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발텔리나에는 두 개의 DOCG와 각각 한 개의 DOC, IGT가 존재한다. 특히 눈여겨 봐야 할 와인이 스포르자토 디 발텔리나Sforzato di Valtellina DOCG(종종 Sfursat라고 적기도 함)다. 베네토의 아마로네 Amarone처럼 말린 포도로 만든 풀 바디한 드라이 레드 와인으로, 아마로네보다 무려 7년이나 앞서 DOCG를 획득했다.
스포르자토의 와인 메이킹은 아마로네와 비슷하다. 우선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네비올로를 골라 수확하는데, 보통 다른 와인에 쓸 포도보다 한 주 정도 일찍 수확한다. 이는 포도를 말리는 과정에서 포도의 신선함을 책임지는 산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후 수확한 포도를 ‘프루따이오 fruttaio’라 부르는 건조실에서 나무판 위에 놓고 말린다. 현재는 위생에 신경을 써서 플라스틱으로 바뀌는 추세다. 여하튼 온도와 습도가 잘 유지되는 곳에서 30~100일 정도 말리는데, 이때 포도의 볼륨이 20~40% 감소하면서 당도와 산도가 응축된다. 참고로 최근에는 포도를 늦게 수확하고 말리는 것을 30~60일 사이로 적게 하는 생산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스포르자토는 12월 10일 이전에는 포도를 양조하면 안 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이후 적어도 20개월은 숙성을 시키며, 나무통에서 최소 12개월, 나머지가 병 숙성이다. 나무통은 종류와 크기가 와인 메이커의 철학에 따라 나뉘는 편이지만 전통적으로 지역의 밤나무나 슬라보니안 오크로 만든 나무통에서 숙성시키는 편이다. 다만 혁신적인 와인메이커들은 225ℓ의 프렌치 오크나 슬라보니안 오크에서 숙성을 시키기도 한다.
스포르자토 DOCG를 획득하려면 위의 컨셉대로 양조하고 숙성하되 네비올로를 90% 이상 써야 하며 알코올 도수가 최소 14% 이상은 나와야 한다. 대부분 와인들이 14~16% 사이다. 이 와인에 대한 개인적인 묘사를 하자면 마치 바롤로와 아마로네의 사이에 있는 느낌이다. 아마로네의 결이 깊은 파워풀함과 바롤로의 섬세하고 긴 여운이 합쳐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골격은 스위트 스파이시, 감초와 같은 캐릭터다.
또 다른 DOCG인 발텔리나 슈페리오레 Valtellina Superiore DOCG도 매우 흥미롭다. 이 DOCG는 5개의 서브 존으로 나뉘는데 와인의 캐릭터가 약간씩 다르다. 이 서브 존의 이름은 레이블에 표시될 수 있기 때문에 발텔리나 슈페리오레를 트라이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다.
첫 번째, 마로지아 Maroggia는 5개 중 가장 작은 서브 존이다. 크기는 약 60acre. 강렬한 루비색에 체리, 라즈베리 아로마가 특징적이고, 네비올로 품종의 전형적인 특징인 장미와 바이올렛 향도 지배적이다. 균형감이 좋고 풀바디하며 부드럽고 가벼운 타닌과 좋은 산도가 특징이다. 섬세한 스타일의 네비올로 와인을 찾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두 번째 사쎌라 Sassela는 발텔리나 포도밭의 그랑 크뤼라 불리는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다. 크기는 325acre에 달하는데, 남향에 매우 배수가 좋고 가파른 경사를 자랑한다. 와인의 특징은 밝은 루비색, 체리, 라즈베리 잼, 장미, 잘 익은 블랙 체리 뉘앙스가 특징이다. 입에서는 풀 바디하며 부드러운 타닌, 프룬과 스파이시한 뉘앙스를 남기는 긴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그루멜로 Grumello. 200acre의 규모이며, 이 지역의 유명한 성의 이름이 그대로 사브 존 명칭이 되었다. 2,200피트(해발 670m)의 높이에 포도밭이 있는데 발텔리나에서 가장 높은 곳이고 유럽 전체를 따져서도 상위권이다. 워낙 고지대이기 때문에 와인이 약간 가벼운 스타일을 보인다. 접근성이 좋은 이지 트링킹 발텔리나 슈페리오레라고 생각하면 좋다.
네 번째, 인페르노 Inferno. 이탈리아어로 ‘지옥’이라는 뜻이다. 140acre의 넓이로, 한여름에 내리쬐는 햇살의 세기가 다른 곳과 비교하기가 힘들 정도로 강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인페르노에서 체감하는 여름의 체감온도는 아프리카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한다. 어두운 석륫빛을 띠며, 말린 과일의 풍미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스파이시하며 담배의 부케도 느껴진다.
다섯 번째는 동쪽 끝의 발젤라 Valgella다. 340acre의 규모이며,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타닌이 강하고 터프한 와인을 생산한다.
우리 부부는 발텔리나에서 두 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니노 네그리 Nino Negri와 알도 라이놀디 Aldo Rainoldi. 둘 다 발텔리나 와인의 역사적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만약 이 지역을 여행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1897년 설립된 니노 네그리는 1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지역의 터줏대감이다. 1971년 칼루찌오 네그리 Carluccio Negri가 고용한 카시미로 마울레 Casimiro Maule(현 니노 네그리 CEO)는 약 50여 년 동안 니노 네그리 그리고 발텔리나와 함께 하며 그의 열정과 사랑을 쏟아 부은 핵심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발텔리나 지역 와인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와이너리 투어를 통해 진심으로 이 지역의 와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특히 이들이 생산하는 ‘SFURSAT 5 STELLE Sforzato di Valtellina DOCG’는 발텔리나의 슈퍼 드라이한 네비올로의 맛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와이너리를 방문하려면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알도 라이놀디 또한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자다. 19세기 말부터 라이놀디 가문에 의해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어 온 곳으로, 토리노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한 알도 라이놀디와 그의 자식들이 현재 와이너리를 돌보고 있다. 발텔리나에 근사한 와인 샵이 있어 별다른 약속 없이 들러서 간단한 와인 테이스팅과 와인 구매를 할 수 있다.
발텔리나 와인 산지를 향해 가는 길은 험난하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불친절한 이탈리아 운전자들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 하지만 마침내 다다른 그곳에서 만난 경이로운 포도밭. 그리고 그 오지에서 열정과 사랑을 담아 헌신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생에 다시 한번 이곳을 방문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할 것 같은 발텔리나에서 와인과 함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의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