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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를 향한 바로 그 질문

앤드루 제퍼드가 드디어 그 질문을 던진다.

클로 부조. 뮈지니와 그랑 에셰조, 에셰조가 뒤로 보인다 / 사진 제공: 앤드루 제퍼드

먼저 한 마디 조언하겠다. 사소하고 세밀한 내용에 쉽게 지루해하는 편이라면 다음 12개 문단은 건너뛰고 곧바로 “바로 그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해라.

순수한 마음으로 부르고뉴를 연구하는 학생들(이 두 번째 문단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을 말한다)은 이 명망 높은 지역에서 각각의 포도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이곳에서 개별 포도밭을 가리키는 말이 ‘클리마’라는 사실은 이미 배웠을 것이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의 일부가 된 이 용어는 “자기 나름의 미기후와 구체적인 지질학적 조건을 갖춘 포도밭 구획으로서 몇 세기 전부터 세심히 표시되고 이름 붙여진 곳”이라는 뜻이다.

“리외디(lieu-dit, 이름 붙여진 곳)”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와인 애호가들은 블렌딩하지 않은 싱글 포도밭에서 난 빌라주급 와인을 살 때 처음 이 용어를 접한다. 예를 들면 뫼르소 르 리모쟁(프리미에 크뤼 제네브리에르 데수 바로 아래 빌라주 포도밭)이나 제브레 샹베르탱 앙 샹(제브레의 프르미에 크뤼 샹포 아래)처럼 말이다.

그렇다 보니 위험한 판단이 뒤따른다. 리외디가 곧 클리마라 불리고, 이것은 그랑 크뤼도 프리미에 크뤼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두 가지 용어를 서로 바꾸어 사용해도 되는 일종의 동의어라고 판단하게 될 수도 있다.

틀렸다.

클리마와 리외디는 서로 다른 뜻을 갖는다. 클리마는 부르고뉴 2000년 역사에 걸쳐 천천히 굳어지게 된 역사적인 포도밭 이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 단어 자체는 1584년에 처음 쓰였다. 당시에는 빌라주 수준 이상으로는 거의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18세기가 되자 일부 개별 클리마들이 널리 통용되었고(볼네의 샹팡, 본의 페브, 몽라셰 자체) 이러한 과정은 INAO가 제정하고 재배자들의 조직인 Organismes de Défence et de Gestion(Defence and management organisations)이 감시하는 아펠라시옹 법령과 함께 최고조에 올랐다.

따라서 각각의 아펠라시옹과 그 규정(the Cahier des Charges)은 부르고뉴 클리마의 궁극적인 참고 문헌이다. 이 문제의 권위자 실방 피티오는 클리마가 “관능적 독립체”를 추구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이 점을 강조한다. “이 문제에서 지나치게 순수주의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독립체들은 또한 사람들의 영향력, 역사적 선례, 경제적 요인 등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반대로 리외디는 프랑스의 토지 대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종합적이고, 중앙집권화된 단일 토지 대장은 대대로 프랑스 왕들의 꿈이었지만 프랑스혁명 전에는 실현되지 못했다. 이것은 후인 1807년에 형태가 잡혀 프랑스 법률로 만들어졌고 이제는 모든 토지 거래와 과세의 기반을 이룬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땅을 사고 그곳에 집을 지었을 때 토지 대장에는 에로(Hérault) 마을에서도 “섹시옹 아이(Section Ay), 129번지”라고 기입되었다. 이곳에서 그 이름이 다른 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프랑스의 모든 곳은 리외디이지만 부르고뉴의 포도밭만은 클리마에 있거나 클리마를 형성한다. 클리마는 리외디보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서너 개 리외디의 일부를 포함할 수도 있고, 여러 리외디 전체 혹은 일부의 앙상블일 수도 있다. 78개 리외디가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로 쓰이는 것이 가능하나 40개 곳만이 그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17개 유명 클리마로 단순화시킬 수도 있다) 아마도 이 지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복잡한 경우가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는 퓔리니 몽라셰 프리미에 크뤼 레 퓌셀 클리마가 두 개의 리외디, 레 퓌셀과 클로 데 메를 포함하고 있는 식이다. 클로 데 에페노의 포마르 프리미에 크뤼 클리마는 레 그랑 에페노와 레 프티 에페노의 리외디 일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유명한 사례는 에셰조 그랑 크뤼 클리마다. 여기에는 10개의 서로 다른 리외디가 전체로 혹은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아니면 11개라고 할 수도 있다. 한 리외디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레 크루오는 비뉴 블랑슈라고도 불린다) 그건 그렇고, 그랑 크뤼 라벨에 리외디 이름을 쓰는 것은 불법이다. 클로 드 부조와 한두 개 다른 그랑 크뤼에서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목적으로 법을 어기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싶다면 『부르고뉴의 클리마와 리외디: 마리 엘렌 망드리외 라시니와 실방 피티오의 지명 역사와 아틀라스(The Climats and Lieux-Dits of the Great Vineyards of Burgundy: An Atlas and History of Place Names by Marie-Helene Landrieu-Lassigny and Sylvain Pitiot)』라는 다소 값비싼 책을 구해 읽는 것도 좋다. 영어판에는 내가 서문을 쓰기도 했다. (무보수였고 나는 이 책이 판매되어도 얻는 수입이 따로 없다) 이 책에는 빌라주마다 클리마와 리외디가 따로 표시된 지도뿐 아니라 이 이름들의 유래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다. 실방 피티오는 똑같은 내용으로 새 코트 샬로네즈에 대한 책을 2개 언어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자, 그렇다면 이 중요한 질문이 과연 무엇일까? 이제 곧 알려주겠다.

