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보관하는 지하 저장고로서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일정한 온도, 정제된 심연의 어둠, 파도로 인한 자연적인 리무아쥬 등 바다 깊숙이 와인을 보관하는 일은 일시적인 추세가 아니라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많은 생산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보관 방법이다.
세계의 와인 생산자들이 바다 깊숙이 빠지는 이유?
와인이 바닷속, 수중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궁금해하고 직접 실험과 연구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낸 것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에트나 지역 와인 생산자인 베난티(Benanti)와 지금은 명을 달리하여 세상에 없는 안드레아 프란케띠(Andrea Franchetti)의 후손들이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파쏘피시아로(Passsopisciaro)는 카타니아(Catania) 대학의 연구팀들과 함께 오랜 연구와 분석 끝에 바닷속의 와인은 완전한 암흑, 소음의 부재, 일정한 온도의 영향으로 지하의 셀러에 맞닿는 장점을 발견하고 있다.
이런 시도와 연구는 시칠리아 섬에 제한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북부 리구리아 주에서 스푸만테 와인인 비쏜 아비씨 스푸만테 메토도 클라씨코(Bisson Abissi Spumante Metodo Classico)를 생산하고 있는 비쏜 비니(Bisson Vini) 와이너리, 사르데냐 섬에서 베르멘티노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깐티나 산타 마리아 라 팔마(Cantina Santa Maria La Palma), 그리고 산지오베제와 알바나 품종을 독점으로 생산하고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테누타 델 파구로(Tenuta del Paguro) 역시 동참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벗어나면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에마누엘레 코타키스(Emanuele Kottakis), 그리스의 에게해 키오(Chio) 섬의 그리스인들의 양조 방법의 실험, 그리고 그리스를 대표하는 가이야 와인 셀러가 와인의 일부를 바닷속에 보관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이런 방법을 과학적인 실험, 조상들의 연구 결과를 통하여 증명하고 있다.
이밖에 스페인의 바스크 해안을 따라 위치하고 있는 크루소 트레저(Crusoe Treasure), 크로아티아의 에디보 비노(Edivo Vino)는 이미 쌓인 경험으로 물에 잠긴 암포라에서 와인을 보관하고 있다. 또한 이런 방법의 실험, 스토리텔링 등의 관점으로 ‘Cellar in the Sea’라는 프로그램 역시 실행 중인데 뵈브 클리코(Veuve Cliquot), 레끌레르 브리앙(Leclerc Briant), 프레르장 프레르(Frèrejean Frères), 메종 트라피에(Maison Drappier) 등의 샴페인 생산자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와인은 어떻게 보관될까?
와인을 바닷속에 보관하여 숙성하고 있는 와이너리들은 모두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그 장점을 얻어내고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 대학과 와이너리들의 바닷속 와인 보관 방법의 연구를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일단 와인이 담긴 병은 금속으로 만든 철망에 담아 50m 깊이의 시칠리아 치클로피(Ciclopi) 섬의 보호된 해양 지역에 잠기고 약 6개월 동안 숙성된다. 바다에 잠긴 와인의 해양 샘플의 분석은 육지에서 행해지는 전통적인 셀러 속의 와인의 분석 과정과 동일하게 수행된다.
즉 이것은 수중의 와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한 세계 최초의 집중적인 연구로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스파클링 와인 등 14가지의 다른 종류의 와인을 통해 바닷속의 압력, 완전한 어둠, 소리의 부재, 일정한 온도의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각각의 와인병의 수명은 디지털 ID 카드를 통해 모니터링되고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되어 보관된다. 각각의 와인병에는 수확 날짜부터 병입까지 모든 것이 일련번호로 정리되어 있어 관리하기 수월한 시스템을 갖춘다.
지구의 환경 보존에 도움을 주는 바닷속 와인 보관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온난화는 자연적으로 물 흐르듯 변화는 현상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자연재해가 속수무책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경우를 한 번에 해결해주는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하 셀러에서 점점 와인을 보관하기 힘들어지는 요즘, 과학적인 시스템보다 자연의 힘을 더 믿고 시작한 바닷속의 와인 숙성과 보관의 시작은 아이러니한 현상일 수도 있으나 결과는 박수받을 만하다.
여하튼 이렇게 바닷속에서 와인을 숙성하며 보관하는 방법은 자연적으로 냉장되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에 유리하고 이는 환경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진다. 즉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었던 지하 셀러는 이제 에어컨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기계적인 시스템을 설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바닷속은 자체적으로 온도가 일정 기간 유지되기 때문에 상당한 에너지와 물류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Life Cycle Engineering의 연구에 따르면 0.75리터 1병당 약 0.68kg의 CO₂가 소비되는데 해수면보다 50m 낮은 해저의 경우, 이상적인 일정한 온도 덕분에 약 68kg의 CO₂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와인이 완전한 맛을 내는 숙성 기간 역시 줄어들 수 있다니 바닷속으로 눈을 돌려볼 이유는 충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