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사는 지인과 베를린 맥주와 맥주 문화에 대해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베를리너는 필스너, 바이젠, 둔켈 등 전통의 독일 맥주를 주로 마실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베를린은 독일 연방의 수도인만큼 독일 전역의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과거 맥주의 나라라고 하면 독일이 떠올려졌지만, 현대 맥주의 종주국은 단연코 미국입니다. 전통의 맥주 종주국 독일도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혁명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독일 맥주의 전통 속에서 베를린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호피한 미국 맥주가 몰티한 독일 맥주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인구 370만의 베를린은 12세기 말 슈프레강 강가에 상인들이 모이면서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슈프레강은 독일 북동부를 흐르는 강으로 베를린을 동서로 관통합니다. 베를린의 상징은 잘 알려진 대로 곰입니다. 곰은 1280년부터 베를린의 시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를린이 크게 성장한 때는 호엔촐레른 가문이 베를린을 그들의 거주지로 삼은 15세기입니다. 이 시기 베를린은 신성로마제국 선제후의 하나였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이후 브란덴부르크는 독일의 종교 개혁 때 개신교의 편에 서서 17세기 30년 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때 베를린은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베를린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프로이센 왕국 시절인 18~19세기입니다. 1701년 브란덴부르크는 프로이센의 일부가 되었고, 베를린은 프로이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후 베를린은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독일의 수도로 기능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된 아픔을 겪었지만, 1990년 독일이 전격적으로 통일되면서 1991년부터 베를린은 통일 독일의 수도로 현재까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베를린의 역사에서 맥주와 관련되어 굴곡의 때가 있다면, 19세기 후반 독일 제국이 통일될 때 맥주순수령이 독일 전역에 적용된 일과 동독과 서독이 통합되었을 때 동독의 일부 맥주가 맥주순수령에 맞지 않아 소송에 휘말린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라인하이츠게보트(Reinheitsgebot)라 부르는 독일의 맥주순수령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독일의 맥주법입니다. 1516년 바이에른 공국의 공작 빌헬름 4세가 바이에른 지역에서는 맥주를 만들 때 물, 맥아, 홉만 사용할 수 있다고 반포한 법령으로 이후 효모가 추가되어 지금까지 독일의 맥주를 규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맥주순수령은 독일 남부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졌지만, 독일 북부에서는 부가 재료를 사용한 다양한 맥주 제조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에는 베를린의 베를리너 바이세, 밤베르크의 라우흐비어, 쾰른의 쾰쉬, 라이프치히의 고제 그리고 수많은 수도원 맥주가 있습니다. 이중 베를리너 바이세는 발효 과정에 젖산을 사용하고, 고제는 소금이나 고수를 첨가하여 만드니 맥주순수령과는 거리가 먼 맥주입니다.
베를린의 맥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베를리너 바이세는 독일 베를린 주변 지역에서 유래한 맥주 스타일로 17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베를리너 바이세의 특징이라면 은은한 신맛과 시큼함 그리고 과일 캐릭터입니다. 이러한 맛에 반한 나폴레옹은 베를리너 바이세를 ‘북쪽의 샴페인’으로 치켜세웠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베를리너 바이세가 베를린에 생겨난 이유는 여러 설이 존재합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이민자들이 베를린으로 이주했을 때, 플랜더스를 거쳐오면서 플랜더스의 레드 에일이나 브라운 에일의 양조 기술을 베를린의 맥주에 접목했다는 설도 있고, 원래부터 베를린에서 인기 있었던 스타일인데, 이 스타일은 함부르크의 알려지지 않은 맥주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19세기 베를리너 바이세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베를린에만 700개의 