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좌안의 이 저명한 아펠라시옹에 수백만 유로 상당의 맨션과 포도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인 앤슨이 여전히 포이약의 또 다른 면을 대표하고 있는 와인메이커들을 만났다.
“땅을 팔라고 매주 누군가 찾아와 문을 두들기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요.” 알랭 알비스튀르가 내게 한 말이다. 이 말에 방 안의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웃 제라르 부제도 덧붙였다. “우리도 포이약이라는 이름 덕분에 혜택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을 그만두고 은퇴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하죠. 메독 북쪽 와이너리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도멘 레 사동의 작은 안쪽 방에 섰다. D2 루트 드 샤토에서 여기까지는 걸어서 2분 거리, 생 랑베르의 샤토 퐁바데에서 막 돌아온 길이다. 창문 밖으로는 피숑 바롱의 포도나무가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아펠라시옹 내 알비스튀르의 포도원은 87아르(8,700㎡)에 불과하고, 프랑스에서 가장 값비싼 농지인 이곳에서 추가로 땅을 더 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 이 좁은 땅도 150만 유로에 달한다. 아니, 위치를 고려하면 200만 유로쯤 될 수도 있다. 생산량은 연간 500케이스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지금까지 그는 그랑 피 라코스트 셀러에서 일하며 –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는 일이다 – 부업으로 자신의 포도원을 일궜다. 그의 집안에서 그 정도 도약을 해낸 첫 번째 세대다. 지금 포도밭인 그곳이 1997년까지도 채소밭이었는데 그나마 처남으로부터 얻은 경작권으로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었고, 2006년에야 그곳을 인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피숑 바롱에서 빌린 낡은 배럴을 사용했다.
방 안에는 우리 말고도 네 명의 다른 생산자들, 포이약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있었다. 이 아펠라시옹에는 이들 말고도 다른 독립적 생산자들 – 퐁바데, 샤토 고댕, 샤토 동피에르 등 – 이 있으나 그들은 재배 면적이 각각 12헥타르, 4헥타르, 2.3헥타르로 비교적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테이스팅을 위해 알비스튀르가 초대한 생산자들이 소유한 포도원은 모두 각각 1헥타르 남짓하고, 이는 자금 사정이 넉넉한 사람이 언제든 땅을 팔라고 접근해 올 수 있는 위태로운 위치다.
샤토 샹트클레르의 야닉 미랑드도 바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집안에서 2004년 3월 15일에 푸얄레 마을에 있는 포도밭 12헥타르를 무통 로쉴드에 넘긴 것이다. “2004년 3월 15일. 그 날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넘긴 곳이 바로 샤토 라 플뢰르 밀롱이다. (셀러 건물에 아직 그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포도밭은 이미 무통과 클레르 밀롱에 귀속되었다.) 미랑드는 3에이커도 안 되는 땅만을 지킬 수 있었고, 그것을 이전의 세컨드 와인 이름으로 병입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들은 거대 샤토들의 탐욕스러운 태도에서 간접적으로 이득을 보았다. 생테스테프의 샤토 프티 보크의 소유주 아드리앙 랑그노는 지난 2010년 “거대 샤토에 땅을 넘기기를 거부한 완고한 독립 생산자”로부터 1.2에이커의 포도밭을 넘겨받았다. 샤토 클레르 밀롱과 피바르농 근처 두 구획으로 쪼개진 이 땅에서 난 포도는 세련된 포이약의 특성을 온전히 갖춘 와인으로 만들어져 12곳의 서로 다른 배럴 제조업자에게서 입수한 새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키고, 생테스테프의 배럴 제조업자 창고에서 양조된다. (이곳에서는 프티 보크의 이름으로 반값인 22유로에 판매된다. 포이약의 경우는 44유로다.)
나머지 두 생산자, 샤토 르 퐁 드 베르게의 제라르 부제와 샤토 쥘리아의 소피 마르탱은 둘 다 여러 세대에 걸쳐 가문에 전해 내려왔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협동조합 셀러인 라 로즈 드 포이약에 포도를 판매해온 포도밭에서 일한다.
부제의 2.69에이커 상당 포도밭(“이 정도 크기의 포도밭에서는 소수점 아래에 있는 숫자들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은 그의 증조부가 심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1999년부터 생산량 일부를 직접 병입했고, 29세 된 부제가 물려받아 100% 샤토 병입을 시작한 것은 2015 빈티지부터다.
샤토 쥘리아로 넘어가서, 마르탱은 가문 소유의 포도밭에서 생산한 열매 중 오직 일부만 가지고, 나머지는 여전히 그녀의 오빠가 부회장으로 있는 라 로즈 드 포이약으로 보내진다.
“루트 드 샤토에 있는 62아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코르데이양 바주 맞은편에 있는 작은 구획들이고, 그중 가장 작은 곳은 22㎡밖에 안 되죠. 처음 포도밭이 조성된 1930년대부터 포도를 라 로즈 드 포이약으로 보내고 있는데, 열매를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서 2009년에 5년 계약이 끝났을 때 도로 가져와 지금은 우리 가족 농장이었던 곳의 건물에서 양조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이다.
이 포도나무들은 수 세대에 걸쳐 그녀의 가족 소유였으나 사실상 그녀가 최초의 와인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친구들(알비스튀르가 몇 년 전 그랬듯 그에게서도 빌렸다)로부터 장비를 빌렸고 여전히 줄줄이 여러 명의 컨설턴트들을 고용하고 있다. “내게 잘 어울리는 양조 스타일을 찾아낼 때까지만이에요.”
