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무알코올 맥주를 마셔야 할 때가 옵니다. 저는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무알코올 맥주를 즐겨 마시고 있습니다. 제 개인 인스타그램은 무알코올 맥주의 시음기로 넘쳐나죠. 그러다 보니 무알코올 맥주에 관심 있는 이들과 자주 대화를 하게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알코올 맥주를 즐겨 마시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이미 무알코올 맥주가 맥주 시장의 1% 가량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맥주 브루어리들이 자사의 대표 맥주를 무알코올 맥주로 출시하고 있죠.
맥주는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효모는 워트(wort; 맥아즙)에 포함된 당분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배출합니다. 무알코올 맥주는 알코올을 적게 배출하는 특수 효모를 사용합니다. 물론 무알코올 맥주의 브루잉 프로세스는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죠.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도 알코올은 발생합니다. 발효 후 추가적인 공정을 거쳐 알코올을 빼내는 작업을 하는데, 이 공정을 거치면서 맥주의 알코올뿐만 아니라 맥주의 풍미도 손실됩니다. 무알코올 맥주가 맥주보다 맛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간혹 무알코올 맥주인데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어 놀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후공정을 거쳐도 알코올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기에, 0.05%나 0.5% 등 맥주마다 다른 알코올 도수를 가지는 것입니다. 완전히 0.0%인 무알코올 맥주는 이런 발효와 후공정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맥주 맛을 흉내 내어 만든 맥주 맛 음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여 전자를 비알코올 맥주, 후자를 무알코올 맥주라고 부릅니다. 즉 비알코올 맥주는 허용 한도 내에서 어느 정도 소량의 알코올을 가지고 있고, 무알코올 맥주는 알코올이 전혀 없는 제품입니다. 하이트 제로나 클라우드 제로가 무알코올 맥주이고, 이 외 대부분은 비알코올 맥주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러한 구분을 잘 알지 못하죠. 대부분 무알코올 맥주로 통용되는 이유입니다. 제 글에서도 제목을 ‘무알코올’이라 했지만, 사실은 ‘비알코올’ 맥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무알코올 맥주와 비알코올 맥주의 기준은 없습니다. 가령 미국에서는 제품에 알코올이 전혀 없을 때 알코올-프리(alcohol-free)라고 하고, 알코올이 0.5% 미만일 경우에는 넌-알코올(non-alcohol)이라고 합니다. 영국은 0.05% 미만까지는 알코올-프리 또는 제로-알코올이라고 쓸 수 있으며, 0.5%까지는 넌-알코올, 1.2%까지는 로우-알코올이라고 합니다. 미국과 영국 외의 유럽에서는 조금 더 관대합니다. 0.5% 미만까지 알코올-프리라고 쓸 수 있습니다.
한국의 주세법에서는 알코올이 전혀 없는 제품을 무알코올, 1% 미만이 포함되어 있으면 비알코올이라고 구분합니다. 알코올-프리는 무알코올이고 넌-알코올은 비알코올이라는 식이지만, 아무래도 무(無)와 비(非)의 차이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전 세계 맥주가 공존하는 한국의 시장에서 무알코올 맥주는 더더욱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1% 미만이 비알코올 맥주라고 하지만, 비알코올 맥주라고 해서 1%의 알코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비율은 맥주마다 다르고, 같은 맥주라고 해도 각 양조마다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비알콜 맥주가 0.5%의 알코올을 가졌다고 치면 그 양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0.5% 정도의 알코올은 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령 바나나에는 0.2% 정도의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금 검게 숙성된 바나나라면 0.4%까지 증가합니다. 호밀빵에는 0.18%, 숙성된 배에는 0.04%의 알코올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런 음식에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맥주와 마찬가지로 발효의 결과 때문입니다. 발효는 술뿐만 아니라 간장이나 식초, 빵 등을 만들 때에도 일어나고, 당분이 있는 과일에서 자연적으로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의도되지 않은 알코올이 음식에 함유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는 생각보다 상당한 수준의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알코올음료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양입니다. 물론 취할 리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0.5%의 비알코올 맥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죠. 0.5% 비알코올 맥주 10개를 마시면 취하지 않을까? 0.5% 비알코올 맥주 10개면 이론적으로는 맥주 5%와 같습니다. 하지만, ‘취한다’라는 것은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아니라 혈중알코올 농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보통 혈중알코올 농도가 0.04%에 도달하면 근육이 이완된 느낌을 받고 기억력에 손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취한다’라는 의미를 이런 경미한 영향을 끼치는 혈중알코올 농도 0.04%라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0.5%의 비알코올 맥주를 마시고 혈중알코올농도 0.04%까지 도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의 맥주를 체내에 채워 넣는 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마시는 속도와 비슷하게 신체가 알코올을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0.5% 맥주 1파인트를 마시면 몸은 평균적으로 16분 안에 알코올을 처리한다고 합니다. 비알코올 맥주에도 알코올은 있지만 아무리 빨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마셔 본 비알코올 맥주 중에서 몇 가지 제품을 추천합니다. 모두 국내에 수입되고 있습니다.
– 대기업 라거류 : 하이네켄 논알콜릭, 칼스버그 제로
– 크래프트 라거류 : 투루츠 브루잉 이너프세드, 빅드랍 브루잉 업타임 크래프트 라거
– 페일 에일/IPA류 : 투루츠 브루잉 스트레이트드랭크, 투루츠 브루잉 뉴웨스트, 브뤼셀 비어 프로젝트 피코노바, 제주맥주 제주누보, 빅드랍 파라디소 시트라 IPA
– 스타우트류 : 빅드랍 브루잉 갈락틱, 어프리데이 스타우트
– 프루트류 : 볼파스엔젤맨 파스브라우스, 리프만스 프루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