전문 양조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양조장마다 맥주의 신맛이 다양해서 강한 신맛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럽을 첨가하여 마시는 것이 대중화되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녹색 우드러프 시럽을 넣은 것과 빨간색 라즈베리 시럽을 넣은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 베를리너 바이세는 라거의 인기에 밀리기도 하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베를리너 바이세 전문 양조장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에 고작 10개만 남아 있었고, 베를린이 동서로 분리된 이후에는 서베를린에 3개, 동베를린에 1개만 남아 있다가, 현재는 오직 베를리너 킨들만 정통 브랜드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베를리너 바이세는 유럽의 원산지 보호를 위한 통제 규약의 하나로 보호를 받아 베를린 이외의 지역에서는 맥주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베를리너 바이세가 부활한 건 이러한 원산지 보호가 아니라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덕분입니다. 그들은 베를리너 바이세가 아닌 베를리너 바이세 스타일을 만들어 죽음의 문턱을 넘은 베를리너 바이세를 재창조했습니다.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의 여러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도 베를리너 바이세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독일 남부의 맥주를 순수하게 만든 맥주순수령이 독일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1871년 프로이센에 의해 독일 제국이 통일된 이후입니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프로이센은 북독일을 중심으로 관세동맹을 맺고 경제통합을 이룬 후, 1861년 황제가 된 빌헬름 1세가 비스마르크를 재상으로 임명하여 독일의 통일을 추진합니다.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을 제외한 북독일 연방을 창설한 프로이센은 1871년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프랑스의 심장 베르사유에서 독일 제국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이 독일제국에는 남부 독일은 빠져 있었습니다. 남부 독일의 중심이 바로 맥주순수령의 고향 바이에른입니다.
바이에른이 통일된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북부 독일과 남부 독일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이에른은 30년 전쟁에서 가톨릭 연맹 편에 서서 싸웠을 정도로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지만, 프로이센은 개신교가 중심인 국가입니다. 맥주도 다릅니다. 바이에른이 맥주순수령을 철저하게 지켰다면, 북독일은 부가 재료를 사용한 맥주를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바이에른에서는 독립 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민족주의자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민족은 통일되어야 한다고 시대가 요구하고 있었기에 결국 바이에른도 독일 제국에 가입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바이에른이 독일 제국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맥주순수령입니다. 바이에른은 독일 전역에서 맥주순수령을 따라 맥주를 만들 것을 제안했고, 프로이센은 이를 받아들여 독일이 통일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독일 민족에게 맥주는 독일어와 함께 민족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독일을 통일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바이에른의 맥주순수령은 독일 전역에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프로이센은 모든 양조장에 이를 강하게 고지하면서 강제화했습니다. 그러자 북독일의 수많은 양조법과 과일이나 향신료를 넣은 맥주가 사라졌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베를리너 바이세도 마찬가지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북독일의 다른 맥주도 베를리너 바이세처럼 그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독일이 통일될 때쯤에 맥주순수령이 지역의 맥주와 부딪힌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10년간 독일을 떠들썩하게 만든 ‘브란덴부르크 맥주 전쟁’입니다.
