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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벤브로이의 엠블럼은 왜 서서 걷는 사자일까? – 문장(紋章)으로 읽는 맥주 이야기

뢰벤브로이의 엠블럼은 왜 서서 걷는 사자일까? – 문장(紋章)으로 읽는 맥주 이야기

염태진 2023년 7월 18일

그리스 로마 신화에 푹 빠져 사는 3학년 아이와 매일 같이 스타벅스로 출근하는 아빠. 둘 사이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생겼으니, 그것은 스타벅스의 문장 세이렌이었습니다. 스타벅스의 기업 로고인 세이렌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반은 새(혹은 물고기) 반은 사람인 모습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선원을 유혹해 빠져 죽게 만든다는 팜므파탈입니다. 아빠가 스타벅스 로고가 세이렌이라고 화두를 던지자, 아이는 세이렌에 관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로 멋지게 받아칩니다. 그러자 아빠는 엉뚱하게도 스타벅스의 문장이 아닌 맥주의 문장 쪽으로 파울을 날립니다. 유럽에서는 왕이나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장이 존재했던 것처럼 맥주의 전통을 상징하는 문장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문장이 어떻게 시작되어 맥주를 상징하는 문장까지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스타벅스의 기업 로고 세이렌

유럽에서 문장의 기원은 12세기 기사의 투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얼굴을 모두 가린 투구를 쓰면 시야가 좁아졌기 때문에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방패에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 문장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려지기도 했지만, 점점 기사나 집안을 상징하는 심벌이 되었고, 이것이 대대로 세습되면서 전통적인 문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12세기에 발발한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문장의 사용이 활발해졌습니다. 십자군은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당한 기독교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유럽 각 지역에서 모인 부대였기 때문에, 각각의 기사나 가계, 지역 집단, 나라 등을 표시하는 문장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이때가 처음이 아니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전투에 사용하기 위해 방패에 문양을 넣었다고 하고, 고대 북유럽 게르만족이 사용했던 룬문자와 바바리아의 휘장이 중세 문장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1차 십자군 전쟁과 2차 십자군 전쟁 중에 문장의 사용이 활발해졌고 대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러한 문장은 처음에는 전투 중에 중무장한 기사를 식별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었고 비전투 중에도 문장은 널리 확대되었습니다. 기사를 식별하기 위한 표식에서 왕이나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도 파고들어 대학, 교회, 수도원, 도시, 길드 등의 공동체를 알리기 위한 심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중세 길드의 문장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중세의 수공업자들이 문장을 사용한 부분입니다. 중세의 수공업자들은 보통 도제 방식으로 운용되었는데, 이들은 같은 직업끼리 길드라고 불리는 일종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길드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으며, 맥주, 구두, 직물, 빵, 활 등 동종의 기술자 집단이 닫힌 공동체로 운영했습니다. 길드는 제품의 품질 관리뿐만 아니라 직종별로 독점적인 판매를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면서 중세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당연히 이 집단에서도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집단을 상징하는 문장이 내부적으로는 조직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외부적으로는 기술과 상품을 홍보하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길드의 문장이 아래 그림에 있습니다. 목수는 도끼와 자, 대장장이는 망치와 도끼, 철물 금속 공은 열쇠 등 길드의 문장에는 직종을 연상시키는 도구나 마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맥주에서도 양조자의 별(Brewer’s Star)이라는 공식적인 문장이 있습니다. 다음의 그림은 15세기에 맥주를 양조하는 수도사를 그린 그림인데, 여섯 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이 왼쪽 상단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다윗의 별이 아닙니다. 유럽에서 15세기부터 사용한 양조자의 별이라는 문장입니다.

양조장의 별이 그려진 가장 오래된 그림, 15세기

언뜻 보아선 이 문장이 맥주와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문장의 탄생은 연금술과 관련이 있습니다. 금속에서 금을 정련하는 시도로 알려진 연금술처럼, 이 양조자의 별에는 불, 물, 하늘, 땅에서 맥주가 만들어진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꼭짓점이 위로 향한 삼각형은 불을 뜻합니다. 꼭짓점이 아래로 향한 삼각형은 물을 뜻합니다. 아래로 향한 삼각형의 윗변은 하늘(공기)을 말합니다. 위로 향한 삼각형의 아랫변은 땅(지구)을 말합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균형을 맞추어 탄생한 것이 맥주입니다. 나중에는 여섯 개의 꼭짓점에 모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남은 꼭짓점 두 개를 그냥 두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남은 꼭짓점 두 개의 뜻은 곡물과 홉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 문장은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성분인 물, 곡물, 홉, 효모(공기) 모두를 담게 되었습니다.

양조자의 별의 의미

양조자의 별은 유럽에서 특히 독일 전역에 널리 확대되어 양조장이나 여관 등에서 사용하였습니다. 이 문장을 건물의 외벽 눈에 띄기 좋은 곳에 걸어 두었는데, 별의 안쪽 공간에 맥주잔이나 홉, 맥주를 만드는 도구 등 맥주와 관련된 심벌을 넣어 그 뜻을 분명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중세의 어느 여행자가 남부 바이에른에서 이 별을 걸어둔 여관을 보게 된다면 최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여관은 맥주를 양조할 권한이 있다는 것과 목마른 여행자에게 신선한 맥주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 말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현대에 와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유라면 종교적인 상징(유대의 별)과 혼동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더욱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양조자의 별

맥주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양조자의 별을 사용했다면, 맥주 양조장은 자신만의 고유한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문장에 들어가는 심벌은 반드시 맥주를 상징한다기보다는 유럽에서 대대로 사용해 온 전통의 상징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사자, 열쇠, 왕관 등입니다. 독일의 유명 양조장의 문장을 살펴보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맥주 상표에 대한 숨은 의미를 꺼내 보겠습니다.

