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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퍼리어가 뽑은 나의 보르도 탑 10

스티븐 스퍼리어가 뽑은 나의 보르도 탑 10

Decanter Column 2017년 8월 1일

디캔터에서 오랜 기간 컨설팅 편집자로 함께 해온 스티븐 스퍼리어가 다른 어떤 와인보다도 더 오래 기억에 남았던 보르도 와인들을 소개한다. 그 품질, 당시 그에게 느껴졌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기억에 남는 이유까지 말이다.

 

샤토 오-바이, 페삭-레오냥 CC (hâteau Haut-Bailly, Pessac-Léognan CC 2009)

2009년 보르도 앙 프리뫼르 테이스팅에 대한 내용이 실렸던 디캔터 2010년 6월호에는 당시 내가 쓴 한 줄의 문장이 있다. “내 인생 최고의 빈티지” 그 빈티지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잘 여물어 흙냄새를 풍기는 메를로와 어우러져 우아함과 활력을 동시에 갖춘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바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르도 와인 중 하나인 동시에 처음의 대니얼 샌더스와 1979년부터 그의 아들 장, 그리고 현재 로버트 G. 윌머스의 소유 하에 CEO를 맡은 그의 손녀 베로니크 샌더스에 이르기까지 소유주들의 매력 또한 대단하다. 1960년대 런던에 있었던 1955 빈티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오-바이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파리의 내 가게에 항상 있었다.
도셋에 있는 나의 셀러에는 그 훌륭했던 2009를 포함해 2012부터 1998까지 와인들이 있다. 2009 빈티지의 경우 페삭-레오냥에서 열렸던 앙 프리뫼르 테이스팅에서 오-브리옹과 라 미숑에 이어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수준”을 갖춘 3위로 점수를 매겼었다.

 

샤토 디켐, 소테른 1CS 1988 예로봄(Château d’Yquem, Sauternes 1CS 1988 in jeroboam)

이 와인은 1994년에 프리츠커상을 받은 크리스티앙 드 포르참파크가 2011년에 설계한 새 슈발 블랑 셀러 개장식 점심 식사에서 맛보았다. 도착과 동시에 돔 페리뇽이 서빙되었고 레드 와인은 슈발 블랑 2000과 1990 등이 있었다.
이켐은 완벽했으나 나는 두 번째 잔을 사양하고 커피를 마신 뒤 보르도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경찰이 내 차를 세우고 술을 마셨느냐고 물었다. 음주 측정 결과 50mg/l이 넘는 것으로 나와 공식 테스트를 위해 리부른 경찰서로 날 데려갔고, 그곳에서 다시 나온 결과는 54mg/l였다. 허용치보다 10퍼센트 높게 나온 덕분에 나는 그대로 풀려났다.
그날 저녁 오-브리옹에서 열린 저녁 초대에 갔는데, 완벽한 와인을 만나면 한 잔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도멘 드 슈발리에, 그라브 1941(Domaine de Chevalier, Graves 1941*)

*1953년 이전으로 등급 분류 전

도멘 드 슈발리에에서 올리비에 베르나르가 초대한 점심 식사에서 이 와인을 마셨다. 그는 그 빈티지가 내가 태어난 해임을 모르는 상태로 내놓았는데 그 덕분에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1941은 본래 내 아내의 빈티지인 1946만큼이나 형편없던 해였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그것이 그 포도원의 전 소유주의 사촌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1994년에 샤토에서 다시 코르크 작업을 한 것이라고 했다. 색상은 여전히 신선했고, 냄새로나 맛으로나 산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좋은 여운 및 균형과 함께 풍미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나 산도가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좋지 못한 빈티지 와인도 다시 손볼 수 있다는 베르나르의 신념과 그것을 나의 60번째 생일을 맞은 해에 맛보았다는 점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샤토 마고, 마고 1GCCC 1985(hâteau Margaux, Margaux 1GCC 1985)

포스터 경이 설계한 저장고를 새로 개장하면서 2015년 샤토 마고에서 매그넘으로 내놓은 이 와인은 당시 몇 년을 통틀어 내가 마신 최고의 보르도였다. 1982년 빈티지 덕분에 보르도가 현대 사회에서 유명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물론 이 빈티지는 여전히 훌륭하지만, 1985 빈티지도 그것만큼이나 훌륭하고(하지만 명성은 덜하다) 지롱드 전반에 걸쳐 질이 떨어지는 와인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경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샤토 마고 그 자체였다. 포도원들, 오래된 저장고와 새로 지은 저장고, 그리고 1953이나 1961 같은 오래된 빈티지 와인들 사이에서 완벽한 위엄을 떨치는 샤토 말이다. 특히 1977년부터 세 세대에 걸친 멘첼로풀루스 가문의 헌신 – 앙드레의 미망인 로레와 그녀의 딸 코린은 1985년 디캔터에서 선정한 올해의 여성이었다 – 과 1985년부터 2015년까지 헤드 와인메이커였던 고(故) 폴 퐁탈리에의 기술과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와인이 예술이라면 샤토 마고가 바로 그렇다.