동독의 브란덴부르크 지역에 있는 노이첼레 브루어리는 1589년에 설립된 노이첼레 수도원에 딸린 양조장으로 뿌리가 깊은 곳입니다. 이 양조장에서는 대대로 슈바르처 압트(Schwarzer Abt)라는 흑맥주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 맥주는 슈바르츠비어라는 스타일의 블랙 라거로 제조 과정 중에 소량의 설탕을 사용하여 발효를 증진합니다. 노이첼러의 설탕을 사용하는 맥주 양조법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독일이 통일되면서 서독에서 엄격하게 지켜진 독일 맥주법에 위배가 된 것입니다. 독일의 맥주법은 맥주순수령을 기초로 만들어져 맥주에는 물, 맥아, 홉, 효모 이외의 어떤 재료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강화제나 이산화탄소 주입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특별 맥주로 인정되는 일부 맥주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긴 했습니다. 노이첼레의 슈바르처 압트는 특별 맥주로 인정되지도 않았고, 설탕을 부가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독일 농림부로부터 ‘이 맥주에는 맥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라는 주의 조치를 받습니다. 맥주 라벨에 맥주라고 쓸 수 없었던 노이첼레는 브란덴부르크 주 정부와 여러 차례 협상을 벌입니다. 협상 끝에 맥주를 양조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 내지만, 끝내 맥주 이름에 ‘Bier’를 붙일 수는 없었습니다. 노이첼레는 이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맥주세를 내지 않으면서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법정 공방을 이어갑니다. 이 브란덴부르크 맥주 전쟁의 결과는 1993년 브란덴부르크 주 정부가 슈바르처 압트의 생산과 맥주 라벨을 허용하면서 끝이 납니다. 그러면서 독일의 맥주법도 유연하게 변화하는데, 독일의 라거는 기존처럼 맥주순수령에 따라 만들어야 했지만, 에일 맥주는 부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노이첼레의 슈바르처 압트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조금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독일어로 슈바르츠(schwarz)는 ‘검다’라는 뜻이고, 압트(Abt)는 ‘수도원장’입니다. 그러니까 슈바르처 압트는 ‘검은 수도원장’이라는 의미인데, 이 검은 수도원장이 교황의 축복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나긴 맥주 전쟁에서 승리한 노이첼레는 그 자체가 독일 최고 사법기관에서 받은 축복이라고 여기고, 이 축복받은 맥주를 들고 진짜로 가톨릭의 축복을 받으러 프란체스코 교황을 찾아갑니다. 교황은 슈바르처 압트 맥주병에 직접 축복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 병은 지금도 맥주를 만들 때 맥주 워트에 담기도록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교황에게 받은 축복이 슈바르츠 압트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1993년의 브란덴부르크 맥주 전쟁의 판결은 독일 크래프트 맥주의 기폭제가 됩니다. 전통적으로 맥주의 순수성만을 강조해 왔던 독일이 다양한 부가물을 사용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맥주를 재탄생시키는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베를린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자리 잡기 시작하여 현재는 십여 개 안팎의 양조장에서 수백 종의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최초로 문을 연 현대적 의미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렘케(Lemke) 브루어리입니다. 렘케는 1999년에 설립되어 필스너, 바이스비어, 둔켈 등의 전통적인 독일 맥주 스타일 뿐만 아니라 미국식 페일 에일 및 IPA, 스타우트 등 다양한 맥주를 양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렘케의 맥주를 마셔보고 독일에서 만드는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렘케에서 만드는 뉴 잉글랜드 IPA 스타일의 맥주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는 우리말로 ‘시대정신’이라는 뜻을 가진 맥주입니다. 맥주의 재료에 보리 맥아 외에 귀리 맥아와 밀 맥아도 사용했으니, 독일 전통의 맥주순수령과는 맞지 않는 맥주입니다. 뉴 잉글랜드 IPA(NEIPA)는 미국 동부 뉴 잉글랜드 지역에서 발전한 스타일로 기존의 IPA보다 쓴맛을 강조하지 않고, 홉의 아로마와 풍미를 강조한 맥주 스타일입니다. 양조 과정 후반에 발효 탱크에서 홉을 추가하는 드라이 호핑 기술을 활용하여 쓴맛을 끌어내지 않고 특정 향과 풍미를 높입니다. 주로 열대 과일과 같은 과일 향의 풍미를 내는 것이 특징인데 종종 밀이나 귀리를 사용하여 풍부한 거품과 부드러운 질감을 제공합니다.
자이트가이스트는 뉴 잉글랜드 IPA라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노블홉 중의 하나인 할러타우(Hallertau) 홉을 사용한 점이 특이합니다. 할러타우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에 위치한 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홉 재배지입니다. 인류가 상업적으로 홉을 재배한 최초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할러타우 홉은 주로 아로마 용도로 사용하는데 가벼운 꽃 향과 시트러스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렘케는 필스너 등의 독일식 라거에 많이 사용하는 할러타우 홉으로 미국식 뉴 잉글랜드 IPA를 만들었습니다. 독일산 홉도 과일 향이 풍부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일까요? 미국에서 발전한 스타일이더라도 지역의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창의성이 바로 크래프트 맥주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자이트가이스트는 비교적 최근인 2023년 11월에 2,000개 한정으로 생산되었습니다. 미세한 거품과 밝은 노란색의 외관에 열대과일과 파인애플류의 과일 향이 기저에 깔려 있고, 은은한 허브와 강한 피톤치드 향이 유럽 노블 홉의 존재를 잊지 않습니다. 쓴맛을 억제한 것이 특징으로 부드러운 과일의 맛 뒤에는 6.8%의 알코올이라는 반전이 있습니다.
