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구시가지 유적지는 아르노 강을 끼고 양편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흐르는 강물 위를 몇 개의 다리가 가로지른다. 그 중, 유명한 베키오다리 바로 옆, 성 삼위일체 다리를 (Ponte Santa Trinita) 강 남쪽에서 건너 들어오면, 왼편에 성 삼위일체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성 삼위일체 성당은 마음먹고 찾아가야 들어갈 수 있는 성당이다. 입장 허가시간이 띄엄띄엄 인지라 닫힌 문을 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가이드북에서 비중 있게 소개되는 성당도 아니라서 쉽게 찾게 되는 성당도 아니다.
입장시간
평일 08:00~12:00/16:00~18:00
주말 16:00~18:00
입장료 무료
관광객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기에 실내는 차분하고 한산했다. 어두운 실내에 한쪽에 앉아 현지인들이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나마 현지인들조차 몇 되지 않았다.
성당을 지나치는 무수한 사람들을 거슬러 내가 이 성당에 들어온 이유는 특별한 사연이 담긴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작품명은 <소년의 부활 (Resrrection of the young Spini boy)>인데, 이 작품은 3단으로 이루어진 사세티 채플 (Cappella Sassetti) 2단에 자리한 그림으로,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림은 하나의 시점이 아닌, 시간 순서에 따른 여러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좌측 후면을 보면 한 소년이 2층 창가에서 추락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년을 보고 급히 달려가는 어른의 모습이 보이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멀어 아이는 추락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전면을 보면, 바르게 앉아 손을 모으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이 소년을 보고 놀라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혹은 신밖에 행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기도를 올린다. 죽었던 아이가 부활한 것이다.
추락하는 아이 장면은 1478년 실제로 일어났던 사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예배당 건설을 의뢰한 사세티 가문의 장남 테오도로 (Teodoro)가 추락사한 것이다. 더불어 아이가 추락하고 있는 건물은 바로 지금 감상자가 위치한 성 삼위일체 성당 맞은편 건물이다. 그림 속 배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런데 사세티 가문의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몇 달이 지났을 때, 아이의 어머니 네라 사세티 (Nera Corsi Sassetti. 사세티 채플 1단 좌측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가 다시금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들이었다. 죽은 자식이 다시금 자신에게서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일은 왕왕 있는 일이고, 죽은 첫째의 모습을 둘째 아이에게서 기대하는 것 또한 흔히 있는 일이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다시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은 사세티 부부는 첫째 아들이 다시금 품 안에 돌아왔노라 믿고 싶었을 것이고, 그리 믿었다. 꼭 눈으로 본 사실이어야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 나은 답이기 때문에 믿을 때도 있는 법이다.
성당 밖을 나서자 2차원 평면에 그려졌던 비극의 현장이 3차원으로 다시금 재현됐다. 성당을 방문하기 전에는 트라우마를 매번 마주해야 하다니 잔인하다고 느꼈지만, 그림을 보고 난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이는 신이 돌봐주신 덕에 지금 내 품 안에 안겨 있다.’고 믿으면 오히려 피할 수 없는 그때의 그 기억이 한층 덜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새로 태어난 아기를 한 번 더 꼭 안아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 벽화는 한 마디로 ‘사랑과 소망, 추모를 신앙심에 기반을 두어 풀어낸 따뜻한 위로’다.
맞은편 페라가모 매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명품거리로 이어지는 성당 앞 거리는, 500년 세월의 급류만큼이나 북적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그 군중 사이로 나 또한 섞여 들어갔다.
(사진 1,3,4 출처 : https://www.museumsinflorence.com/musei/santa-trinita.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