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포일을 벗기면 드러나는 코르크를 꽁꽁 감싼 철사, 넌 뭐냐? 이름은 뮈슬레(muselet)로 탄산이 가득한 스파클링 와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스파클링 와인은 코카콜라 병뚜껑과 같은 마개를 사용하기도 한다.) 뮈슬레는 기본적으로 탄산 가스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코르크가 튀어나와 병 속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프랑스어 ‘museler’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입에) 마개를 채운다’라는 뜻이다.
뮈슬레는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나무 마개로 병 입구를 막고 기름칠을 한 천으로 마개를 감싼 후에 밀랍으로 봉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병 속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와인이 흘러나오자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용하게 된 것이 실이었는데 수작업으로 하다가 장치를 고안해 실로 마개를 고정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방식이었다. 또, 와인 셀러에 있는 쥐가 실을 갉아 먹어버리면 무용지물이 되었다. 1844년, 아돌프 자크송(Adolphe Jacquesson)은 현대판 뮈슬레의 시초가 되는 뮈슬레를 개발하고 특허 출원까지 했다.
뮈슬레를 자세히 살펴보면 코르크 윗부분을 덮는 캡이 있고 철사가 캡을 압박하면서 철 사다리 형태로 병목까지 쭉 내려오며 병목을 감싸는 하단 철사 고리와 만난다. 철사 고리를 살짝 풀고 나서 병에서 코르크를 분리하면 샴페인이 열린다. 하단 철사 고리에는 꽈배기 형태의 작은 루프가 있는데 이 루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철사 고리가 풀린다. 6번을 돌리면 완전히 풀린다는 말에 (360도 기준으로는 3번) 세어본 적은 없지만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샴페인을 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 (맥주도 뮈슬레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에 사용하는 뮈슬레가 모두 동일한 규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6번 정도 돌리면 철사는 풀리더라.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작은 뮈슬레가 어쩐지 대단해 보인다. 비교적 가볍고 엄청 두꺼운 철사도 아니건만 두꺼운 유리병과 펀트(punt, 샴페인 밑바닥에 쏙 들어간 부위)와 함께 자동차 타이어와 맞먹는 5~6기압은 거뜬히! 아주 차갑지 않은 상태에서 샴페인을 열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병 속 압력으로 인해 코르크를 살짝만 만져도 펑 하고 터지며 와인이 분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걸 이 뮈슬레가 지탱하고 있는 것 아닌가. 찾아보니 구리나 황동이 아닌 철로 만드는 이유는 저렴하면서도 수명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이다. 또한 우수한 탄성을 갖추고 있으며 비틀림이 적은 등 장점이 많다고 한다. 샴페인을 잘 보존하기 위한 뮈슬레.
뮈슬레 캡(판, plaque)에도 주목해 보자. 일반적으로 주석 도금한 판을 사용하며 양각을 하기도 하고 홈을 파서 철사를 껴 넣을 수 있도록 만든다. 샴페인 하우스의 표식, 엠블럼이나 샴페인 하우스 이름 등을 캡에서 볼 수 있는데 샴페인 생산자들은 이를 일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나는 뮈슬레 캡을 수집하는데 모아두었다가 다채로운 빛깔의 뮈슬레는 하나씩 붙여 액자 형태로 만들기도 했다. 한때 뮈슬레로 의자를 만들어 보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창의력을 발휘해 뮈슬레 작품을 만들기도 하더라. 심지어 뮈슬레를 활용한 펜던트도 있다. 가장 최근에 들은 바로는 뮈슬레 캡을 골프 볼 마커로도 활용할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