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와인바 Talk, 와인의 보관과 숙성 1
와인의 보관과 숙성은 함께 이루어진다. 오크통에서 숙성을 마친 후 더 이상의 숙성이 불가능한 완제품이 되어 병입 되는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증류주와는 달리, 와인은 오크통에서의 짧은 숙성 과정을 거치고 난 후 병입 후에 와인병 안에서도 숙성이 계속 진행된다. 와인의 보관이 중요한 이유는 이 숙성 과정에 있다. 와인을 적절한 방법으로 보관하게 되면 정상적인 숙성 과정을 거쳐 더욱더 깊은 맛을 내는 와인으로 변한다.
와인의 숙성은 와인에 복합적인 향과 맛을 주는 과정으로 처음의 신선한 과실 아로마들이 점점 복합적이고 미묘한 부케로 변해간다. 또한 강하고 거친 타닌도 숙성 과정을 거치며 점점 부드럽게 변해간다. 이러한 과정들은 와인이 소량의 공기와 접촉하는 산화 과정에 의하여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산화 과정보다는 와인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의 환원 과정에 의하여 진행된다고 밝혀졌다.
와인을 아무리 잘 보관한다고 해도 와인이 가지고 있는 요소를 소모해가며 숙성이 진행되다 보니 와인의 숙성에 의한 맛과 향의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숙성에 의한 와인의 맛과 향은 그 정점을 찍은 후 수직에 가까운 형태로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의 숙성 기간은 와인의 품질에 비례한다. 와인의 품질이 좋을수록 오랜 기간의 숙성 과정을 버틸 수 있는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많은 연구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와인의 품질을 어느 정도까지는 상향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와인마다 적절한 숙성기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와인은 5~7년 안에 소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마트 같은 소매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품질이 좋다고 알려진 한 칠레 와인의 오래된 빈티지를 우연히 와인 샵에서 본 적이 있다. 약 15년 정도 숙성된 매그넘(Magnum) 사이즈의 와인이었는데, 오래 숙성이 된 그 와인을 처음 보았기에 궁금해하며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와인이 못 마실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그넘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와인의 정점은 한참 지나있었다.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와인의 숙성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잘못된 보관에 의해 더더욱 빨리 찾아온다. 칠레의 그 와인이 한계가 지난 와인이었는지, 혹은 보관이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같은 와인을 다시 한번 마셔보며 확인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와인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와인 선물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와인바 손님도 꽤 많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하지 않더라도, 와인을 보관하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에는 와인 셀러(Cellar)가 기본 옵션으로 들어갈 정도로 와인에 대한 수요나 관심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와인을 위스키나 브랜디와 같이 진열장에 잘 보이도록 세워서 보관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그 상태로 몇 년이 지나는 경우도 많다.
많은 고객이 와인의 보관 방법에 관해 묻고 나서 저렇게 진열장에 보관된 와인의 생사를 묻고는 한다. 와인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나면 아주 귀한 보물을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요리할 때나 써야겠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와인들이 잘못된 보관 방법으로 변질한다. 그리고 기대하며 오픈한 와인이 변질하였을 때의 실망감은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실망감을 최대한 마주하지 않도록 와인의 올바른 보관 방법에 대해 알아두어야 한다.
집에서 와인을 보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와인 전용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다. 흔히 와인 셀러(wine cellar)라고 하는데, 와인 셀러의 온도는 와인의 가장 좋은 보관 온도로 알려진 12.7℃가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와인 셀러들은 소수점까지는 세팅이 불가능하기에 13℃로 보관하는 것이 가장 흔하다. 하지만 와인 셀러가 없는 경우에는 보관 방법이 막막할 수 있다.
와인의 보관에서 중요한 것은 진동과 빛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과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직사광선과 높은 온도는 와인의 숙성을 매우 빠르게 진행하며, 잘 보관된 와인보다 맛과 향을 훨씬 더 빨리 잃어버리는 결과를 얻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일정하게 높은 온도보다 (일반적인 가정집의 온도인 28℃ 전후) 안 좋은 것이 낮은 온도와 잦은 온도 변화이다. 겨울철은 조금 덜하지만, 여름철의 경우 집에서의 온도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여름철 에어컨을 켰을 때와 켜지 않았을 때의 온도 차이는 약 10℃ 이상이 나게 되는데, 이러한 온도 변화는 와인에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심지어 이러한 변화는 거의 매일 일어난다.
집에서 와인을 보관할 때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이 일반 가정용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다. 가정용 냉장고의 냉장칸은 대부분 3℃ 전후로 온도가 세팅되어 있는데, 4℃ 이하의 온도에서 와인의 주석산염 생성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와인의 맛과 향이 모두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와인을 많이 보관하는 곳으로 발코니나 다용도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발코니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없고 햇빛이 들기에 온도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냉장고 보다는 좋지만 가장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와인 셀러없이 와인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매일 보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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