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나 전쟁 등의 이유로 국가가 위기 상황일 때 가장 먼저 막고 막히는 것이 바로 수출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기도 하고 피부로 와닿는 것은 아무래도 먹고 사는 일에 관련이 많은 식량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발병한 지 약 3개월 만에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쌀 수출을 중단했고, 곧이어 여러 나라에서도 달걀·밀·설탕·식용유·양파 등 각국의 주요 생산 품목에 대해 수출을 금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반대로 수입하는 나라 입장에선 더는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못하고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할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국가 위기 상황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도 항상 국민이 일정한 수준의 식량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적정 식량을 유지하는 것을 식량안보라 한다. 베트남은 자국의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쌀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비교적 근래에 들어서며 전염병과 전쟁이라는 단어들이 식량안보와 짝지어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식량안보의 오래된 진짜 짝은 따로 있다.
그동안 기후변화는 식량안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농산물과 축산물·수산물 모두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비나 눈이 많이 내리면 농산물의 가격이 올라가고 해수면의 온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는 순간, 잡히는 어종이며 수확량이 확연히 차이 나는 것만 봐도 기후변화와 식량안보의 관계를 예측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기후변화를 막는 일이란 쉽지 않다.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환경을 위한 일을 실천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다가올 기후 위기 속 위협받을 식량안보를 지켜내기 위해 대비해야 한다.
식량안보의 핵심은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식량주권이란 식량과 관련된 시장에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며,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강한 식량주권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식량 자급률에 있다.
식량 자급률이란 한 나라의 전체 식량 소비량에서 자국산 식량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그 비율을 간단히 구하자면 [국내 생산량/국내 소비량 * 100]의 공식이 있고, 결괏값이 높을수록 식량주권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020년 기준 45.3%로 OECD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 식량과 관련된 모든 수출길이 막혀 더는 수입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 중에 딱 45.3%에 해당하는 식량만 남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가볍게는 물가 상승이 일어날 것이며, 더 나아가선 식량 하나로 나라의 패권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 ‘식량 하나에 나라가 망할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식량이 없는 상황에서 ‘너희 굶어 죽을래? 땅덩어리 조금 넘겨주고 식량 받을래?’라는 식으로 타국의 제안이 올 경우, 거절이 마냥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방법으론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로는 당연히 식량 재배 면적을 높이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주식은 쌀이다. 쌀은 농업으로 생산되는 식량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많은 땅을 농업에 활용할 만큼 영토가 넓지 않은 데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고 고령화 사회로 농사를 지을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농업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쌀을 제외한 곡물 대부분을 90% 넘게 수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정책이나 스마트 팜이나 수직 농업과 같은 기술을 활용하며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두 번째 방법으론 다품종 소량생산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 대부분은 단일품종 대량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농업은 먹고 살기 위한 식량을 생산하는 일임과 동시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활동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효율 좋은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선 인건비를 줄여야 했으며 단일품종 대량생산은 관리하기가 쉬워 노동력이 비교적 많이 들지 않았다.
단일품종 대량생산은 경제적인 측면에선 효율적일진 몰라도, 기후 위기를 대비하는 측면에선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같은 작물일지라도 병이나 해충에 대한 저항력, 생존할 수 있는 온도나 습도는 품종마다 다르다. 이것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품종 소량생산을 추천하는 이유다. 25℃ 안팎에서만 자라는 A라는 품종을 모든 땅에 심었는데 평균기온이 갑자기 상승하게 된다면, 그해 우리는 A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소비량은 그대로인데 생산량은 줄어들게 된 것이니 이 또한 물가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A 품종과 따듯한 기온을 좋아하는 B 품종을 함께 심었다면 말이 달라진다. A가 다 사라져도 B라는 대체품이 있으므로 최악의 상황으로까진 이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다품종의 중요성은 1800년대 중반 약 800만 명의 인구 중 100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굶어 죽은 ‘아일랜드 대기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아일랜드는 수확량이 가장 좋은 미국산 품종 한 가지로 감자를 심었는데, 감자 사이에서 감자역병이 발병하게 됐다. 문제는 아일랜드가 심었던 미국산 품종은 감자역병에 취약했고, 그로 인해 감자가 모두 썩어 주식이었던 감자를 먹지 못해 많은 사람이 죽게 된 것이다. 이때에도 만약 다른 품종과 함께 감자를 심었다면 이 정도로 피해가 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품종으로 재배량을 늘린다고 해서 급격하게 식량 자급률이 높아지거나 갑자기 뛰어난 식량 안보가 갖춰지진 않는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안 쓰기, 음식물 안 남기기와 같은 좋은 소비가 필요하듯이 스마트 팜, 다품종 소량생산 등 착한 생산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