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거 스타우트와 굴에 관한 페어링에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가령 저는 비릿한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생선회를 좋아하지만, 회에는 역시 맥주보다 소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타우트와 굴에 관한 페어링은 경험이 아니라 지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스타우트와 굴이라면 이해가 갑니다. 스타우트는 스타우트 포터에서 나왔습니다. 1800년대의 런던에서 스타우트 포터와 굴은 가장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포터가 영국의 부둣가에서 포터(짐꾼)들이 마셨던 흔한 맥주였고, 포터(맥주와 짐꾼 모두) 근처에는 굴이 흔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포터와 굴을 함께 먹으면서 고유의 문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소 낭만이 없는 스토리지만 이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타우트와 굴을 결합한 이유는 그 맛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둘을 결합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가장 편했기 때문입니다.
굴이, 특히 한국에서 생산되는 굴이 맥주에 어울릴까요? 조리된 굴이 아니라 생굴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굴은 충분히 맛있지만 한입에 베어 물어 씹는 것보다는 한입에 미끄러져 삼켜 먹어 맥주와 특별히 페어링해 볼 새가 없었습니다.
굴은 대체로 낮은 온도에서 시원하게 먹는 편이라 차가운 음식과 맥주의 조합도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비린내와 바닷냄새가 맥주와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은 신화에 가깝고 현대적인 감각으로의 페어링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 이 페어링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분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스타우트와 굴은 어울릴까요?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는 이렇습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가운데 하나의 맛이 선명할 때보다 서로 균형을 이루고 복합적일 때 맛의 즐거움이 커집니다. 초콜릿에 소금을 살짝 뿌려 먹으면 단맛이 더 부드럽게 부각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유명한 카페의 카페모카를 마시면서 짠맛이 났던 이유는 소금을 살짝 뿌렸기 때문입니다.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도 이와 비슷합니다.
맥주와 푸드를 페어링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선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쌓은 지식이겠지요. 물론 맥주 이전에 와인과 푸드 페어링의 연구가 있었으니 그 역사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와인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전통주도 전통음식과의 궁합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습니다. 막걸리에는 파전이고, 소주에는 찌개가 아니겠습니까.
몇 가지 페어링 방법론이 있습니다. 조화로운 페어링은 라우흐비어(독일의 스모크 비어)와 소시지를 페어링하여 맥주와 음식의 비슷한 특성을 결합합니다. 대비되는 페어링은 단맛과 쓴맛이 강한 임페리얼 스타우트와 초콜릿을 페어링하여 서로 대조되는 특성을 결합합니다. 에뿌와스 치즈와 람빅을 페어링해 치즈의 풍미를 맥주가 제어할 수도 있습니다. 고제와 생선찜을 페어링하면 서로의 약한 특성을 보완해 줍니다. 진하고 단맛이 강한 아이스복과 마카롱을 페어링하여 단맛을 극대화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중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은 대비되는 페어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굴을 한 모금 들이키면 굴에서 나온 액체로 입안이 흥건해집니다. 입안에 짠맛과 바다의 향이 가득합니다. 삼킨 후에도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굴이라도 이대로 몇 개를 계속 들이킨다면 짠맛이 입안 깊숙한 곳에 돗자리를 펼 것 같습니다. 이때 드라이 스타우트는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짠맛을 살짝 끌어내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건조하고 가벼운 드라이 스타우트가 바다의 풍미와 대비되어 상쾌한 맛을 더해 줍니다. 마치 생선회나 해산물을 먹을 때,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또 굴의 소금기는 다소 평범한 맥주의 풍미를 끌어 올립니다.
제가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통영 맥주 투어 때입니다. 2021년 맥주 잡지 기사 기고로 인연을 맺게 된 잡지사 트랜스포터의 초청으로 통영 펍 크롤링에 다녀왔습니다. 투어에 포함된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이 흥미로웠습니다.
통영에서 만난 굴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그전에 한국의 굴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한국의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바위에 서식하는 자연산 굴은 바위굴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 굴은 참굴이고요. 참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널리 분포된 종입니다. 주로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철에 맛이 좋습니다. 크기는 대략 7~10cm 정도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 한국산 참굴과 스타우트의 페어링에 대해 대단한 감동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통영의 특별한 굴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이 특별한 굴은 한국의 굴 양식업체인 태화물산에서 생산하는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라는 브랜드명을 가진 굴입니다. 스텔라 마리스는 ‘바다의 별’이라는 뜻이고, 굴의 종은 태평양 굴(퍼시픽 오이스터)입니다. 저에게 페어링의 재미를 주지 못한 한국의 참굴도 스텔라 마리스처럼 태평양 굴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태평양 굴은 대략 크기가 어른 손만 할 정도로 참굴과는 다릅니다. 3배체 개체굴이라고 하는데 산란과 번식을 하지 않고 이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성장에 사용하도록 개량된 품종입니다. 100그램을 성장시키는 데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맛본 굴은 3~4년산이었습니다.
이 태평양 굴은 일반 참굴보다 살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비린 맛이나 불쾌하게 느낄 수 있는 맛이 하나도 없고 살점이 담백하면서 우유를 마시는 듯 부드럽습니다. 굴을 후루룩 마시는 게 아니라 오도독 씹어 먹으니 씹을수록 더욱 담백하면서 단맛이 났습니다.
태평양 굴과 페어링한 맥주는 머피스 아이리쉬 스타우트입니다. 기네스 드래프트와 비슷하면서 기네스보다 조금 더 드라이하고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도 조금 낮습니다. 머피스가 탄생한 코크(Cork)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남부 지방에서는 기네스보다 머피스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 머피스 스타우트와 태평양 참굴을 페어링한 소회는 이렇습니다. 저는 푸드 페어링을 할 때 다음 3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맥주를 중심으로 푸드를 맞추어 맥주의 풍미를 두드러지게 하느냐? 푸드를 돋보이게 하려고 맥주를 맞추느냐? 아니면 맥주와 푸드를 완전히 섞어 균형적인 맛을 느끼느냐?
이번 페어링에서는 이 중 푸드(굴)가 중심이 되었고 맥주(스타우트)가 푸드를 받쳐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즉, 드라이한 스타우트가 굴의 풍미를 돋보이게 한다는 점이었고, 풍미와 더불어 질감에서의 균형감이 특별했습니다. 묵직하고 담백한 굴의 맛은 단맛과 쓴맛이 적은 드라이한 스타우트가 굴의 고유 맛을 헤치지 않았고 비린내 하나 없이 끝까지 유지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굴의 부드럽고 푹신한 질감이 맥주의 크리미한 질감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특별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결국 신화로 치부했던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 감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타우트와 굴의 페어링에서 조심할 부분이 있습니다. 드라이한 스타우트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진하거나 더 달콤한 스타우트는 오히려 페어링에 좋지 않습니다. 풍미가 더 깊고 달콤한 스타우트는 조개의 상쾌함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알코올과 가벼운 바디감을 가진 드라이한 스타우트를 추천합니다. 머피스 아이리쉬 스타우트, 기네스 드래프트, 노스 코스트 브루잉의 Old No. 38 등을 추천합니다. 그 밖에 산뜻한 신맛이 나는 맥주도 페어링에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제, 람빅, 베를리너 바이쎄 등입니다. 저는 이날 스타우트에 이어 람빅을 마셨습니다. 스타우트를 먼저 마셔서 그런지 질감이 달라서 살짝 이질감은 있었습니다만 스타우트와 대비되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