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물론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 2년은 전 세계를 잿빛으로 물들게 한 코로나19 전염병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착용하고 위생에 더욱 신경을 썼으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은 조금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거리두기 완화 조치로 이어졌고, 이에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은 억눌렸던 감정이 분출되어 흥분과 생기로 가득했다. 해외여행이 가능하다는 희소식이 전해지고, 이번 휴가는 미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미국은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않아도 입국이 가능하다고 하니 전염병 이전으로 돌아간 거 같은 느낌마저 든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현지 와이너리 투어 계획은 꼭 해봤을 거다. 셀러도 구경하고 마음껏 와인도 마시고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나처럼 아직 해외여행은 이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원숭이두창도 신경 쓰이고 무섭다.
그래서 준비했다! “방구석 와인 여행”.
[준비물]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즐길 여유, 관련 와인 그리고 간단한 안주
샴페인을 애정하는 사람을 위한
샴페인은 프랑스 상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하는 발포성 와인(sparkling wine)으로, 특정 포도 품종으로 전통 양조방식에 따라 만들어진다. 매력적인 버블과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샴페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다면 꼭 봐야 할 다큐멘터리다.
와인 수입업자인 Martine Saunier가 샴페인 하우스를 방문하며 포도밭을 둘러보고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때 우리에게 익숙한 샴페인 하우스도 등장한다. 고세(Gosset), 볼랭저(Bollinger) 등 각 샴페인 하우스가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엿볼 수 있다. 기왕이면 해당 샴페인을 구해 마시면서 본다면 와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본 다큐멘터리는 시리즈로 방영된 것으로 아는데 (<A Year in Burgundy, 2013>와 <A Year in Port, 2016>) 취향대로 골라봐도 좋다. 샴페인을 좋아하기에 약 1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푹 빠져서 봤다. 샴페인 애호가는 물론이고 이제 막 샴페인에 입문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다큐멘터리로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험난한 과정을 이해할 수 있고, 셀러 마스터나 빈야드 관리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마시는 샴페인이 조금(?) 비싸도 이런 과정을 거쳤으니 하며 너그러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 도 출시되어 트레일러를 시청했는데 돔 페리뇽, 파이퍼 하이직, 떼땅져 등 유수의 샴페인 하우스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기대하는 중이다. Somm TV, Amazon Prime에서 시청 가능
와인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분들을 위한
클래식 와인 영화인 <와인 미라클>의 원제는 다. 1976년에 열린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을 소재로 한 영화로 당시 유명한 프랑스 와인과 덜 알려진 캘리포니아 와인을 두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 결과 미국 와인이 압승을 거둔 일화를 담고 있다.
실제로 샤또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Rothschild), 샤또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등과 같은 유명한 와인을 상대로 미국의 스택스 립 와인 셀러(Stag’s Leap Wine Cellars)가 레드 와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여 본 행사를 주최했던 Steven Spurrier는 물론이고 테이스팅 심사원을 놀라게 했다. 영화에서는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가 등장하는데, 영화이기에 허구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 화이트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실제, 파리의 심판에서의 결과가 타당한지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면서 미국과 프랑스는 각자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으며, 해당 행사를 조롱하거나 지나치게 영광스럽게 여기거나 하는 상반된 뉴스가 전해져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파리의 심판 최대 수혜자인 미국은 와인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으며 사람들은 미국 와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샤또 몬텔레나를 비롯해 릿지 빈야드(Ridge Vineyard), 스택스 립, 끌로 뒤 발(Clos Du Val)과 같은 파리의 심판에 등장했던 미국 와인을 마시며 (비록 동일한 빈티지를 구하긴 어렵겠지만) 그 영광스러웠던 순간을 같이 느껴보는 건 어떨까? Apple TV에서 시청 가능.
와인에 진심인 학구파를 위한
넷플릭스에서 봤던 은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믈리에를 그리고 있는데, 당시에는 보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국가, 품종, 빈티지 등을 다 맞추는 게 가능한 것인지, 상세한 아로마에 산도와 타닌까지 그렇게 혀가 정확할 수 있는지 믿기 어려웠다.
이후 과 가 출시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와인 미라클>이 파리의 심판 허구 버전이라면, 는 사실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다. 실제 행사와 관련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과 더불어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와인이 어떻게 전 세계에 퍼져 현대 와인산업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유명한 와인 비평가이자 여러 와인 관련 서적을 집필한 Jancis Robinson과 파리의 심판을 이끌었던 인물, Steven Spurrier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챕터 3에서 까다로운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과 파리의 심판과 유사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가 뉴욕에서 열리며 내 집중력도 폭발했다. 이제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양조하는 피노 누아를 소믈리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음한다. 국가와 상관없이 피노 누아 한 병을 준비해두고 시음에 참여하는 걸 추천한다. 고개가 끄덕여질 수도 갸우뚱해질 수도 있는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Somm TV에서 시청 가능.
이밖에도 가업을 물려받을지 소믈리에가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청년을 그린 영화 , 총각파티를 떠나는 두 남성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를 배경으로 피노 누아 예찬(?)이 이어지는 , 이탈리아 배경으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바롤로를 담은 , 우리에게 익숙한 빌라 마리아(Villa Maria) 쇼비뇽 블랑과 광활한 말보로 지역을 배경으로 와인 한 병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등 여러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있다. 각각 Netflix, Apple TV, Amazon Prime 그리고 Somm TV에서 시청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