초기 베를린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독일 스타일의 정통 맥주를 기본적으로 하면서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를 양조하였다면 최근에는 처음부터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만을 만드는 양조장도 등장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푸어스트 비아체크(Fuerst Wiacek) 브루어리입니다. 푸어스트 비아체크는 2016년에 게오르크와 루카스라는 두 명의 젊은이가 뉴 잉글랜드 IPA만을 전문적으로 양조하겠다는 야심으로 만든 현대적인 맥주 양조장입니다. 생산하는 맥주의 수가 50종이 넘을 만큼 다양한 뉴 잉글랜드 IPA를 만듭니다.
하우트(HAWT)와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는 푸어스트 비아체크가 자랑하는 더블 드라이 호핑 IPA(일명 DDH IPA)입니다. DDH(Double Dry Hopping)는 비교적 최근에 퍼진 용어입니다. DDH는 홉을 폭발적으로 사용했다는 의미인데, 홉을 두 배 정도로 많이 사용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러 번의 드라이 호핑을 거쳤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우트와 플로피 디스크 모두 맥주순수령에서 정의한 맥주의 4대 재료 외에 귀리 맥아와 밀 맥아를 사용했습니다. 홉은 하우트는 심코 홉과 모자이크 홉을, 플로피 디스크는 시트라 홉과 로랄 홉을 사용했습니다. 이 홉들은 모두 미국 품종으로 IPA에서 드라이 호핑 과정 중에 즐겨 사용되며, 열대과일과 같은 풍미와 시트러스한 느낌을 줍니다. 하우트와 플로피 디스크는 풍미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더블 드라이 호핑인 만큼 홉의 아로마와 풍미가 더 짙게 새겨 있습니다. 야생 홉을 고도로 응축하여 입안에서 폭발시키겠다는 브루어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맥주 양조 과정에서 약해지거나 변조될 수 있는 홉의 성질을 최대한 줄인 맥주라 할 수 있습니다. 홉의 원시성이 잘 살아 있습니다.
그 밖에 베를린에는 10여 개의 크래프트 브루어리와 크래프트 비어 펍이 있습니다. Vagabund, Heidenpeters, Gorilla Cerveceria Berlin, Berliner Berg, Unverhopft Brewpub, Brlo 등이 대표적입니다. 베를린의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서는 잘 정리된 구글 지도가 있어 기사의 끝에서 공유하겠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맥주 전쟁에서 승리한 노이첼레 양조장의 다음 행보는 어땠을까요? 노이첼레는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면서 더욱 과감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몸에 좋은 스피룰리나가 들어 있는 노화 방지 맥주라든가 산딸기를 사용한 맥주, 감자를 활용한 맥주 등 40여 종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맥주를 생산합니다. 최근에는 물에 타 먹을 수 있는 분말 형태의 맥주, 일명 맥주 파우더를 개발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맥주 파우더 45g을 물에 타면 맥주 한 병 정도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시제품 단계로 무알코올 맥주만 생산할 계획이지만, 앞으로 필스너와 흑맥주까지 개발한다고 합니다.
이번 기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독일 맥주를 소개하는 유튜브 손맥주의 영상과 손정호 님이 직접 가져다준 베를린 맥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손맥주 유튜브 : https://youtube.com/@sonsbeer
손맥주 인스타그램 : @drunkenpapason
* 베를린 크래프트 맥주 지도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