클리마는 몇 세기에 걸쳐 천천히 진화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펠라시옹으로 정해지면서 법적으로 고정되어 진화가 멈췄다. 그것은 주로 1930년대의 일이었다. 안 좋은 날씨와 세계적인 경제 위기, 닥쳐오는 전쟁 가능성 같은 것들로 점철된, 와인 생산에 있어 힘든 10년이었다.

지구 온난화는 코트 도르 주변 지역에서 포도가 익을 가능성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다음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코트 드 본의 수확은 올해 분명 8월부터 시작될 것이다. 2년 연속 일어난 일이다. 이 아펠라시옹이 생겨났을 때만 해도 10월의 수확이 일종의 규칙이었는데 말이다.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 경제 역시 1930년대의 재배자가 살아 있다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 그랑 크뤼 토지는 헥타르 당 몇백만 유로에 팔린다. 부르고뉴 와인 가격은 급등했다. 조상들보다 훨씬 더 고등 교육을 받은 재배자들은 근면히 일해 엄청난 보상을 누린다.

따라서 코트 도르의 포도 성숙 잠재력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왔고, 클리마와 문화 둘 다 1930년대의 포도밭 계층 구조가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특정 포도밭의 잠재력이 토양에 좌우된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과학적 시각에서 볼 때에 의문스러운 판단이다) 1930년대 많은 프리미에 크뤼가 가졌던 것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가진 기존의 리외디 빌라주 포도밭이 있을 수밖에 없고, 2018년에는 상당한 포도 재배 잠재력을 지닌 숲이나 덤불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곳이 1938년에는 아무런 포도 재배의 역사가 없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땅은 리외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아직 클리마로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생산자들은 모두 이것을 논의해야 합니다.” 클로 드 타르의 자크 데보주의 말이다. “등급은 모두 지난 세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기후가 훨씬 차가웠을 때 말이죠. 지금 다시 한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겁니다. 벨에어(샹베르탱 위 프리미에 크뤼와 빌라주)는 이제 작은 샹베르탱입니다.” 토페노 메름의 로멘 토페노가 말했다.

따라서 바로 그 질문은 이것이 되어야 한다. 부르고뉴에서 클리마를 규정짓는 방식의 진화를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일까?

물론 그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코트 도르에 수십, 어쩌면 수백 헥타르의 완전히 새로운 빌라주가 생길 것이고, 기존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에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경제적인 부담도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클리마의 경계를 정하는 건 악몽 같은 일이 될 것이고, 그 과정 전체는 법정에서 끊임없이 논의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재배자를 아직 한 명도 만나지 못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던져 마땅한 질문이다. 그리고 완전히 변화된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부르고뉴의 잠재력을 무시하고, 과거에 이 땅을 일군 그 모든 사람들의 정신과 노력을 저버리는 일일 것이다. 이곳도 과거에는 모두 숲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 작성자 Andrew Jefford
  • 번역자 Sehee Koo
  • 작성일자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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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사는 Decanter의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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