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와인 중에서도 유독 화이트 와인의 품질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 북해도(일본명: 홋카이도, 北海道)가 그 주인공인데, 이곳에서는 최근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최상급 와인을 만들어 지역 경제를 살리는 30대 젊은 부부가 등장해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와인 시장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한 앳된 얼굴의 30대 젊은 부부 켄과 카즈코 사사키 두 사람이 화제의 중심에 있다. 켄과 카즈코 두 사람이 운영하는 와이너리가 일본의 수많은 유명 와이너리 중에서도 유독 맛 좋은 와인을 생산한다고 입소문을 탄 것은 다름 아닌 이들이 직접 두 손을 걷어붙여 가며 만들어 낸 와인이 일반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 공정과 다르게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포도의 ‘야생성’을 살려 제조한다는 점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부부는 세계적 수준의 프랑스 와인 양조 자격증을 소유하고, 프랑스 현지 와이너리에서 교육을 이수한 이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인재였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와이너리와 관련한 학위를 받는 등 그야말로 와인 분야의 전문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는데, 그런데도 기존의 전문적인 와인 제조방식을 넘어서 가장 친자연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자연스러운 맛과 풍미를 구현하기 위해 열중하는 부부의 삶의 양식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켄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도멘 르플레브(Domaine Leflaive)와 알자스의 도멘 비너 등 유명 와이너리에서 와인과 관련한 최고 수준의 교육 훈련을 이수했고, 카즈코 역시 부르고뉴의 권위 있는 도멘 파랑(Domaine Parent)과 코트 뒤 론에 위치한 와이너리 샤포티에(Chapoutier) 등에서 경험을 쌓은 경력자들이다.
하지만 돌연 일본으로 귀국한 부부는 도시에서 자동차로 약 30분을 달려 도착할 수 있는 호쿠토를 찾아 직접 포도나무 묘목들을 심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자연주의적인 방식의 와이너리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는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지금까지 줄곧 부부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는 야생에 가까운 포도 재배 방식으로 와인을 제조해 오고 있는 셈이다.
부부가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지속 가능하며 자연 생태계와 공존이 가능한 일명 ‘퍼머컬쳐’(Permaculture, Permanent와 Agriculture의 합성어) 원칙을 지키는 와인 제조법이다. 실제로 부부가 운영하는 포도 농장에는 천연의 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덕분에 개구리와 거미 등 파충류와 곤충이 뛰어노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이들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이색적인 포도 농장과 여기서 재배되는 와인은 각종 첨가물을 가능한 한 최대한 배제했다는 점에서 부부의 와인 맛을 가장 신선하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홋카이도 와이너리를 직접 찾는 것이 가장 좋다. 최대한 현지에서 맛봤을 때 부부가 구현하고자 하는 자연 그대로의 와인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자연과 가까운 재배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부부는 ‘자연스러운 맛’이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개입을 가장 최소화하면서도 최상의 맛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과 정성, 전문성이 소요되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부부는 극단적으로 변하기 일쑤인 홋카이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종 화학 비료와 살충제 사용을 일절 거부하고 있는데, 그만큼 부부의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온갖 정성을 다 쏟아야 하는 일정들의 반복이라고 설명한다.
부부의 와이너리에서 가장 멀리하는 것은 포도의 산화를 방지하고 미생물의 번식을 막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아황산염이 대표적이다. 부부는 산화방지제인 아황산염 대신 미생물의 부패와 와인의 산화 등을 방지하기 위한 부부만의 방법으로 와이너리 내부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고 산소와 이산화탄소 비중을 미미한 정도까지 주의를 기울여 조정해 나가고 있다.
부부는 “예기치 않은 사건과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등 가장 자연적인 방식으로 생산하는 와인 방법에는 예기치 못한 순간들을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느냐의 순간들이다”라면서 “다만 다년간의 노력과 경험을 통해 대처 능력을 키워 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부는 “만약 우리가 아황산염과 각종 일반 효모제를 사용해 와이너리를 운영한다면 아마 지금의 방식보다는 훨씬 더 쉬운 작업이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가장 자연에 가까운 와인 맛을 구현하겠다는 결심은 하나의 비전이며 이 지역 농민들에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생태계에 대한 인식 확장 등을 선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부부가 가진 와인 제조 방식에 대한 생각의 혁신은 이 지역 경제에도 큰 활력소가 되고 있는 분위기다.
부부가 이끌고 있는 퍼머컬쳐 방식으로 생산된 와인에는 방부제 성분이 일절 포함돼 있지 않은 덕분에 장거리 유통 대신 대부분의 경우 이 지역 일대에서만 유통, 판매된다. 때문에 부부의 와인이 유명세를 얻을수록 와인을 위해 이 지역을 찾아와 여행하는 외부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이 지역 곳곳이 이전에는 없었던 생기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게 됐다.
부부의 와이너리와 멀지 않은 골목에는 이 지역 염소 농장에서 생산되는 염소 치즈를 활용한 각종 치즈 전문업체들이 있는데, 부부의 자연주의 와인 생산 방식에서 교훈을 얻은 치즈 제조 업체들이 잇따라 유기농 사료를 사용한 친자연주의 지역 치즈를 생산하면서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유기농 치즈 제조 공장을 운영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야마다 케이스케 씨는 “이 지역 식당과 상점, 카페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 중인 주민들이 부부의 신선한 아이디어에서 교훈을 얻어 지역 농산물을 최대한 자연 친화적으로 재배, 제조하는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생산된 최상의 제품들을 맛보고 즐기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역 경제가 이전보다 큰 활력을 얻었으며 부부의 자연주의적인 생각의 전환이 와인 시장은 물론이고 지역 경제의 순환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