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돼지를 사육하는 모든 국가에서 돼지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돼지의 털까지 청소용 솔로 탈바꿈하는 유럽을 봐도 이 말은 틀리지 않는다. 특히 식탁 위에서 돼지고기의 활용은 멈추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햄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만든 다양한 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나름 이슈가 되는 장소들도 늘고 있다. 그래도 기본은 건강하고 맛있게 살찐 돼지에 있고 완벽한 숙성을 위한 장소와 기술이 필요하다.
[염장과 숙성의 시간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
기원전(BC 234~BC 149)에 살았던 학자 마르쿠스 포르치우스 카토(Marucus Porcius Cato)의 저서 농업론(De Agricoltura)을 보면 그 당시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언급된 기술은 오늘날 염장 방법과 유사하다고 한다. 또한 1000년경 돼지가 스페인에서 수입되어 냉장 시설이 없던 당시에 장기간 보관을 위한 저장법으로 소금을 사용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있다. 이처럼 소금은 음식의 재료를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필수 요소이다.
가장 득을 크게 본 것은 역시 가난한 농부들에게 중요한 식량이었던 돼지고기이다. 돼지를 잡으면 지금처럼 버리는 부분 없이 골고루 활용해야 했는데 냉장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남은 고기를 상하지 않게 소금에 절여 보관했던 것이 건조 숙성한 햄의 시초가 된 것이다. 돼지고기를 숙성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음식 재료를 만들어 낸 곳으로는 먼저 유럽 지역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은 유럽연합으로부터 원산지보호인증제도를 받고 있다. 이는 생산되는 햄 종류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셈으로 해외로의 활발한 수출 활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산지보호인증을 받고 생산되는 제품들에는 나름의 인증 표시를 하게 되어 있으며 숙성 시기가 끝나고 시장에 출시되기 전 전문가들의 엄격한 판단에 의해 매번 까다로운 품질 검사를 거쳐야 인증의 표시인 불도장을 받고 얼굴을 내밀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소비되는 인증된 햄의 종류에는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스페인의 하몽이 주를 이루고 그 밖에 프랑스의 잠봉, 독일의 프랑크푸르터(소시지) 등이 있다. 해외여행 시 이밖에 다른 햄을 시식할 기회가 있다면 참고로 유럽연합이 인증한 각 나라의 등급 표시 제도를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프로슈토(햄)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중부에서 북부까지 총 10곳의 지역을 지정하고 돼지 사육과 생산을 허용하고 있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베네토, 롬바르디아, 피에몬테, 에밀리아 로마냐, 토스카나, 라찌오, 아브루쪼, 마르께, 움브리아가 그곳이다. 이 지역들은 돼지를 키울 수 있는 환경과 프로슈토를 숙성하기 적합한 날씨를 가지고 있다. 이들 10곳의 지역에서 사육된 돼지들만을 가지고 이탈리아의 햄을 대표하는 프로슈토가 탄생된다. 각각의 지역에는 돼지의 사육과 생산을 책임지는 협동조합이 구성되어 있고, 사육부터 생산과정까지 인증을 받아 출시되는 프로슈토의 연간 생산량은 대략 850만 개에 달한다.
[이탈리아의 전통 햄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 (Il Prosciutto di San Daniele)]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는 프로슈토 파르마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이탈리아 북부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에 위치한 산 다니엘레는 알프스 크라니케(Alpi Craniche)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고 정면으로는 아드리해와 맞닿아 있다. 이런 지역적인 요건은 프로슈토를 숙성하는 동안 자연적인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주어 특유의 향기와 맛을 들게 한다. 이곳에서 사육하는 돼지들은 이들만을 위해 재배된 곡물을 먹고 또한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Whey)을 먹여 단백질과 비타민을 풍부히 섭취하게 된다.
