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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승자의 기록 – 경주를 걷다.

역사, 승자의 기록 – 경주를 걷다.

백경화 2016년 6월 10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오로지 배우 유아인이 좋아서 시청을 결심했고,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과연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그 뽀송하고, 맑은 얼굴로 고독하고, 강단 있는 결정을 하는 태종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가 드라마를 시청하는 주된 관심사였다. 게다가 드라마에서는 방원에서 태종으로 변화하는 캐릭터 말고도 ‘분이’에 대한 식지 않는 연정의 모습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가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는 팬심으로 가득한 나의 유일한 관전 포인트였음을 고백한다. 오로지 팬심으로 본방을 사수한 순수한 시청자인 내가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방법에 찬사를 보낸 장면이 있다. 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하는 거사를 치르기 직전 이방원의 책사(사실 하륜은 책사라 하기엔 너무 사익에 충실했다) 하륜이 역사에 기술 될 거사의 변과 그날의 ‘사실’을 낭독하는 장면이다. 실록에 남은 정도전의 최후의 모습은 하륜이 낭독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리고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한 이유는 사익에 눈이 먼 정도전을 제거해 올바른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애끓는 우국충정에 의한다. 이 장면은 태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태조실록은 태종 때 정리된다. 드라마와 관련해 한 가지를 더해 보자면 드라마의 제목인 ‘육룡이 나르샤’는 세종 때 지어진 시문으로 태종으로부터 목조까지 6대에 걸친 조선 왕가의 행적으로 조선 건국의 당위성을 표현한 서사시이다. 조선은 부패한 고려에 저항한 유학자 집단과 그들이 왕으로 세운 변방의 장군 이성계가 이룬 군사 쿠데타 혹은 역사적 혁명으로 이룩한 새로운 나라가 아닌 오래전부터 준비된 신성한 가문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는 이렇게 현재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기에 어떤 권력이 현재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기록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똑똑한 후손들은 남겨진 기록을 연구하면서 선대를 평가한다.

경주는 삼국 시대 신라에서부터 시작해 삼국이 통일된 이후까지 무려 천 년 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다. 그리고 너무나도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있었던 한반도 내의 난리 중에도 참으로 잘 보존된 역사적인 고장임이 틀림없다. 훌륭한 선조를 둔 것은 얼마나 큰 유산인가? 경주가 가지고 있는 천 년 도읍의 유산은 천 년이 훨씬 지난 지금 2016년에도 경주의 가치를 삼국을 통일한 역사적인 도읍지 외에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경주는 신라의 천 년 도읍지로서의 의의를 빼고서는 이야기될 수 없다. 아마도 지금의 서울이 조선과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천 년 이상 지속한 이후 우리의 후손들이 서울의 역사적 가치를 이야기하게 될 때도 경주의 가치는 변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공존하지 않는 역사는 묵은 시간 속의 박제일 수밖에 없다. 볼 수 없는 유산과 만질 수 없는 유물은 그저 역사서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 외에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그저 학자들의 연구 자료일 뿐 더한 가치는 없다고 본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든지 간에 현재와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말이다.

나는 학창시절 경주를 다녀간 적이 없어 천년 고도라는 엄청난 이름을 지닌 경주를 부담스럽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즉, 단체로 움직이면서 부여받는 무거운 미션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내가 다녀온 경주는 어디를 봐도 옛날 사람의 무지막지하게 큰 무덤이 보이는 고대 풍의 테마파크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무지막지하게 큰 무덤이 군데군데 있는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숲을 걸었는데 그곳이 ‘계림’이라는 곳이더라. 그런데 그곳은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곳이라더라. 뭐 이런 식이었다. 마침 계림을 걸을 때는 약한 비가 오락가락하는 다소 습한 날씨 덕에 잘 가꿔진 울창한 숲과 옛사람이 묻힌 큰 무덤과 더불어 살짝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기도 했는데 주말 예능 프로그램처럼 생각해 보자면 CG를 이용한 시간 여행 같은 것이 이뤄지면 재밌겠다 싶었다. 주말 오후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산책을 즐기는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이나 한참 애정이 샘 솟는 연인들의 데이트라든가, 오랜만에 실컷 뛰어보자는 아이들과 ‘그래 열심히 뛰고 밤에는 좀 일찍 자라.’ 싶은 속내를 비치는 부모들의 표정, 머리 아픈 미션을 수행 중인 단체 역사 여행객들까지 각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걷는 숲길. 아마도 그날 다소 흐린 듯 습한 날씨와 짙어진 초록 잎새들이 때마침 가려 준 햇살 덕에 좋은 배경 속에서 예쁜 사진을 한 장 정도 흐뭇하게 얻었으리라 싶다.

