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
맥주의 기초는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맥주를 마시는 행동은 발효라는 또 다른 세상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만나는 행위입니다. 발효의 세계를 이해해야만 맥주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발효와 부패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의 메커니즘이 모두 미생물의 작용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중 음식에 존재하는 박테리아가 몸에 이로우면 발효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발효를 폭넓게 정의합니다. 바로 발효를 컬쳐(culture)라고 하고 있습니다. 발효는 미생물학에서 지칭하는 ‘세균 배양’에서 시작하여 농작물 재배와 조리법까지 인류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문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구르트를 발효시키기 위해 우유에 첨가하는 종균부터 발효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문화, 과학, 종교 등 모든 것을 뭉뚱그린 것이 컬쳐입니다.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은 광범위한 발효의 정의를 중심으로 두고, 발효의 방식과 개념을 설명하면서 더 나아가 발효를 포함한 음식 전반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발효의 과학과 역사 그리고 세계사가 결합한 책입니다. 발효의 기본적인 개념, 발효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조명한 이후 발효의 종류와 알코올 생성 여부에 따라 발효 식품을 유형별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발효 분야는 당분이 있는 재료의 알코올 발효, 채소와 과일의 발효, 새콤한 건강 음료의 발효, 우유의 발효, 곡물과 작물의 발효, 콩류와 씨앗류, 견과류의 발효, 육류와 어류, 달걀의 발효 등 매우 광범위합니다. 이중 관심을 끄는 부분은 맥주를 포함한 곡물로 빚는 알코올음료의 발효입니다.
전 세계에는 맥주와 유사하게 곡물로 빚는 발효주가 존재합니다. 테스기노는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전통적으로 즐기는 맥주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수수로 만든 전통 맥주가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풍부한 쌀을 주재료로 삼는 술이 광범위하게 존재합니다. 일본의 사케와 네팔의 조 통바와 같은 술이 대표적입니다. 남미의 아마존에서는 마사토라는 발효주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이 카사바를 씹는다고 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곡물 발효주는 한국의 막걸리입니다. 막걸리 중에서도 한국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는 고구마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터넷의 정보와 한국인 지인의 설명만 가지고 고구마 막걸리를 직접 제조하였다고 합니다.
이 책은 발효 음식을 이해해 보면서 맥주를 다른 시각으로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9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입니다. 완독을 목표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발효 음식의 과학>
효모는 거의 모든 곳에서 자라는데, 인간의 몸속도 예외가 아닙니다. 텍사스에 사는 61세의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습니다. 이 남자는 평소 술을 마시지도 않는데, 혈중 알코올 농도가 0.34%에 달했습니다(미국의 음주 운전 기준이 0.08%). 이 남자를 취하게 만든 것은 뱃속에 있는 효모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시에’였습니다. 이 남자는 수년 전에 항생제를 복용했는데, 이 항생제가 효모의 활동을 억제하는 장내 미생물을 고갈시켜 버린 것입니다. 미생물이 고갈돼 효모의 수가 많이 늘어난 뱃속에서 맥주 효모는 섭취한 음식에서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습니다. 즉 이 남자의 소화기관이 바로 양조장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Fermented Foods 발효 음식의 과학>에 소개되어 있는 일화 중 하나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라 먼저 소개해 드렸습니다.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을 읽고 싶으나 방대한 양이 부담이라면 같은 주제로 쓴 <발효 음식의 과학>을 추천합니다. 책의 양은 2백 페이지 중반이어서 짧은 기간 내에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발효 음식의 역사>나 <발효 음식의 세계사>가 더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몇 개의 분야를 선정해 발효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다루는 발효 음식에는 맥주와 와인 같은 발효주, 발효 빵, 치즈, 사워크라우트나 김치와 같은 발효한 채소, 요구르트, 그리고 소시지와 발효육 등입니다. 게다가 이 책은 전 세계의 발효 음식을 다루고 있으니, 세계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시에, 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 락토바실루스, 페디오코쿠스(이상은 모두 맥주와 관련된 미생물) 등 수없이 많은 학명을 제시하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해서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 책은 총 8개의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와인을 포함해서 맥주에 관해서는 2개의 장을 할애하고 있으니 역시 발효 음식의 최고는 맥주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발효에서 균을 연구한 세 명의 과학자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파스퇴르가 와인이 상하는 원인을 조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발효주에서 효모의 역할을 밝혀낸 이야기, 한센이 칼스버그 연구소에서 다양한 효모 균주에서 순수한 맥주 효모를 분리하여 배양에 성공한 이야기, 그리고 프랑스 파스퇴르의 라이벌인 독일의 과학자 로베르트 코흐의 이야기까지. 맥주의 역사에서 세 명의 과학자에 의해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맥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주 짧은 맥주사’를 읽는 느낌으로 1장과 2장만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시작한 맥주의 역사를 짧지만, 핵심을 관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마스터 셰프를 위한 푸드 페어링>
어떤 사람들은 즉흥적으로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고수한 방식대로 식재료를 조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거나 식재료를 조합하는 것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기호나 문화적인 편향성을 넘어서면 음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무한히 많은 푸드 페어링 방법론이 존재합니다.
