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의 여름은 안녕하셨나요? 안타깝게도 전 세계 여러 국가의 여름은 그리 안녕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7월 말 중국은 이례적인 폭우로 몸살을 앓았고, 이는 서유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벨기에와 독일에서 폭우로 불어난 강에 자동차가 떠내려가던 그때, 미국과 캐나다는 ‘100년 만의 폭염’으로 모든 생물이 죽어갔죠. 우리가 모두 걱정해야 할 기후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전문가들의 해석이 지배적인 2021년의 여름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이러한 이상 기후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와인을 만드는 포도도 예외일 수는 없죠. 실제로 이탈리아는 고온과 폭우로 인해 올해 와인 생산량이 작년 대비 5-10%, 프랑스는 이보다 더 심하게 24~3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코앞으로 다가온 기후변화를 바라보며 와인 업계에서 점점 더 주목받는 단어가 있습니다. Sustainability, 바로 지속가능성입니다.
물론 와인 산업에서의 지속가능성이 최근에서야 주목받고 있는 화두는 아닙니다. 이미 10~20여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는 와인 업계에서의 지속가능성을 다양한 조건으로 평가하고 인증해오고 있었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캘리포니아의 CCSW입니다.
<CCSW : Certified California Sustainable Winery>
2003년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 협회(California Association of Winegrape Growers)는 Wine Institute와 함께 ‘캘리포니아 지속가능한 양조 연합(CSWA)’을 결성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2010년 환경 건전성, 경제적 타당성, 사회적 평등성이라는 세 가지의 주요한 개념을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는 인증을 만들었습니다. 이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100여 개의 기준은 사용하는 물, 에너지, 온실가스 배출, 탄소 발자국 배출 정도를 1점부터 4점까지 다양하게 채점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비단 천연 비료를 사용하거나 물을 아끼는 것만이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 또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지표였죠. 실제로 CCSW는 미국 와인 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지속가능성 인증 프로그램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실제로도 매년 제삼자에 의한 감사를 통해 인증된 와이너리들을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습니다.
<SIP : Sustainability in Practice>
역시 캘리포니아에서 2008년부터 시작된 SIP 인증은 사람(People), 지구(planet), 번영(Prosperity) 이 세 가지의 P를 기준으로 지속가능성을 평가합니다. 실제로도 SIP의 홈페이지에서는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과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을 중시한다고 소개하고 있죠.
포도밭이나 양조장, 와인에 대한 인증이 모두 가능하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와인의 경우 해당 와인이 양조 되는 데에 SIP 인증을 받은 포도가 85% 이상만 쓰이면 병에 SIP 인증 마크를 붙일 수 있다는 점이죠. 여러 가지 포도를 블렌딩하는 와이너리들을 고려한 판단 조건처럼 보입니다.
이 외에도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을 비롯한 미국에는 LODI Rules, LIVE Certified Sustainable, Salmon SAFE 등 평가 조건에서 비중을 두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거나, 인증을 담당하는 지역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인증제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잘 살아나갈 수 있는 미래를 그린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와인 업계의 노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도 국제적으로 인증받는 지속가능성 인증 제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SWNZ : Sustainable Winegrowing New Zealand>
뉴질랜드의 지속가능한 와이너리 인증 제도인 SWNZ는 1995년 국제 와인 산업에서 최초로 설립된 인증 프로그램중 하나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삼자에 의해서 감사를 받은 100% 지속가능성이 인증된 양조장에서, 역시 100%로 인증된 포도로만 만들었을 때 자격이 되는 이 인증서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그 표준을 수립해서 발급되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뉴질랜드 포도밭의 96%가 이 인증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렇듯 지속 가능한 와인에 대해서 많은 국가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접근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조금 늦지만 어쩌면 가장 지속가능성이 화두가 되어야 할 시기인 올해 그 꽃을 피운 곳도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SWGB입니다 .
<SWGB : Sustainable Wines of Great Britain>
영국의 지속가능한 와인에 대한 평가 기준은 조금 늦게 세워진 편입니다. 2020년 수립되어 올해 처음으로 인증받은 지속가능한 와인이 출시되었으니까요.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포도밭에 서식하는 생물의 다양성 증진 여부, 수로의 오염 여부, 탄소 발자국 등 역시 다양한 조건을 가진 SWGB. 2021년엔 인증받은 4명의 생산자의 10종류의 와인이 인증을 받았습니다. 올해를 시작으로 앞으로 영국에서도 지속 가능 인증을 획득하는 와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겠죠. 늦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와인 산업의 구성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지구상의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지속가능한 와인 산업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칠레의 Cerified Sustainable Wine of Chile, 남아공의 Integrity & Sustainability Certified, 호주의 SAW(Sustainable Australia Winegrowing) 등등.
물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아직도 많습니다. 와인의 주재료인 포도를 키우는 행위인 농업 자체는 아보카도나 아몬드처럼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건강한 분야이지만,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많은 작업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데 커다란 몫을 하고 있죠. 이보다 더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유리병에 병입되어 비행기나 배를 통해 전 세계로 운반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환경친화적인 캔 와인 등이 보편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 보편화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와인 업계가 풀어가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셈이죠.
그러나 변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Wine intelligence가 2020년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10명 중 9명은 지속 가능한 와인을 위해서 약 3달러의 돈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전통성의 가치가 빛나는 와인 산업에서, 그 전통이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변화에 열려있는 모습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덕분에 300년 후에도 우리가 여전히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와인을 즐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오늘도, San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