 

샤토 레오빌 바르통, 생 쥘리앙 2CC 1989(Château Léoville Barton, St-Julien 2CC 1989)

나는 보르도와 바르통 가문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랑고아와 레오빌 바르통은 무통 로트실드와 함께 1855등급 분류 이후에도 같은 가문 소유로 남아 있는 유일한 샤토들이다.

나는 1970년대 초 로날드 바르통의 지휘 하에 있던 때부터 수확 시기에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고, 그의 조카 안토니 때에도 계속해서 그곳을 드나들었다. 이것은 안토니의 딸인 릴리안이 지휘하는 미래에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레오빌 바르통이 ‘생 쥘리앙의 벤치마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것은 1826년 이후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그들의 포도원을 그대로 표현해낸 결과고, 그것은 와인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와인 업계에 몸담은 지 40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2004년 3월 40명을 초대한 저녁 식사에서 1989 빈티지를 내놓았다.

셀러에 1986, 1988, 1989를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 1985는 이미 다 마시고 없었다 – 안토니 바르통에게 어떤 빈티지를 추천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 주저 없이 유독 뜨거웠던 1989년 빈티지를 추천해주었다. 그 와인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아마 오늘날에도 그럴 것이다.

 

샤토 피작, 생테밀리옹 1GCC 1970(Château Figeac, St-Emilion 1GCC 1970)

피작은 오-바이, 레오빌 바르통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르도 샤토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랑고아의 클래식한 18세기 샤르트뢰즈-작은 별장, 피작의 18세기 저택, 오-바이의 19세기 신사용 저택) 피작의 소유주는 1892년부터 마농쿠르 가문이었다. 보르도의 진짜 영웅 중 한 명인 티에리 마농쿠르는 1947년 샤토를 물려받은 이래로 60개가 넘는 빈티지를 탄생시켰고 그중에서도 최고는 1970년대였다.

라카데미에 뒤 뱅에서 1966년부터 1971년까지 피작과 슈발 블랑의 비교 테이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밀도가 높은 1970과 활기가 넘쳤던 1971이 가장 좋았다.

마이클 브로드벤트는 ‘영예로운 1970’을 최고로 꼽았다. 내가 피작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길 건너 이웃(한때 같은 에스테이트에 속하기도 했다)에서 만든 와인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샤토 그 자체처럼 그 와인 역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힘의 아주 훌륭한 예다.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피작은 2001 빈티지이지만 1970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샤토 라투르, 포이약 1CC 1964(Château Latour, Pauillac 1CC 1964)

그해에 와인 일을 시작한 나는 라투르를 ‘영국 샤토’라고 알고 있었다. 1962년에 그것이 드 보몽 가문에서 피어슨 그룹과 하비스 오브 브리스틀로 매각되었기 때문이다.

샤를 드 골 대통령은 이 명망 높은 에스테이트가 ‘불신의 알비온(영국을 가리킴)’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달라는 청을 받았으나 그저 “샤토와 함께 땅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고만 말했다. 절실히 필요했던 옮겨심기가 시작되었고, 1964년 빈티지에 맞춰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 탱크가 설치되었으며, 수확이 9월 25일에 시작되어 조금 더 북쪽에 있는 포이약 전 지역의 수확을 망쳐 놓은 폭우가 내리기 바로 전날에 끝났다.

디캔터의 스티븐 브룩은 “힘과 풍미의 깊이, 위엄만큼은 그 어떤 메독 와인도 라투르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고,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1970년대 매니저였던 장-폴 가르데르, 디렉터 휴 존슨, 에스테이트가 프랑수아 피노에게 팔리기 전 마지막 매니저였던 데이비드 오르, 그때 이후로 프레데릭 앙게레를 통해 이어져 온 라투르와의 관계 덕분에 이 샤토는 나의 셀러는 물론 항상 내 인생과 함께했다. 1964 빈티지는 기념비적이다.

 

비유 샤토 세르탕, 포메롤 1961(Vieux Château Certan, Pomerol 1961)

기억을 더듬어보면 개인적으로 가족과 관련이 있었던 두 가지 와인이 유독 떠오른다. 첫 번째 와인은 샤토 파프 클레망 1953이다. 앞으로 프랑스에서 살게 된 아내 벨라와 내가 결혼식 날 저녁에 골든 애로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가는 길에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도시락과 함께 런던 셀러에서 가져갔던 와인이다.