부제는 이 아펠라시옹 내 거대 샤토와 소규모 생산자들의 차이가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규모에 상관없이 해야 할 서류 작업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덩치 큰 포이약 에스테이트들은 인력이 충분하죠. 그리고 우리는 출장 예산도 훨씬 적고요.”
“게다가 세금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넘겨줄 가치도 별로 없습니다. 울며 슬퍼해 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다른 식으로 보상을 받을 테니까요. 물론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건 우리 가문에서 내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돈은 도움이 될 겁니다. 물려줄 것이 생기는 셈이기도 하고요.” 미랑드의 말이다.
“우리 같은 경우 포이약에서 와인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 우리가 가진 땅을 파는 것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소규모 생산자로 일하려면 이 일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죠. 그래도 난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포도나무 일부를 팔고 나머지를 간직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중이에요. 아이들에게 포도나무를 물려주는 게 일을 주는 것과 같아서 마음에 듭니다. 포도나무를 이용해서 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죠.” 알비스튀르의 말이다.
개인의 노력을 그대로 결과물에 반영하는 생산자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이들의 와인 스타일은 크게 다르다. 그리고 언제나 세련된 포이약 와인을 만들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들 와인의 가격(라그노를 제외하고) 또한 구식이어서 소비자 가격이 샹트클레르 26유로, 라 퐁 뒤 베르게 25유로, 샤토 쥘리아 25유로, 레 사동 23유로에 그친다. 이름 또한 수 세기 전에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로 지었다. 예를 들어 레 사동은 포도나무 850그루에 해당하는 측정 단위다. “실제로 내가 가진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죠.” 알비스튀르의 말이다.
그럼 샤토가 아니라 ‘도멘’이라 이름 붙인 건? “내 포도밭을 ‘성’이라는 뜻의 샤토라 부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랑 어울리지 않거든요.” 알비스튀르의 대답이다.
샤토 라퐁 뒤 베르게 AOC 포이약 2014(Château Lafon du Berger AOC Pauillac 2014)
80% 카베르네 소비뇽, 20% 메를로 블렌딩으로 소박한 매력이 느껴지고, 새 오크통을 70% 사용하여 불에 그슬린 듯한 타닌이 좋다. (4곳의 배럴 제조업자와 네 가지 배럴 굽는 방식을 쓴다) 힘이 좋은 반면 여운에서 약간 입이 마르는 듯하다. 숙성 기간은 중간 정도. 88점
도멘 레 사동 AOC 포이약 2014(Domaine Les Sadons AOC Pauillac 2014)
다섯 곳의 배럴 제조업자가 구운 정도를 다섯 가지로 달리 하여 만든 30% 새 오크 통에서 숙성시켰다. (2016년에는 배럴 제조업자를 9곳까지 늘렸다. 그렇게 생산량이 적은 곳 치고는 꽤 놀라운 일인데 아마도 셀러에서 오래 근무한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운이 매우 세련되고 매끄럽다. 전형적인 포이약의 카시스, 멘톨, 삼나무가 느껴진다. 가성비가 매우 훌륭한 아름다운 와인이다. 72% 카베르네 소비뇽, 25% 메를로, 3% 프티 베르도. 91점
샤토 쥘리아 AOC 포이약 2011(Château Julia AOC Pauillac 2011)
아직 초기라 자신의 실수로 이산화황 주입량이 적다고 마르탱이 놀랍도록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다. 꽃향기가 좋고, 섬세하며, 바로 마실 수 있는 매우 사랑스러운 와인이다. 강렬한 체리 풍미에 살짝 캐러멜 풍미가 곳곳에 퍼져 있다. 80% 메를로, 20% 카베르네 소비뇽. 88점
라그노 아 포이약 AOC 포이약 2011(Lagneaux à Pauillac AOC Pauillac 2011)
풍부하고, 강렬하고, 힘있는 이 와인은 메를로가 80%, 카베르네 소비뇽 20%로 블렌딩되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200% 새 오크 방식으로 잘 구운 아몬드와 다크 초콜릿이 느껴진다. 200%란 새 오크통에서 양조한 뒤 역시 새 오크통으로 옮겨 숙성시키는 것을 말한다.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한 방식이 분명하다. 맛이 좋고 섹시하다. 이 빈티지 치고 조금 강한 맛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89점
샤토 샹트클레르 AOC 포이약 2010(Château Chantecler AOC Pauillac 2010)
검은 베리의 깊이가 담긴 전형적인 포이약 와인이다. 앞으로 숙성을 통해 더욱 발전할 것이 분명한 힘센 와인으로, 블랙베리와 카시스가 여전히 팽팽한 타닌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메를로 40%, 카베르네 소비뇽 60%로 60%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켰다. 알코올 도수 14.4%. 91점
추가로…
오-시리스 IGP 뱅 드 페이 아틀란티크 2015(Hauts-Iris IGP Vin de Pays Atlantique 2015)
여담삼아 이 와인을 추가한다. 와인메이커는 포이약에서 일하지만 그의 포도나무는 아펠라시옹 바로 바깥에 있어서 뱅 드 페이 아틀란티크로 병입된다. 확실히 가성비가 좋다. 화학 제초제를 전혀 쓰지 않았고, 뚜렷한 메독 스타일인 카베르네 소비뇽 50%, 프티 베르도 40%, 메를로 10%로 블렌딩했다. 짙은 색 과일이 강조되고 타닌이 적어 빨리 마시기에 좋다. 85점
작성자
Jane Anson
번역자
Sehee Koo
작성일자
2017.3.23
원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