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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와인 마을 1탄 _ 소아베

최근 우리 부부는 약 3개월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4년 전 와인을 따라 세계여행 길에 올랐을 때 이탈리아의 일부를 경험했으나, 당시 이탈리아에 우리 부부가 할애할 수 있었던 3주간의 일정은 와인의 방대함을 따라잡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올해 다시 한번 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망설임 없이 이탈리아를 다시 선택했다.

시간은 3개월. 지역은 이탈리아 12개 주. 북부, 중부와 남부 그리고 시칠리아까지 돌아보는 대장정 후에도 우리는 시간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만큼 이탈리아 와인의 방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정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몸소 경험했던 130여 곳의 와이너리들과 그곳의 와인들은 모두 특별했고 우리에게 강렬한 기억들을 선사해주었다. 여행은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의 기록 중 일부를 이곳에 꺼내고자 한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 주제를 정하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스스로가 와인을 얼마나 마셨고 어떤 좋은 와인을 경험해봤는가는 지극히 개인의 만족이다. 와인과 여행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와인 애호가와 일반적인 여행자들이 모두 관심을 둘 수 있는 것, 우리가 소통해나갈 수 있는 것 이것의 접점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의 역사와 시음 느낌, 그들의 양조 방식 등에 큰 호기심을 느낄지 모른다. 와인을 처음 시작하는 여행자라면 와이너리를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는가,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이 더욱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좋은 와인과 아름다운 볼거리가 있는 곳, 바로 우리가 사랑한 와인 마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와이너리들이 마을이나 도시와는 떨어져 있는 편이다. 그 넓은 포도밭을 조성하기에는 어딜 가나 땅값이 만만치 때문이다. 그 때문에 와이너리의 대다수가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전원풍경이 펼쳐진 시골 마을 속으로 들어갈수록 와이너리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기에 와인 여행에서 자동차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된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보로 와인을 방문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탈리아 중세 마을은 골목을 따라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와이너리를 만날 수 있고, 그 지역 생산 와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와인 샵이자 시음실 역할을 겸비한 에노테카들이 곳곳에 있다. 도보 여행자들이라 해도 대중교통으로 마을까지 도착하기만 한다면, 마을의 풍경을 감상하며 발길이 닿는 에노테카에 들어가서 시음을 하고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와인 여행을 즐겨볼 수 있는 것이다. 운전대를 잡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와인을 편하게 시음할 수 있다는 것, 마을 안에서 지역의 와인과 미식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이것 말고도 와인 마을의 매력은 수없이 많다. 여행은 끝났지만 아름다웠던 ‘와인 마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 기억에 남아 문득문득 대화 속에 흘러나오며 다시금 행복했던 기분을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의 ‘소아베 마을’이다.

소아베 마을 정문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와인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이름인 ‘소아베’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의 대명사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와인 향으로 가득했던 중세 마을과 그 가운데 우뚝 솟은 고성을 떠올리게 한다. 에노테카와 와인 바가 몰려 있는 메인 거리 Via Roma를 따라 베네토 특산 음식들과 소아베 와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물론 소아베 와인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들의 에노테카들도 마을 곳곳에 있기 때문에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미식과 와인, 관광을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셈이다.