프로슈토를 만들기 위한 돼지들은 무게, 근육의 형태, 고기의 지방 부분까지 철저하게 검사하여 선택된다. 적합한 돼지는 생후 9개월 이상, 무게는 약 140kg 그리고 프로슈토를 만드는 뒷다리만의 평균 무게는 약 15kg 정도여야 한다. 지방이 많고 근육이 규칙적이지 않은 앞다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숙성 기간은 일반적으로 13개월을 유지한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는 1996년 유럽연합으로부터 원산지보호인증인 DOP 등급을 받아 생산 단계마다 엄격한 기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 즐기기]
빠니니, 파스타, 리조또, 고기요리에도 많이 쓰인다.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는 엄선된 돼지 뒷다리를 염장한 것이어서 칼로리가 낮고, 질 좋은 단백질, 비타민 B1, B6, 엽산, 칼슘이 풍부하고 대부분 불포화지방이라 몸에 해로운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 만드는 방법]
1 염장과 세척
휴지한 돼지 뒷다리에 소금을 뿌려주는 과정이다. 소금은 천일염을 사용하고 염장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살라토레(Salatore)라 불리는 장인이 담당한다. 소금을 입힌 뒷다리는 24~48시간 동안 온도 0~4°C를 유지한 공간에서 보관된다. 보관해 오던 뒷다리를 미지근한 물로 씻어 여분의 소금기와 불순물을 제거한다.
2 숙성
돼지 뒷다리의 표면에 돼지기름과 밀가루, 쌀가루, 옥수수가루 등을 섞어 고루 펴서 발라준다. 이는 숙성기간 동안 외부의 먼지를 침투하지 못하게 하고 표면이 너무 쉽게 말라버리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숙성 기간은 13개월이다.
3 검사
출시 시간이 정해지면 프로슈토 전문가가 검사를 한다. 이들은 말의 뼈로 만든 굵은 바늘 모양의 도구로 숙성된 돼지 뒷다리를 찔러 묻어나오는 내용물로 냄새와 맛을 판단한다.
4 인증받기
기준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돼지 뒷다리에는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라는 불도장을 찍어 인증을 받는다. 이 과정은 협동조합에서 주관한다.
[스페인의 전통 햄 하몽 Jamón]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에 처음 돼지가 들어온 것은 1000년경쯤이다. 페니키아인들이 중동에서 야생 멧돼지를 교배해 사육하던 돼지를 수입하면서 시작된다. 냉장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특별히 복잡한 과정 없이 소금을 뿌려 두면 적당한 자연환경 아래 시간이 흐르면서 숙성이 진행되어 먹기 좋은 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몽은 11월 첫째 주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스페인의 북부는 습도가 높아 하몽을 건조하는데 적합하지 않아 주로 중남부의 까스티아 이 레옹, 까스띠아-라 만차, 안달루시아 등지에서 생산된다. 스페인의 하몽 역시 유럽연합으로부터 원산지보호인증을 받아 엄격한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몽은 크게 하몽 이베리코와 하몽 세라노로 나눈다.
[하몽 이베리코 (Jamon Iberico)]
하몽 이베리코는 털이 뻣뻣하고 발굽이 까맣고 도토리를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다. 스페인 남서부와 포르투갈 남동부 지역의 토종인 이베리코 돼지는 다른 종에 비해 살이 빨리 찌고 마블링이 많다. 이베리코 돼지는 무성한 초원지대에서 방목으로 키워지며 이곳에는 주로 코르크나무, 참나무, 야생 허브와 풀이 있어 돼지가 크기 좋은 환경을 지닌다. 10월에서 2월 사이에 돼지들이 좋아하는 도토리를 하루에 9kg 먹여 몸무게를 60% 정도 늘려 마블링을 만들어 내는데 이 지방은 단일 불포화지방으로 합성된다. 하몽 이베리코도 돼지의 뒷다리만을 사용하는데 근육은 붉은빛을 띠고 지방으로 인해 독특한 향을 풍기고 도토리에서 비롯된 고소한 향기가 특징이다.
