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많이 먹으면 키가 큰다.”라는 말을 믿는가? 나는 믿을 수 없다. 우유가 키를 크게 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면 적어도 나는 대한민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키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기에 우유와 키의 연관성은 없다. 우유와 키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그런 의문이 생긴다. “우유는 어쩌다 건강함의 상징이 되었을까?”
우유를 못 먹는 것이 정상이다…?
사실 유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목민족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우유를 소화하는 유당분해효소가 몸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유당불내증’이라 하는데, 재밌는 것은 우리의 인식과 다르게 지구상에 유아기 이후로 젖을 먹는 동물은 거의 없으며 특히나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 동물은 더욱이 없다.
실제로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모체의 젖을 먹어야 하는 영아기 때 유당분해효소를 보유하고 있다가 젖을 먹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분해효소의 분비를 멈추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 즉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는 상태인 ’유당불내증‘이 사실은 인간의 자연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자연 상태를 어겨가면서 꼭 우유를 먹어야만 했을까?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하나씩 알아보자.
동물의 젖은 인간의 훌륭한 식량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산모가 아이를 낳고 죽는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대신 수유를 할 수 있는 수유자가 있지 않고서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다른 동물의 젖밖에는 없었다.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서 꽤 오래전부터 동물의 젖을 주는 것은 상당히 통용되어 온 일이었다.
고대에는 갓난아기가 동물의 젖을 먹고 목숨을 구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특히 젖소는 사람들에게 길들여지기 쉬웠고, 또 키우기 비교적 수월한 가축으로 판단되어 지금까지도 수많은 동물의 젖 중에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다. 물론 세균과 미생물 오염에 취약한 젖의 특성상 위생적으로 젖을 제공할 방법은 한정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낙농업이 급속도로 발전되며 우유는 거의 완벽하게 모유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심지어는 17~18세기 유럽의 상류층 여성들에게 모유 수유는 하층민들의 생활방식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곧이어 ’우유에 다양한 식재료를 섞어 희석한 우유가 아이들의 영양가에 좋다.‘라는 인식까지 생기면서 급기야 19세기 말에는 동물의 젖을 사용한 이유식이 보편화되었다. 그렇게 동물의 젖은 인간의 젖을 빠르게 대체했다.
모유를 대체하기 위하여
1800년대 우유가 빠르게 모유를 대체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태어난 지 1년이 되지 않은 20%의 아기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의사와 약사들은 영양가 높은, 모유를 대체할 수 있는 우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1867년 스위스에 살던 독일 약사 앙리 네슬레가 우유와 설탕, 밀가루의 혼합물을 아기들에게 먹이기 시작했고, 그 우유를 먹은 아기들이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며 이는 곧 상업적으로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이 우유제품이 지금의 세계 1등의 식품기업인 ’네슬레‘ 기업의 시작이다. 네슬레는 이후에도 모유를 대체할 수 있는 우유, 즉 분유를 만드는 영아식 사업을 시작했다.
우유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도전
인간이 우유를 마시는 데 있어 가장 위험한 문제는 단연 위생이었다. 지금은 우유가 상하는 이유를 각종 병원성 미생물 및 세균이라 인식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인지하기 전의 인류에게 우유의 부패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 힘이었다. 하지만 곧 과학의 진보로 ’미생물‘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고,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 끝에 인류는 ’저온 살균‘을 통해 더욱 안전하게 우유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우유는 곧 다양한 살균법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로 대량 생산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우유는 더 이상 아기만 먹는 식품에서 벗어났다. 대량생산을 통한 우유는 각종 가공품, 치즈, 버터, 연유, 요구르트 등으로 가공되었고 그들은 전 세계의 식문화의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에게 우유는 어떤 의미인가?
앞서 우리가 먹고 있는 지금 우유의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봤다. 정리하자면 우유는 모유의 대체품이었으며, 모유를 대체하기 위한 방향으로 우유 산업은 발전되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우유는 조금 더 안전하게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식품이 되었다. 특히 지방과 단백질 함량이 높은 우유는 산업혁명 당시 영양이 부족했던 이들에게 가장 간편하고 효과가 좋은 대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과영양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우유의 역할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더 이상 영양의 측면으로 우유를 먹기보단, 조리적 기능성과 기호성으로 소비된다. 물론 여전히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는 아기들에게는 최고의 대안이지만, 우리가 우유에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는가? 우리가 우유에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유아기가 지나서도 젖을 먹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과 우유에 대해 생각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