기대가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