소아베의 중심 거리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먼저 마을의 역사를 살펴보면, 소아베 마을은 고대 로마 시대에 아퀼레리아(Aquilelia)와 제노바(Genova)를 잇는 주요 거점이었다. 이탈리아 대부분이 그렇지만 소아베 역시 마을 전체가 유적지인 셈이다. 소아베 성을 비롯해 돌길, 성벽, 창문의 모양까지 오랜 역사의 흔적들을 어디서든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소아베 성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고대 로마인들이 걸었음 직한 울퉁불퉁한 돌길로 이루어져 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는 길은 여름 삼복더위라면 힘들 수도 있지만, 정상에 오르면 소아베 마을의 전경과 근방에 넓게 펼쳐진 포도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성인의 걸음으로 십여 분이면 언덕을 오를 수 있으니 도전을 주저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소아베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소아베 성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소아베 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소아베 마을 전경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그러면 ‘소아베 와인’은 보통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빈티지가 어린 소아베 와인은 복숭아, 멜론, 오렌지 껍질, 약간의 짠맛을 느낄 수 있는 와인으로 연상된다. 한국 시장에 선보여온 소아베 화이트 와인들이 그러했고, 이는 소아베의 캐릭터를 뚜렷하게도 했지만 단순화시켰다는 인상도 준다. 와인 샵에서 직원에게 소아베 와인을 한 병 집어 들고 언제 마시면 좋겠냐고 물어본다면 “소아베 와인은 2년 이내에 마시는 게 가장 좋아요”라는 답변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당신이 집어 든 소아베 와인의 캐릭터가 그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가볍게 숙성시킨 청량감 있는 와인부터 오크 숙성을 거치면서 은은한 아몬드 향을 풍기며 십 년을 끄떡없이 버티는 와인까지, 소아베 와인이 가진 캐릭터는 실로 다채롭다. 또한 싱그러운 과실 향의 레드 와인부터 스파이시하고 파워풀하게 입안을 조여오는 와인까지 소아베 레드 와인의 장르도 와인 양조자의 손길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소아베 와인을 좀 더 감상적으로 설명하자면, ‘감각적이고 사랑스러운 화이트 와인’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가 베네토의 주도인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오징어 먹물 파스타와 신선한 소아베 와인 한 잔은 최고의 마리아주를 만들어냈었다. 녹진하고 짭짤한 맛의 파스타의 맛에 상큼한 소아베 와인이 곁들여지니 그 자리에서 두 접시를 비우고 싶을 만큼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조금 더 소아베 와인에 대해서 파고 들어가 보자. 소아베는 가르가네가(Garganega)라는 화이트 품종을 메인으로 샤르도네 혹은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Trebbiano di Soave, 동의어로 ‘베르디키오’라고도 불린다)를 블렌딩 해서 만드는 드라이하고 상큼한 와인이 기본 캐릭터이다. 하지만 소아베 와인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들은 보통 가르가네가만 사용해서 지역의 테루아를 담아낸 와인에 더 애착을 보인다. 이런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들을 방문해보면 소아베의 토양이 와인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같은 품종임에도 불구하고 토양의 특성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와인들을 비교 시음하는 경험은 소아베 와인을 즐기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다.

이탈리아 와인 법에 따라 일반 소아베 Soave DOC는 가장 무난하고 대중적인 캐릭터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가르가네가 품종을 70% 이상. 나머지는 트레비아노나 샤르도네가 블렌딩 될 수 있다. 이들 품종으로 일반적인 스틸 와인뿐 아니라 스푸만테(스파클링 와인)도 만들어낸다. 소아베는 세부지역으로 클라시코(Classico)와 콜리 스칼리에리(Colli Scaligeri)(colli는 언덕이라는 뜻이다)로 나뉘는데, 조금 더 하이클래스 와인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일반 소아베보다 입지가 좋은 포도밭의 포도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클라시코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명 소아베 클라시코 존이라는 곳에서 프리미엄 소아베들이 탄생하는데, 화산토에서 자란 가르가네가로 만들어진다. 와인을 양조할 때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만드는 일반 소아베와는 달리 오크통에서 숙성시켜서 보다 복합적인 향을 지닌 와인 스타일을 지향한다. 덧붙여 레이블에 소아베 수페리오레(Soave Superiore)라고 쓰여 있다면 보통 좀 더 좋은 포도로 만들고 8개월 이상 숙성을 시킨 와인이다.

선별된 포도를 말려 양조한 스위트 스타일의 와인 레치오토(Recioto)는 보통 소아베를 만드는 포도를 말려서 만든다. 포도는 수확하자마자 짚이나 매트 등에서 말리는데 몇 주에서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 포도의 잠재적 알코올 도수가 약 14%가 나올 때까지 말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채로운 향이 풍부하게 퍼지는 이 사랑스러운 스위트 와인은 식후에 한 잔 마신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소아베 레치오토의 사랑스러움에 감탄할 것이다.

