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은 누가 뭐라 해도 ‘쉬라즈(Shiraz)’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샤르도네(Chardonnay), 메를로(Merlot), 세미용(Semillon) 등은 호주 와인 레이블에서 아주 익숙하게 접한 품종이다.
호주 와인 좀 마셔봤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베르멘티노(Vermentino), 그뤼너 벨트리너 (Grüner Veltliner), 템프라니요(Tempranillo), 네로 다볼라(Nero d’Avola), 피아노(Fiano) 등 이 품종들은 어떤가? 세상은 넓고 마셔야 할 와인은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탄생하고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 호주에서 생산된다니 신기한 것도 한순간, 생각해보면 지금 호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 모두 유럽에서 들여와 호주만의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럽 전체를 합친 것보다 훨씬 방대한 영토를 가진 호주에서는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기후를 만날 수 있다. 65개 와인 산지에서 100여 종의 다양한 포도 품종이 재배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오늘 17일, 호주 와인의 다양성과 최신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세미나가 호주 와인 협회(Wine Australia)와 와인비전의 공동 주최로 진행되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호주 전역에 걸쳐 재배되고 있는 주류 품종이 아닌 ‘비주류 품종’이 소개되었다. 호주 생산자의 상상력과 호기심 덕에 많은 남부 지중해 품종이 성공적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이들 비주류 품종은 호주의 산지 여건에도 적합해 매년 떠오르는 스타 품종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비주류 품종이 호주에서 번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온이 상승하고 건기가 길어지는 기후 변화로 인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과 현대적 기법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호주 생산자 특유의 타고난 혁신 정신이 이를 가능케 한다. 생산자와 양조자의 타고난 창의성과 호기심이 새로운 품종을 실험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호주 비주류 품종의 역사는 18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Henry Best가 식재한 돌체토(Dolcetto)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접목 포도나무로 알려져 있다. 1900년대 초중반에는 탐구심 강한 양조자들이 포도재배와 양조에 실험정신을 발휘한 시기로, 전통적인 프랑스 품종과 주정 강화 와인 생산에 주력했다. 그리고 1900년대 후반에는 양조자들의 비주류 품종에 대한 관심이 치솟으면서 1980년 최초로 비오니에 품종이 얄룸바의 에덴 밸리 Vaughan Vineyard에서 상업적으로 식재되었고, Brown Brothers는 Mystic Park Vineyard를 조성해 품종 다양성을 독려하고 실바너와 트라미너 등 다양한 비주류 품종을 식재했다.
1985년, 맥라렌 베일에 산지오베제를 심은 Coriole는 산지오베제를 실험한 호주 최초의 와이너리 중 하나로,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호주에서 가장 성공한 비주류 품종으로 정착했다. 2000년대 초, 비주류 품종 재배의 움직임이 자리를 잡으면서 비오니에, 피노 그리/그리지오와 같은 품종이 보편적인 와인 스타일로 안착했으며, 오늘날 양조자들이 혁신과 실험을 통해 비주류 품종을 인기 와인 반열에 올려놓은 동시에 창의적이고 새로운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증에 부응한다.
호주의 주목할 만한 비주류 품종으로는 베르멘티노(Vermentino), 그뤼너 벨트리너 (Grüner Veltliner), 피아노(Fiano), 산지오베제(Sangiovese), 네비올로(Nebbiolo), 네로 다볼라(Nero d’Avola)가 있다. 베르멘티노는 원산지인 이탈리아 리구리아 지역과 유사하게 해양에 인접하고 기후가 따뜻한 맥라렌 베일에서 잘 재배되며, 상큼한 풍미부터 질감이 풍부한 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그뤼너 벨트리너는 이와 유사하게 일교차가 큰 애들레이드 힐즈에서 잘 생장하며, 상큼한 미네랄 풍미가 과일 특징과 균형을 잘 이룬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와 시칠리아에서 유래한 피아노 품종은 맥라렌 베일, 특히 Coriole 와이너리가 유명하며, NSW의 헌터 밸리와 퀸즈랜드의 Granite Belt에서도 피아노 품종을 실험 중인 생산자가 존재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레드 품종이며 키안티의 스타 품종인 산지오베제는 빅토리아의 킹 밸리, 비치워쓰(Beechworth) 및 맥라렌 베일과 같은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재배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으로 잘 알려진 네비올로는 재배와 양조가 쉽지 않은 품종이지만, 밤 기온이 서늘한 킹 밸리에서 주로 재배되며 모닝턴 퍼닌술라, 비치워스, 야라 밸리 등 기타 지역에서도 네비올로의 잠재력을 실험 중이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토착 품종인 네로 다볼라는 리버랜드, 머레이 달링과 같이 따뜻한 내륙 지역에서 재배되며 진득하고, 체리 등의 레드 베리 풍미의 숙성 잠재력이 좋은 와인 스타일부터 상큼하고 가벼운 라즈베리 풍미 스타일까지 다양하게 생산된다.
그 외에도 아시리티코(Assyrtiko), 템프라니요(Tempranillo), 투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바르베라(Barbera), 가메(Gamay), 뒤리프/프티 시라(Durif/Petit Syrah), 진판델(Zinfandel), 피노 블랑(Pinot Blanc),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알바리뇨(Albariño) 등이 호주 전역의 포도밭에서 재배되며, 현재 호주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과학 연구 기관인 CSIRO(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에서 호주의 생장 환경에 잘 맞는 신규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호주 와인 양조 업계에는 현대적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창의성을 발휘하는 재능 있는 포도 재배자와 생산자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비주류 품종의 폭넓은 생산은 안목 있는 소비자의 수요 증가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호주 와인 업계는 독보적인 품질의 폭넓고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을 지속해서 공급하고 있다.
세미나를 위해 비주류 품종으로 생산한 7종의 와인이 준비되었다. 이를 시음한 참석자들은 쉬라즈가 그러했듯, 각 품종이 가진 고유의 매력에 호주만의 개성을 더해 원래 생산지에서의 와인과 비교 불가한 품종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부는 미수입 제품이지만 현재 국내에 비주류 품종의 와인이 꽤 수입되고 있으니, 이들을 시도함으로써 좋아하는 품종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기회를 가져보자. 호주 와인에 대한 소개 자료, 영상, 이미지, 통계, 지도 등의 모든 자료는 www.australianwinediscovered.com에서 무료로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
1. Tidswell ‘Heathfield’ Limestone Coast Vermentino 2016
2. Coriole McLaren Vale Fiano 2019
3. Wines by Geoff Hardy ‘K1 Vineyard’ Adelaide Hills Grüner Veltliner 2020
4. Koerner ‘Mammolo’ Clare Valley Sciacarello 2020
5. Unico Zelo ‘Fresh AF’ Riverland Nero d’Avola 2021
6. Ministry of Clouds McLaren Vale Tempranillo Grenache 2019
7. Longview ‘Riserva’ Adelaide Hills Nebbiolo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