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사히 맥주는 생맥주를 표방하는 캔맥주를 한국에 출시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맥주는 이미 일본에서 2021년 4월에 ‘아사히 슈퍼드라이 나마죠키캔’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해 대박을 터트린 제품입니다. 나마죠키(生ジョッキ)란 일본어로 ‘생맥주잔’이라는 뜻입니다. 이 맥주는 맥주의 맛보다는 맥주 캔의 생김새와 기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맥주 캔은 참치 캔을 따듯이 캔의 상판을 완전히 걷어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참치 캔처럼 끝까지 힘을 줄 필요 없이, 캔의 뚜껑을 어느 정도까지만 걷어 올리면 깔끔하게 뚜껑이 열립니다. 이때 캔 안쪽의 요철과 캔을 개봉했을 때의 압력으로 거품이 발생합니다. 따로 잔에 따르지 않아도 그대로 마시면 훌륭한 생맥주가 된다는 발상입니다. 아사히는 거품이 발생하는 맥주 캔을 발명하기 위해 4년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럼, 아사히가 선보인 맥주 캔은 캔의 역사에서 몇 세대 정도에 해당할까요? 맥주 캔에도 세대가 있을까요? 핸드폰에도 세대가 있고, 걸그룹에도 세대가 있는 것처럼 맥주캔도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보니 나름대로 세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맥주를 캔에 담아 발매한 것은 1935년 1월입니다. 하지만 맥주 캔은 그보다 약 1년 전부터 시범적으로 개발되고 있었고, 회사가 아닌 개인적인 관심은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이후 맥주 캔은 총 4번의 커다란 스타일 변화가 있었습니다. 맥주 캔의 역사를 살펴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사실이 많은데요, 아사히 생맥주 캔이 나오기까지 맥주 캔은 어떤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었을까요?
금주법이 폐지되기 직전인 1933년, 미국 최대의 캔 제조회사인 아메리칸 캔 컴퍼니는 당장에 사용할 수 있는 맥주 캔을 개발하여 크루거 양조장에 공급했습니다. 크루거는 그 해 임시로 캔 제조 라이닝을 세우고 2,000개의 시제품을 만들어 특별히 제조한 맥주로 채웠습니다. 캔에 들어간 맥주는 3.2%의 맥주로 당시 정부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의 알코올 도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2,000개의 캔 맥주를 크루거 맥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맛이 좋다고 평가한 평가자가 91%이고 생맥주나 병맥주보다도 맛이 좋다고 평가한 평가자가 85%였습니다. 캔맥주의 실험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캔맥주를 바로 생산해도 되겠다는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35년도에 처음으로 캔맥주가 발매되었고, 그 시초가 되는 1933년의 시제품은 캔맥주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맥주 캔의 시도는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1909년 워싱턴에 살고 있던 독일 이민자 출신의 레오폴트 슈미트라는 이상주의자는 캔 안에 맥주를 넣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맥주 캔의 가능성을 아메리칸 캔 컴퍼니에 문의해 봤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메리칸 캔 컴퍼니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의 기술력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의 캔 기술로는 25psi(압력을 측정하는 단위, Pound per Square Inch)에서 35psi 정도의 압력을 다룰 수 있었지만, 맥주가 저온살균을 위해 처리되는 과정에서 80psi의 압력이 생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맥주 캔의 표면에 대한 처리가 없어서, 캔의 표면에 접촉된 맥주의 맛이 변질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후 10년은 맥주 캔에 대한 연구는 별다른 결실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1919년 금주법이 통과되면서 알코올음료에 관한 모든 것은 암흑기였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캔 컴퍼니는 나름대로 연구 개발을 계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1925년에 특허 번호 1,625,229번으로 맥주 캔을 특허 출원한 것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맥주 캔에 관심이 있었던 파브스트와 앤하이저-부쉬도 아메리칸 캔 컴퍼니를 설득하여 맥주 캔 시제품을 제작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메리칸 캔 컴퍼니는 당시 레코드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비닐라이트와 에나멜을 섞어 캔의 표면에 발라 맥주 맛이 변질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시제품으로 만들어진 캔이 1935년에 처음으로 발매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세대. 플랫 탑 스타일 Flat Top Style
최초의 캔맥주는 어떤 모양이었을지 상상이 가나요? 의외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캔은 통조림 형태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맥주 캔도 바로 이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스타일을 플랫 탑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캔의 상판이 평평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즉 별도의 캔 따개로 개봉하는 통조림 캔과 같은 스타일입니다. 지금은 캔이 얇고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지만 처음에는 강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길이가 5.5인치(약 14cm), 두께가 0.125인치(약 0.3cm)였고 캔의 무게만 무려 4온스(약 113g)에 달했다고 합니다. 처치키(Church Key)라고 불리는 맥주 캔 따개가 없이는 열 수 없었습니다.