우리 부부가 소아베 마을 혹은 그 근처에서 방문한 와이너리들은 지니(Gini), 이나마(Inama), 피에로판(Pieropan), 칸티나 디 카스텔로(Cantina del Castello), 마이넨테(Mainente)였다. 앞의 와이너리들과 함께 프리미엄 소아베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인 안셀미(Anselmi)를 방문할 기회는 가지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꽤 만족스러운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와이너리 중 피에로판, 칸티나 디 카스텔로, 마이넨테는 모두 소아베 마을 안에 와이너리가 있다. 이중 피에로판과 마이넨테를 추천한다. 피에로판은 와이너리의 오랜 역사와 품질, 양조하는 와인들의 다채로움을 겸비한 곳이었고, 마이넨테는 가문의 와이너리를 이어가는 젊은 오너의 열정과 실험정신이 돋보였던 곳이기에 소아베를 여행하게 된다면 반드시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마을 안에 있는 피에로판 와이너리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에노테카 안에서 이루어진 와인 테이스팅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마이넨테 와이너리의 간판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오너인 마이넨테와 함께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이외에도 지니나 이나마 같은 와이너리들은 소아베 마을과 차로 10분 이내에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소아베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군림해 온 프리미엄 생산자들이다. 두 곳 모두 명성에 걸맞은 와인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지니에서 우리는 2010년대부터 2000년대, 90년대까지의 올드 빈티지의 소아베를 버티컬로 테이스팅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잘 만든 소아베 와인이 얼마나 멋지게 숙성될 수 있는지 보여줬던, 그래서 우리 부부가 가지고 있었던 소아베 와인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었던가를 여실히 느끼게 했던 테이스팅이었다.

지니에서 시음한 1998년 빈티지의 와인은 오렌지 껍질의 시트러스한 향과 살구, 화이트 플라워, 꿀의 향긋하면서 스위트한 과실 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올드 빈티지 와인의 특유의 등유 향은 전체적인 향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묻어 나왔고 유질감이 잘 느껴졌다. 우아함까지 갖춘 이 와인의 여운을 즐기는데 코에서 향을 맴돌게 하며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훌륭한 와인이었다.

지니 와이너리 지하 셀러에서 잠들어 있는 소아베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90s, 00s, 10s, 소아베 버티컬 테이스팅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이나마 와이너리 역시 훌륭한 화이트 와인들을 가지고 있었다. 볼케이노 토양의 화이트 와인들의 뛰어난 복합미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러나 이곳의 와인 중 우리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카르메네르 품종 100%로 만든 레드 와인이다. 프랑스에서 물 건너 여러 곳에 뿌리내린 카르메네르는 지금은 칠레의 국가대표 품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에도 오래전부터 재배되어 온 품종이다. 특히 소아베 지역에서 훌륭한 카르메네르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콜리 베리치 Colli Berici의 카르메네르로 만든 이나마 와인은 꼭 마셔보기를 추천한다. 칠레의 카르메네르 와인과는 또 다른 카르메네르의 변신을 온 혀로 느낄 수 있다.

이나마의 가르가네가 포도밭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마테오 이나마 오너의 와이너리 설명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카르메네를 포함한 이나마 테이스팅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소아베를 여행하면서 앞서 소개한 지니와 이나마 와이너리를 방문할 일정이 녹록하지 않은 여행자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소아베 마을에 있는 에노테카에서 이들의 와인을 모두 만나 볼 수 있고 몇 가지 와인들은 글라스로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와인 잔을 들고 테라스에 앉아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와인을 음미할 수 있다.

소아베 마을의 또 하나의 장점을 하나 더 추가하면 넉넉한 무료 주차공간이다. 이탈리아의 중세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주차는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 여겨질 만큼 매 순간 여행자를 예민하게 만든다. 특히 중세마을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등록 차량 외에 외부 차량의 진입이 제한되어있다. 그 때문에 마을 성벽 밖에 멀찍이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소아베는 공영 주차공간에서 마을 중심지까지 몇십 보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거리이다. 물론 소아베는 반나절이면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볼 정도로 작기 때문에 동, 서, 남으로 뚫려있는 성벽 문 어느 곳에 주자 하던 거리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라도 소아베는 여행자의 낭만을 지켜준다. 우리는 소아베 마을을 두 번 방문했다. 한 번은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식사하며 이곳의 와인을 경험했고, 다른 한 번은 샌드위치를 들고 소아베 성 오르막길을 올라 포도밭 풍경을 눈에 담으며 소박한 식사를 했다. 두 경험 모두 무엇이 더 좋았다고 표현해내지 못할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소아베의 근사한 레스토랑 / 사진 제공: 와인쟁이 부부

와인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인 그 자체만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품 와인을 만들어내는 와이너리에 방문하고도 씁쓸한 마음을 안고 문을 나서는 일도 있었다. 여행에는 ‘그 시간을 즐기려는 여행자의 자세’ 그것이 여행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거기에 와인에 대한 호기심이 이어진다면 결코 실패 없는 와인 여행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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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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