서서 걷는 사자 문장을 가진 양조장, 뢰벤브로이 (Löwenbräu)

뢰벤브로이는 독일 뮌헨 지방의 맥주 양조장으로 옥토버페스트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여섯 개 중 하나의 양조장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뢰벤브로이 헬레스가 수입되어 나름대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뢰벤브로이는 1383년경에 설립된 유서 깊은 양조장으로 맥주 병에 그려진 사자 문장으로도 유명합니다.

사자는 독수리와 함께 유럽의 문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동물입니다. 사자는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신화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왕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반면 독수리는 황제를 상징합니다. 신성로마제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의 문장에는 독수리가 있습니다). 특히 영국의 리처드 1세가 사자를 문장으로 사용했고, 그의 별명 또한 ‘사자 심장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또한 사자는 국가의 문장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는데,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불가리아 등의 나라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의 사자 문장을 뢰벤브로이가 맥주 상표로 사용한 것입니다. 뢰벤브로이는 성경 다니엘서의 사자 굴에 빠진 다니엘의 이야기로부터 사자 모티브를 따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사자는 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뢰벤브로이 맥주 병에 그려진 사자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사자 문장의 형태가 그대로 보입니다. 사자가 서서 걷고 오른쪽을 향한 점(문장학에서는 왼쪽을 오른쪽이라 함), 날카로운 발톱이 4개인 점, 혀가 몸과 다른 색으로 대조를 이루는 점(맥주병에는 혀가 빨간색으로 그려져 있음) 등은 사자를 문장으로 표현할 때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뢰벤브로이와 벡스의 문장

열쇠 문장을 가진 도시 브레멘의 양조장, 벡스(Becks)

벡스는 독일의 북부 도시 브레멘에 있는 150년 전통의 양조장입니다. 2001년 벨기에의 인터브루(현재는 AB InBev)에 팔렸지만 당시에는 독일에서 4번째로 큰 양조장이었습니다. 벡스의 문장은 열쇠입니다. 열쇠 문장은 십자가와 함께 종교적인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열쇠의 유래는 성경에서 왔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네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열쇠의 권력을 위양 받고, 이것을 다시 로마 교황에게 이양하여, 열쇠는 가톨릭의 권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열쇠는 몇몇 도시에서 문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독일 대주교의 하나였던 쾰른이 있는 라인 지방이나 프랑스의 나르본,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 등의 문장에서 열쇠가 보입니다. 브레멘은 제국의 직속 도시가 되기 전까지 대주교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브레멘은 문장에 열쇠를 사용하였고, 현재까지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문장의 의미도 변화했습니다. 처음에는 ‘천국의 열쇠’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현대에서 와서는 도시의 지리적 위치를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닷길로의 열쇠’, ‘세계로의 열쇠’라는 의미입니다. 브레멘은 한때 한자 동맹에 속해 있는 자유 무역 도시였습니다. 다른 독일 맥주들이 지역 맥주를 고집하고 있을 때, 무역의 도시 브레멘에서 태어난 벡스는 수출용 맥주를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벡스는 일찌감치 독일 전역에서 유통되었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 현지 양조장을 세워 동아시아 지역의 수요를 충족시켰고, 미국에서는 2012년부터 세인트루이스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습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 맥주

바이에른 왕실이 만든 양조장,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호프브로이하우스는 1589년 바이에른의 공작 빌헬름 5세가 왕실과 귀족, 그리고 왕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맥주를 직접 공급하기 위해 세운 양조장입니다. 당시 왕실에서 일하는 직원만 60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맥주를 제공하기 위해 주변에서 맥주를 사 오는 비용이 너무 크게 들었다고 합니다. 빌헬름 5세는 왕실 직속의 양조장을 만들기로 결심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비어홀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옥토버페스트에서 2번째로 큰 텐트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현재 바이에른주 정부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왕실 양조장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문장에는 왕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문장에서 왕관은 14~15세기부터 나타났는데 왕이나 제후의 상징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러한 관습이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상급 귀족에서 하급 귀족까지 확대되었고, 신분에 따라 왕관의 형상에 차이를 두었습니다. 독일이나 영국에서 왕관을 문장에 사용할 때, 국왕, 공작, 백작, 후작, 자작, 남작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보통 국왕의 관을 ‘크라운’이라 하고, 왕세자 이하 나머지 귀족의 관을 ‘코로넷’이라고 합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가 왕실의 양조장인 것처럼 그 문장에 그려진 관 또한 크라운입니다.

중세 프랑스의 왕관

유럽의 문장은 동양에 사는 우리들에겐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중세의 문장이 현대에 와서 국가의 깃발이나 기업의 엠블럼으로 발전하여 꽤 친숙한 것도 사실입니다. <왕좌의 게임>이나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의 판타지물에서는 중세의 배경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문장이 중세 수공업자의 길드까지 파고들어, 전통이 있는 맥주 양조장들이 기업 로고로 문장을 사용한 것은 알면 알수록 흥미롭습니다. 맥주는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코와 입으로 마시지만, 역사와 스토리를 알고 즐기는 종합 예술로서의 알코올 음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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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진

맥주인문학서 저자. 맥주로 내장도 채우고 뇌도 채우며 '날마다 좋은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 iharu@kakao.com / 인스타 iharu04 / 브런치 https://brunch.co.kr/@i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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