두 번째 와인은 비유 샤토 세르탕 1961으로, 1970년대 중반 우리와 함께 파리에 머물고 계셨던 장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인이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군.” 이 샤토의 경우 티엥퐁 가문의 여러 세대를 잘 알고 지냈는데, 1961은 패기 넘치는 조르주 티엥퐁이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보르도 매그넘 한 병은 남자 둘이서 함께 저녁을 먹을 때 안성맞춤이다. 그 전에 샴페인 한 병을 마신 경우라면 말이다.”

비유 샤토 세르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메롤 샤토이고, 그중에서도 1998은 나의 도셋 셀러의 스타라고 할 수 있다. 1961은 파리의 와인상 니콜라에서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했으며, 여전히 경탄할 만한 비유 샤토 세르탕의 와인 중에서도 우아함과 힘이 매우 잘 어우러져 있다.

 

샤토 무통 로트칠드, 포이약 2CC* 1959(Château Mouton Rothschild, Pauillac 2CC* 1959)

*1973년까지. 그 이후 1CC로 승급

브라질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보유하고 있는 와인 수집가(세상에서 가장 마음씨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는 셀리오 핀투 데 알메이다라는 사람인데 그는 아내 소니아와 함께 매년 2-3일에 걸쳐 세계 최고의 포도원에서 만든 와인들의 버티컬 테이스팅(같은 와인의 여러 빈티지를 비교 테이스팅)을 개최한다. 나는 운 좋게도 손님으로 초대되어 2005년 5월 6일과 7일, 이틀에 걸쳐 1924-1926, 그리고 1945-2002년까지 모든 아트 라벨 무통 61개 빈티지를 맛보았다. 총 35명의 손님이 한때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의 화려한 저택이었던 페트로폴리스의 로칸다 델라 미모사 레스토랑에 모였다.

첫 날에는 2001년부터 시작해 1924년까지 총 30개 빈티지를 시음했다. 내가 100점을 주었던 것은 1959년이 유일했는데 그날 손님들이 매긴 점수 역시 평균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다. 1989가 97.5점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1949, 1924, 1983, 1982년이 똑같이 92.5점을 받았다.

둘째 날에는 2002년부터 1925년까지 맛보았고, 유명한 1945가 97.5점으로 1위, 1986, 2000, 1953년이 95점으로 공동 2위, 1985, 1996, 1950, 1961년이 92.5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나는 이 와인이 “이국적인 건장함”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했고, 마이클 브로드벤트는 역시나 평소처럼 “장엄함 위의 장엄함”이라는 멋진 표현을 내놓았다.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 포이약* 1806(Château Lafite Rothschild*, Pauillac* 1806)

*1855년 전이라 등급 분류되지 않음

**단순히 ‘라피트’라고만 불림. 제임스 메이어 로트칠드 남작은 1868년에야 이 샤토를 매입함.

이 와인은 내가 생각하는 포이약 삼두마차 중 하나로 “지금까지 마셨던 와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프랑스 남서부의 다로즈라는 레스토랑은 프랑스에서 가장 훌륭한 셀러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은 1980년대에 내 손을 거쳐 크리스티 경매에서 판매된 것이다. 1806은 1953년 샤토에서 다시 코르크 작업을 하고 총 여섯 병이 다로즈, 보르도의 르 샤퐁 팽, 부기발의 르 코크 하르디, 파리의 르 타이유방으로 팔려나갔다. 그 와인을 맛본 건 1969년 9월, 친한 친구이자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하는 데이비드 프롬킨이 초대한 식사 자리였는데 마틴 뱀퍼드 MW(당시 우리는 모두 그가 관리하던 샤토 로덴에 머물고 있었다), 내 아내 벨라, 그리고 두 명의 다른 손님과 함께였다. 돔 페리뇽과 마르키 드 라기슈 몽라셰를 마신 뒤 처음으로 맛본 레드 와인이었고, 산화를 피하고자 디캔팅 하지 않고 직접 잔에 따랐다.

색상은 조금 흐려지고 있었지만 맑은 붉은색이었고, 붉은 과일 향이 남아 있는 섬세한 향을 느낄 수 있었으며, 여운은 단단하고 향기로웠다. 30분 후에 그 느낌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기억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CREDIT

        • 작성자

          Steven Spurrier

        • 번역자

          Sehee Koo

        • 작성일자

          2017.7.12

        • 원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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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Decanter의 저작물로 Decanter Magazine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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