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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와인 지역 – 발텔리나

우리가 사랑한 와인 지역 – 발텔리나

와인쟁이부부 2019년 2월 15일

단순히 포도나무의 집합이라 할 수 있는 포도밭에서 때로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위대함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 부부도 다양한 와인 산지를 여행하면서 그런 감정을 간헐적으로 느꼈었다. 그중 가장 강렬했던 곳을 몇 가지 나열하면, 포르투갈의 도우로 밸리 Douro Valley, 독일의 모젤 Mosel, 이탈리아의 친퀘 테레 Cinque Terre,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발텔리나 Valtellina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가파른 경사’. 등반하는 것조차 힘든 이곳에서 경사면을 개간하고 돌담을 쌓고 포도나무를 심었던 이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급경사에 조성된 발텔리나의 포도밭 / 사진 제공: 배두환

위에서 언급한 지역들을 기회가 된다면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발텔리나다. 발텔리나는 ‘가파른 경사면’이라는 특징을 제외하고 와인 애호가라면 한 가지 더 구미가 당길 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곳의 주요 포도 품종이 ‘네비올로 Nebbiolo’라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지역의 특수성부터 다뤄보자.

발텔리나는 롬바르디아의 북쪽, 스위스 접경에 위치하며 길고 구불구불한 협곡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발텔리나 협곡은 베르벤노 Berbenno(di Valtellina) 마을에서부터 티라노 Tirano까지, 동에서 서로 무려 200km가 넘게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북쪽에 위치한 몇몇 주들이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발텔리나도 1512년부터 1815년, 약 300년 동안 스위스의 한 주로서 기능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와인 산업의 흥망성쇠도 스위스와 연관이 있다.

발텔리나가 스위스에 속해 있던 기간에는 “made in Switzerland”라는 타이틀을 달고 와인이 생산되었고 당연히 대부분을 스위스에서 소비했다. 이는 1870년 이탈리아가 통일된 후 롬바르디아가 이탈리아의 한 주가 되면서도 한동안 이어졌다. 스위스로 수출되는 발텔리나 와인에는 세금이 면제되었고, 심지어 스위스의 수입상들은 일정량 발텔리나 와인을 구매해야 하는 무역 협정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관행은 1980년대에 끝이 났고, 믿을 만한 구석이었던 스위스의 부재는 곧 발텔리나 와인의 침체기를 가져왔다. 안 그래도 가파른 경사 때문에 일하기 힘든 포도밭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와인 생산자들은 문을 닫았다. 포도밭의 약 80%는 버려진 산비탈로 남거나 과수원으로 바뀌었다.

아픔을 겪었던 발텔리나의 와인 산지는 이제 중심 도시인 손드리오 Sondrio양 옆으로 약 25km씩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총면적은 약 2,100acre. 지역 단위 와인 생산지로 따지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작은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 지역의 와인들은 근교에서 약 80%가 소비되기 때문에 다른 국가, 심지어 이탈리아 내에서도 잘 알려진 편이 아니다.

우리 부부가 이탈리아 최북단에 위치한, 자동차로도 험한 산길을 수 시간을 달려야 하는 이 오지를 굳이 여행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경이로운 산비탈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피에몬테의 소울과도 같은 네비올로가 발텔리나에서는 어떤 모습인지도 궁금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진입하는 루트를 선택했기 때문에 코모 Como 호수에 숙박을 잡고 하루의 시간을 내서 발텔리나 와인 산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발텔리나를 생에 한 번이라도 가기를 희망하는 와인 애호가가 있다면 코모 호수에 숙박을 잡으면 일거양득이다. 개인적으로 가르다 Garda 호수보다 코모가 더 좋았다. 가르다 보다 덜 붐빈다는 장점이 있으면서 아름답기로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경이로운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평화로운 호숫가에 앉아 물결 위에 거울처럼 비치는 설경의 알프스산맥을 바라보며 마셨던 와인 한 잔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포도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탈리아에서는 발텔리나처럼 급경사의 포도재배방식에 ‘영웅적인 heroic’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포도 재배는 고되다. 이는 직접 일을 해보지 않더라도 포도밭만 봐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포도나무는 가파른 경사에 계단식으로 재배되고 있기 때문에 기계 사용이 불가능하다. 모든 작업을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감당해야 한다.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어 있는 현대의 포도 재배 방식에서 벗어나, 어쩔 수 없이 중세 시대 혹은 고대의 포도 재배 방식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얼마나 경사가 급하면 ‘영웅적인’이라는 표현을 붙였을까. / 사진 제공: 배두환

수확기는 더 고되다. 발텔리나는 이탈리아의 최북단에 있지만, 한여름의 체감 온도는 아프리카와 맞먹는다. 다만 이 열기가 7월이 지나면 빠르게 수그러들기 때문에 개화는 피에몬테와 비교해서 2주 정도 빠르지만, 수확은 11월 중순까지 길게 이어진다.

수확된 포도는 작은 배스킷(현지에서는 ‘포르티니 portini’라고 부른다)에 담아 등짐으로 옮기는데, 수확기에는 이 포르티니를 등에 메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고 내리는 수많은 인부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나무로 만들던 포르티니는 현재 위생적인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대형 와인 생산자의 경우 도르래를 이용해 수확된 포도를 옮기기도 하는데 매우 예외적이다.

또한 겨울에 내리는 비는 종종 토양의 침식을 일으키고, 아래로 밀려 나간 흙을 언덕 위로 실어 나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 마디로 이곳에서의 포도 재배는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인 셈이다.

발텔리나의 포도밭에서 한 가지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포도밭의 열을 구분하는 돌담이다. 이 돌담을 ‘무레띠 Muretti’라고 부르며, 기원이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존재한다. 이 무레띠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무려 2,400km의 길이라고 하며, 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포도밭 테라스 규모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무레띠는 2018년 유네스코가 인정한 무형문화유산의 일부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돌담 ‘무레띠’ / 사진 제공: 배두환

앞서 발텔리나의 주요 포도 품종을 네비올로라고 언급했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키아벤나스카 Chiavennasca다. Chiavennasca는 이탈리아어인 ‘Ciu Venasca’에서 유래한 것으로 ‘더 많은 와이너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고로 키아벤나스카는 네비올로의 고대 클론 중 하나이고, 발텔리나의 여러 토착 품종인 ‘로쏠라 Rossola’, ‘피뇰라 Pignola’, ‘부르뇰라 Burgnola’ 또한 유전적으로는 네비올로와 연관이 있다. 이 품종이 최초로 문서에서 언급된 것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분명히 그 이전부터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재배되어 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발텔리나 포도밭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발텔리나의 메인 품종이라 할 수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발텔리나에 존재하는 두 개의 DOCG와 방문하면 좋을 와이너리를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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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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