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지역과 지하철역, 그리고 번화가까지 편의점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지키며 바쁘고 급한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름 그대로 현대인의 편의를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편의점에서 ‘고퀄리티’ 혹은 ‘취향에 딱 맞는’ 물건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와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은 매장에서 다종의 상품을 판매하는 점포 특성상 와인에게 내줄 수 있는 공간은 작은 선반 한 줄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아주 대중적인 와인 몇 종이 차지했으니까. 그런데 최근 이런 고정관념을 허물만 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셀렉션이 풍부해진 것은 물론 심지어 보르도 프리미에 크뤼 같은 초고가 와인도 편의점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앞다퉈 와인 전문가 영입하는 편의점 브랜드들
‘특별한 날 분위기 잡고 마시는 술’이라는 와인의 이미지는 이제 많이 사라진 듯하다. 배부른 맥주나 독한 소주가 부담스러운 이들, 간단한 요리와 함께 딱 한 잔 곁들일 술이 필요한 이들이 일상적으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홈술, 혼술 인구가 늘어나면서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마실 목적으로 마트와 편의점에서 와인을 구입하는 소비자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시장의 움직임을 읽은 편의점 브랜드들도 행동에 나섰다. 와인 전문 바이어, MD를 영입하거나 직원들에게 본격적인 와인 교육을 시작한 것. ⟪뉴데일리 경제⟫에 따르면 GS리테일은 외부 교육기관의 와인 교육 과정 이수, 자체 블라인드 테스트 등 와인 전문 MD 육성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마트 24에서도 홈플러스 출신의 와인바이어를 영입했고,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도 롯데칠성음료의 와인 담당하던 MD를 모셔와 매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취향 저격부터 초고가까지, 앱으로 예약하고 편의점에서 픽업한다
전문가가 영입되고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와인의 종류가 늘어났다고 해서 편의점마다 수십 종의 와인이 진열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신 앱을 통해 와인을 미리 예약하고 매장에서 픽업하는 시스템이 지난해부터 자리를 잡아, 일상으로 바쁜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럼 앱으로 어떤 와인을 살 수 있는 걸까? 2021년 9월 19일 기준, CU의 모바일 앱 포켓CU에서는 이스까이나 시데랄처럼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남미 지역 와인부터 샤토 마고, 샤토 무통 로쉴드 같은 보르도 프리미에 크뤼까지 예약이 가능하다. 300만 원을 호가하는 빈티지 포트 ‘킨타 두 노발’도 판매 중이니 편의점에선 저렴한 와인만 판매한다는 말은 이제 할 수 없게 되었다. 9월 19일로 종료되긴 했지만, 인기 와인 유튜버 와인킹의 추천을 받아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 세트 12종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벤트로 추석 선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다.
GS25의 앱 ‘더팝’에 입점한 와인25+도 만만치 않다. 5대 샤토를 모두 갖춘 것은 물론, 디디에 다그노나 도멘 르플레브처럼 팬층이 탄탄한 도멘의 보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세토,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샤토 디켐, 샤토 라피트 로쉴드, 샤토 마고, 샤토 퐁테 카네로 이루어진 평론가 100점 세트도 판매 중으로, 가격은 천만 원이다. 추석 선물용으로는 2017 오퍼스 원을 11% 할인된 가격에 내놓았다.
그런데 이런 고가의 와인이 편의점에서 팔리기는 할까? 물론이다. 지난해 8월에는 포켓CU에 들어온 라투르 20병이 완판되어 이목을 끌었다. 대규모 수입상을 통해 매입해서 중간 비용을 줄이고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점, 백화점이나 전문 숍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근처에서 픽업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메리트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앱을 통해 와인 예약 시 수령은 본인만 가능하며, 신분증과 예약 바코드를 제시해야 하니 잊지 말고 챙겨 가야 한다. 또한 포켓CU의 경우 아직 서울, 인천, 경기 등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만 픽업이 가능하니 참고하자.
가성비 높은 자체 브랜드 와인도 인기
편의점들은 유명 샤토의 고급 와인을 들여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체 와인 브랜드를 개발해 출시하기도 했다. 다른 편의점에 비해 눈에 띄게 큰 와인 매대를 자랑하는 이마트 24는 지난해 7월 와인 브랜드 ‘꼬모(COMO, Convinient Momnet)’를 론칭했다. 칠레의 잘 알려진 와인하우스 운두라가에서 만든 리제르바 까베르네 소비뇽, 이탈리아의 칸티에서 생산한 모스카토를 9,900원에 출시해 호응을 얻은 이후 6,900원으로 더욱 가성비를 높인 꼬모 밸류 까베르네 소비뇽을 내놓았고, 올해는 랑그독 지역의 시라, 이탈리아 끼안티(산지오베제, 까나이올로)를 라인업에 추가했다.
CU도 맞불을 놨다. 올 1월 와인 브랜드 ‘음!(mmm)’을 론칭하며 스페인의 보데가스 밀레니엄에서 생산한 레드(템프라니요, 가르나차)를 선보이고 올 6월에는 프랑스 랑그독 루시용의 레 셀리에 뒤 몽 사크레가 만든 화이트(소비뇽 블랑)을 내놓더니, 이달에는 이탈리아 피치니와 손잡고 프리미엄 레드(프리미티보, 몬테풀치아노, 네로달볼라, 메를로)까지 출시했다. 판매가는 각각 6,900원, 9,900원, 15,900원으로 역시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데, 그 덕인지 레드는 출시 40일 만에 1차 수입 물량이 동나고 소비뇽 블랑은 여름부터 55만 병이 팔리는 등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