이 책은 푸드 페어링의 이론적인 기초와 85가지 재료의 푸드 페어링 방법을 소개합니다. 특히 푸드 페어링의 이론을 설명할 때 아로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아로마를 통해서 우리 뇌가 냄새를 어떻게 감지하고 이를 맛으로 인지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아로마를 과일 향, 꽃 향, 허브 향 등 14개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것을 푸드 페어링의 기초로 활용합니다. 푸드 페어링을 설명할 때는 식재료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과 아로마 휠을 설명하고, 이 식재료와 관련된 페어링 조합 10가지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각각에서 발현되는 아로마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푸드 페어링 재료 중에 맥주와 술이 있어 반갑습니다. 맥주는 필스너와 람빅을 대표적인 예시로 하고 있으며, 그 밖에 소비뇽 블랑, 카베르네 소비뇽 등의 와인과 코냑, 버번위스키가 있습니다. 그 밖의 식재료 중에서는 치즈도 반갑습니다. 치즈에는 블루 치즈, 염소젖 치즈,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브리 치즈가 있습니다. 식재료 전체 중에서는 과일과 채소류가 가장 많고, 된장과 김치와 같은 한국적인 재료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번에 완독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니,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보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세상의 모든 치즈>
시중에는 여러 종류의 치즈를 설명하는 책이 있습니다. 치즈를 비슷한 것끼리 분류하여 설명하는 책도 있고, 나라별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책도 있습니다. 치즈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은 치즈가 발생한 시대순으로 나열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치즈>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치즈의 역사부터 차근히 설명하면서, 치즈를 종류별로 생산지별로 분류하여 제시하고, 치즈의 테이스팅과 페어링까지 치즈에 관해서라면 빠짐없이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중에 핵심은 2장에 소개된 세상의 모든 치즈입니다. 그 수가 무려 413가지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치즈가 있다니 놀랐습니다.
치즈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맥주나 와인을 좋아한다면 치즈를 술안주로 생각할 것이고, 음식을 좋아한다면 치즈 그 자체가 훌륭한 식재료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치즈는 알코올음료뿐만 아니라 다른 식품까지 완벽히 페어링 되는 존재입니다. 보통 치즈에 어울리는 술로 와인이나 위스키를 떠올리지만, 맥주 애호가로의 제 입장은 치즈에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술은 맥주입니다. 세상에는 수백 종의 맥주가 있습니다. 라거처럼 대다수가 즐기는 풍미가 약한 맥주도 있지만, 밀맥주나 IPA와 같은 독특한 풍미가 있는 맥주, 와인을 연상시키는 사우어 맥주, 수도원 맥주나 발리와인과 같은 고도수 맥주 등 하나의 범주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맥주의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치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일상적으로 즐기는 체다 치즈나 프레쉬 치즈와 같은 가벼운 풍미의 치즈가 있는가 하면, 에멘탈이나 하우다 치즈와 같은 장기간 숙성한 치즈도 있고, 블루 치즈나 흰 곰팡이 치즈처럼 냄새가 고약한 치즈도 있습니다. 맥주의 스펙트럼과 치즈의 스펙트럼을 대입시켜 볼 때, 수많은 조합이 나오고 이 중에서 ‘맛의 페어링’을 찾는 과정은 대단히 즐겁습니다. 게다가 맥주에는 화이트 와인처럼 약한 산미와 톡 쏘는 질감이 있기 때문에 치즈의 지방과 잘 어울립니다.
이 책은 다른 치즈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치즈가 내는 풍미의 원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령 치즈는 어떤 동물의 젖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분되기도 하는데, 21종의 낙농 동물을 제시하고 품종의 차이에 따른 치즈를 설명해 줍니다. 특히 낙농 동물이 먹이를 섭취하고 이를 소화하는 과정과 결과적으로 따르는 젖의 질이 치즈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치즈의 맛과 냄새는 숙성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숙성 과정에서의 세 가지 미생물, 즉 세균, 곰팡이, 효모의 역할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미생물과 원재료 사이의 균형과 공생이 치즈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대부분을 413개의 치즈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기 때문에 한 번에 완독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신 책장에 꽂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는 치즈의 바이블로 삼기에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