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베이징은 한때 ‘옌징(燕京)’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여 년 전. 옌징이었던 당시의 이곳은 이제는 베이징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더 유명한 도시가 됐지만, 그때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한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한 이 지역 맥주 ‘옌징’은 베이징 시민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맥주로 손꼽힌다.
중국 맥주라고 하면 으레 ‘칭다오(青岛)’를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 옌징.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만큼은 칭다오보다는 하얼빈(哈尔滨), 하얼빈보다는 옌징 맥주가 더 맛이 좋다고 여겨질 정도로 맛에서만큼은 인정받았다.
하얼빈과 칭다오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로 꼽히는데, 베이징런(北京人)으로 거주한 지 5년 차인 필자 역시 옌징의 깊은 맛을 알리고 싶은 욕구가 충만하다.
실제로 ‘옌징’은 중국 전역에서 판매되는 맥주 브랜드 가운데 판매량 순위 3위를 기록하는 등 현지에서는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다. 매년 판매량 순위에는 변동이 있지만, 대체로 ‘하얼빈’, ‘칭다오’, ‘옌징’, ‘설화’ 등 4개의 현지 브랜드 맥주가 1위부터 4위까지 순위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옌징을 포함한 중국 맥주와 함께 베이징 현지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식당은 다름 아닌 포장마차다. 그 가운데서도 좁고 어두운 골목 한편에 조그마한 불을 켜고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 기억에 남는다. 젊은 부부 내외가 꼬치를 굽느라 연신 등을 구부리고 내어오는 양꼬치를 한 입 가득 베어 문 뒤 맥주 한 모금을 크게 넘기는 그때가 바로 옌징의 맛을 최고로 느낄 수 있는 때다. 저절로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세울만한 이 시원한 맥주는 금요일 저녁 넉넉한 퇴근길에 좋아하는 그와 함께 늦은 저녁으로 마실 때가 제일이다.
시원한 옌징 한 잔과 짭조름한 꼬치구이로부터 받는 삶에 대한 위로는 더할 나위 없이 그야말로 ‘행복’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동안 베이징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포장마차에서의 맥주 한 잔의 회포는 이제 추억 속으로 기억해야 할 지경에 놓여있다. 이는 다름 아닌 베이징 시 당국의 도심 미관 사업 탓이다. 시 정부는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지속적인 도심 외관 사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지난해부터는 도심 곳곳에 자리한 포장마차를 해체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저녁 7~8시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한산해진 도로의 차선 하나를 길게 차지하고 들어섰던 영업용 포장마차와 수십 곳의 포장마차에서 만들어내는 고기 굽는 진한 연기의 진풍경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베이징의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양꼬치 하나에 불과 1~1.5위안에 맛볼 수 있었던 포장마차가 사라지면서, 시민들은 지친 하루의 회포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점 내부에 진열된 양꼬치 전문점을 찾아가 더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회포를 풀어야 하게 된 셈이다.
상점에서 파는 양꼬치는 맛과 양이 포장마차의 것과 같거나, 그보다 못할지라도 꼬치 한 자루에 최고 8위안이어서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가까이할 수 없는 고급 음식이 되었다는 ‘불평불만’의 목소리가 우세해지고 있다.
하지만 불행 중의 행운일까. 필자가 거주하는 올림픽 공원 인근에는 오래전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양꼬치 포장마차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꼬치 하나에 3위안(약 5백 원). 값과 맛이 이 일대 시민들의 발길을 사로잡을 만한 이곳은 한낮에는 굳게 문을 닫았다가 저녁 8시 이후가 되면 영업을 시작한다.
커다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 버려진 처마를 덧대어 만들어 낸 비좁은 공간에서 숯불로 구워낸 고기가 맥주 박스와 낚시 의자 몇 개로 만든 간이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손님 상으로 내어져 나온다. 손님이 없을 때는 간이 의자와 식탁이 가게 한쪽에 접혀 있어서 포장마차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사장님 여기 두 명이요”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작지만 왠지 단단한 체구의 사장님이 간이 식탁과 의자를 척척 펴주는 모습에서 긴 세월 동안 그곳에 있었을 포장마차의 세월을 느낄 수 있다.
매일 밤 잊지 않고 이곳을 들리는 손님의 대부분은 베이징 도심에 있는 곳으로 출근을 했다가 집값이 비교적 저렴한 이 일대에 머무는 20~30대의 젊지만 지친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남들보다 조금 이른 아침을 시작해서 더 늦은 퇴근을 반복해야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이곳에 포장마차가 자리를 지켜온 것도 힘든 저녁을 맞는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위로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주문 TIP.
가격: 옌징 1병 5위안(약 9백 원), 하얼빈, 칭다오 각 1병 6위안(약 1천 원)
양꼬치 1개 3위안(약 5백 원)
닭 날개 구이 꼬치 1개 7위안(약 1300원)
소 힘줄 구이 1개 3위안(약 5백 원)
맛:★★★★☆
분위기:★★★★☆
역사: 지난 2010년부터 8년째 영업 중
찾아가는 방법: 베이징 지하철 15호선 베이샤탄(北沙滩)역 D번 출구 도보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