하몽 이베리코는 상수리나무 숲에서 방목하여 기른 돼지로 만든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타(Bellota: 도토리), 목초지에서 도토리와 곡물을 먹은 돼지로 만든 하몽 이베리코 데 레세보, 곡물 사료를 먹여 돼지우리에서 사육한 하몽 이베리코 데 세보로 구분할 수 있다.
[하몽 이베리코 즐기기]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먹을 때 섬세한 견과류 향과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풍미, 입 안에서 녹는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지방이 부드럽게 녹아야 제맛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몽은 너무 차게 먹으면 좋지 않다. 이밖에 다양한 전채요리, 술안주, 식재료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하몽은 비교적 열량이 낮은 편이고 지방 중에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이 들어있다. 그 밖에 비타민 B1, B6, B12, 칼슘, 철분, 아연, 마그네슘이 포함되어 있어 영양가가 높다.
[하몽 이베리코 만드는 방법]
1. 돼지 뒷다리 구입
무게 7~8kg 정도의 품질이 우수한 고기를 구입한다.
2. 염장과 세척
돼지 뒷다리를 천일염을 덮어서 하루 동안 염장해 두었다가 세척한다.
3. 휴지
소금을 닦아낸 하몽을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창고에 매달아 90일가량 보관한다. 이때 처음에는 온도와 습도를 높였다가 다시 낮춰준다.
4. 건조와 숙성
하몽을 창고에 보관하며 서서히 숙성한다. 하몽의 종류에 따라 숙성 기간이 달라지고 완성된 하몽의 조직감과 맛이 달라진다.
5. 보관
하몽을 걸어서 보관한다. 이 과정 동안 처음 무게의 30~40%가 감소한다. 하몽을 만드는 전문가를 마에스트로 하모네로(Maestro Jamonero)라고 하는데 이들은 각 과정을 관리하여 하몽의 특성을 완벽하게 살려 최고의 맛을 낼 수 있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시지 Sausage]
프로슈토나 하몽이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양념해 숙성하는 것에 비해 소시지는 이런 비슷한 햄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 고기와 돼지기름을 넣어 식감의 부드러움과 유연성을 증가시킨다. 소시지는 발효가 되지 않은 생 소시지(우리나라의 것과는 다른 소시지)가 있고 이것을 건조해 만든 소시지가 있는데 이를 통틀어 살라미(Salami)라고 부른다. 또 우리에게 익숙한 미리 조리된 재료를 넣어 만든 조리된 소시지(우리나라 소시지)가 있고 일단 속을 채워 데쳐서 만드는 소시지(주로 독일 소시지나 이탈리아의 모르타델라 볼로냐)로 종류를 나눌 수 있다.
소시지는 원래 좋은 부위의 고기를 얻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돼지나 소의 골, 혀, 귀 염통, 콩팥, 창자, 피 등의 부산물을 가지고 만들어 먹던 제품이다. BC 9세기의 작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병사들이 고기 반죽을 만들어 창자에 채운 것을 먹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보다 먼저는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시작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시지가 알려진 것은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로 십자군 전쟁에 출정한 병사들이 본국이나 다른 나라로 돌아갈 때 직물과 함께 소시지를 가지고 들어가 알려졌다고 한다. 현재는 대표적으로 쓰이는 고기 가공품이 되고 있다.
[소시지 즐기기]
소시지는 이미 우리의 테이블에 빠질 수 없는 재료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달걀 프라이와 함께 구워서 아침 메뉴나 브런치, 다양한 샐러드, 김밥의 재료, 핫도그, 피자, 바비큐 요리 등등 너무나 다양하다. 그냥 물에 삶아서 먹는 독일식 소시지도 있다. 그래도 소시지와 곁들어 빠질 수 없는 것이 소스이다. 특히 머스터드, 토마토케첩, 바비큐 소스 등은 소시지를 먹을 때 소스가 바닥났다면 소시지 먹는 것을 멈출 정도로 없으면 섭섭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