앞서 최초의 캔맥주는 1935년에 크루거 양조장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캔맥주의 공식적인 생일은 1935년 1월 24일입니다.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 있는 크루거 양조장은 크루거 파이니스트 맥주와 크루거 크림 에일을 처음으로 상업적인 캔맥주로 발매했습니다. 이 캔맥주는 아메리칸 캔 컴퍼니가 개발한 12온스 용량의 캔을 사용했습니다. 12온스는 약 355ml로 현재의 버드와이저 330ml 캔과 비슷한 용량이고, 스타벅스 톨 사이즈와 같은 용량입니다. 아무튼 이 캔맥주는 출시하자마자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크루거 사는 캔맥주를 생산하기 이전보다 매출이 무려 550% 이상 상승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7월 이번에는 역대 두 번째로 내셔널 캔 컴퍼니가 개발한 캔에 트루 블루 맥주와 트루 블루 에일이 출시되었고, 8월에는 대형 맥주회사로는 처음으로 파브스트가 수출용 맥주에 캔을 사용했습니다.
2세대. 콘 탑 스타일 Cone Top Style
캔에 맥주를 담는 아이디어까지는 좋았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이 신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병입 공정을 개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영세한 양조장에서는 큰돈을 들여 새로운 캔입 시설을 설비할 수가 없습니다. 콘 탑은 이러한 단점을 해소하고 기존의 병입 공정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캔입니다. 콘 탑은 캔의 상부를 원뿔형으로 만들고 병에 사용했던 크라운 병뚜껑을 그대로 끼워 넣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기존의 병입 설비를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캔 따개를 사용해서 개봉해야 하는 기존의 번거로움보다 훨씬 편하고 가격 또한 저렴하였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좋은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콘 탑은 차곡차곡 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개를 묶는 박스 화가 힘들었습니다.
콘 탑은 1935년 9월에 역대 세 번째 캔 제조회사인 콘티넨탈 캔 컴퍼니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콘 탑을 처음으로 사용한 양조장은 슐리츠(Schlitz)입니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처음으로 미국 이외의 지역인 영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콘 탑은 이후 여러 캔 제조회사에서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 하이 프로파일(High Profile), 제이-스파우트(J-spout), 크라운테이너(Crowntainer) 등으로 변형되어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름은 캔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의 길이나 생김새에 따라 지어진 것입니다. 주로 소규모 양조장에서 사용되었던 콘 탑은 1960년대 거대 양조 기업들이 소규모 양조 회사들을 도산시키면서 점차 종적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2년 전혀 새로운 캔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3세대. 풀 탭 스타일 Pull Tab Style
맥주 캔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혁명은 당겨서 따는 캔입니다. 1962년 3월,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대표적인 맥주 회사 아이언 시티 양조장은 혁명과도 같은 맥주 캔을 개발하였습니다. 풀 탭이라고 불린 이 방식은 캔 상단에 있는 링에 손가락을 끼우고 확 잡아당기면 가볍게 따지는 방식으로 ‘쉽게 열리는 캔(easy-open can)’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1963년 3월에는 콘 탑을 처음 선보였던 슐리츠 양조장에서 풀 탭과 비슷한 캔을 개발하여 팝 탑이라고 부르고 이를 전국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스타일의 캔 맥주는 거침없이 뻗어 나가 1965년에 전체 캔 맥주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풀 탭은 약 10년간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인 전성기를 맞았으나, 캔 뚜껑의 처리 문제가 대두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캔이 요구되었습니다.
4세대. 스테이 탭 스타일 Stay Tab Style
스테이 탭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캔 방식이 이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풀 탭은 혁명과도 같았지만, 캔 뚜껑은 재앙이었습니다. 캔에서 분리된 캔 뚜껑이 마구 늘어나면서 그것 자체가 쓰레기가 되었고, 애완동물이나 야생동물이 캔 뚜껑을 먹고 죽는 경우도 생겼으며, 아이들이 캔 뚜껑을 가지고 놀거나 다치는 일도 생겼습니다. 또한 캔 뚜껑을 캔에 넣어서 버리면서 재활용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스테이 탭이 발명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스테이 탭은 1975년 루이스빌에 있는 폴스 시티 양조장에서 처음으로 맥주에 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강철로 만들어진 맥주 캔은 언제부터 알루미늄 캔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1898년부터 호놀룰루에서 유서 깊은 양조장으로 존재했던 하와이 양조장은 1958년 프리모 맥주에 처음으로 알루미늄 캔을 도입했습니다. 이 캔은 모든 소재가 알루미늄으로 된 11온스 캔이었습니다. 1959년에는 콜로라도에 있는 쿠어스와 볼티모어에 있는 건더 양조장이 미대륙에서는 처음으로 7온스 알루미늄 캔을 도입하였습니다. 1960년에는 슐리츠 양조장이 처음으로 강철 캔의 바디에 상판을 알루미늄으로 덮은 캔을 도입하였습니다. 강철 캔은 점점 자취를 감추어 1984년에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아사히 맥주 캔은 다음 세대를 이끌 수 있을까요? 사실, 아사히의 맥주 캔이 최초의 시도도 아니고 유일하지도 않습니다. 미국의 슬라이 폭스 브루잉은 자사의 맥주 헬레스 골든 라거의 캔에 전체 뚜껑을 들어 올리는 방식을 넣어 미국에서 처음으로 ‘Topless’ 맥주 캔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플래티넘 브루어리가 편의점 자체상표 상품으로 아사히 생맥주 캔과 비슷한 뚜껑을 따는 맥주를 선보였습니다. 아사히 맥주 캔이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지, 한 세대를 이끌 5세대 캔이 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몇 세대의 맥주 캔을 경험해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