 

- 사진, 황룡사지

– 사진, 황룡사지

다행히 경주의 이름난 관광 코스들은 걸어 다니며 둘러보기 좋은 동선인데 선대 조상들이 후대를 생각해서 일부러 오밀조밀 비슷한 곳에 오래 남을 만한 괜찮은 것들을 모아 놓자 한 것은 아니겠지만 여유롭게 걸으며 눈이 시원해지는 동안 나도 모르게 경주 김씨 왕조들에게 땡큐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마주친 ‘첨성대’. 미션 수행 중인 어린이 단체 여행객들과 인솔 교사. 쟤들은 분명히 이 여행이 끝난 후 검색 엔진을 돌려가며 답사기를 작성해야 할 거다.
첨성대는 고대 우리나라의 천문 과학 기술의 정도를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건축물이라고 배웠으나 내 기억 속의 첨성대는 신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봤던 국가의 운을 점치던 바로 그곳이다. 뿐이랴 선덕 여왕 때 축조된 이 건축물로 말미암아 나의 상상력은 드라마와 역사를 넘나들며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으니 김유신은 정말 선덕 여왕에 대한 추호의 연정이 없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이 들다가 여왕의 지배 시절 실제 권력을 행사했던 김용춘은 처형인 선덕 여왕, 동서 지간인 백제 무왕을 두고 어떤 권력의 줄다리기를 했을까? 하는 잡생각들이 든다. 성골 남자가 없는 중에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은 골품도 진골이고 왕의 사위로서 충분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이 됐으나 당시의 귀족들은 성별 대신 골품을 택해 진평왕의 맏딸인 덕만을 왕위에 앉힌다. 하지만 두 여왕 이후 성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김용춘의 아들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진골 최초의 왕이 되니 김용춘도 밑지는 거래는 아니었다 싶다가 문득, 딸만 셋 낳은 진평왕은 성골 남자의 대를 끊었다는 자책도 있었겠구나 싶은 쓸데없는 오지랖도 발동이 되니 내게 첨성대는 우리나라의 고대 천문과학 기술의 상징이라기보다 무한한 환상의 시발이 아닌가 싶다.

- 사진, 첨성대

– 사진, 첨성대

그렇게 슬슬 걷다 보면 유서 깊은 동네마다 있는 한옥 마을에도 발길이 가게 되는데 경주에는 교촌 마을이 그렇다. 최근 들어 첨성대보다 더 유우명해진 ‘교리 김밥’집도 그 안에 있다. 진짜 줄이 얼마나 긴지 교리 김밥 봉다리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에서부터 우러난다. 이어 한옥 마을에서 보게 된 경주 최 부자 고택.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로 나눔을 실천했다는 경주 최 부자의 고택. 그리고 그 옆집인 교동 법주의 생산, 판매집.
최씨 고택보다 더 매력적인 맑고 단맛이 강한 교동 법주는 함양집의 육회 혹은 달콤한 떡과 함께하면 정말 훌륭한 매칭을 보여주니 경주에 가시는 분들은 꼭 이 맛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 사진 : 교동법주와 떡

– 사진, 교동 법주와 떡

- 사진, 함양집 육회비빔밥

– 사진, 함양집 육회비빔밥

먹을거리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놀라웠던 사실은 경주에는 꽤 괜찮은 로스터리 커피집이 많았다는 점이다.
직접 볶고, 핸드 드립한 커피 맛은 기대 이상이었는데 지방 여행을 하면서 맛 좋은 커피를 마시게 되리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깜짝 선물을 만난 기분이었달까? 오래 걷고 한숨 돌리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의 풍광도 멋지고, 커피 맛도 좋은 곳들이 많다는 것은 경주 여행에 분명히 플러스 되는 부분이다.

– 사진, 핸드 드립 커피

- 사진, 커피집 내부

– 사진, 커피집 내부

- 사진, 경주 풍경

– 사진, 경주 풍경

 

그리고 불국사.

- 사진, 불국사

– 사진, 불국사

- 사진, 다보탑

– 사진, 다보탑

흐리고 가끔 비를 뿌린 전날 날씨와는 다르게 쨍하고 맑은 날씨 속에 찾게 된 불국사는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들로 매우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신라는 중국과의 교역이 힘들었던 탓에 삼국 중 가장 발전이 더뎠는데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 이후 백제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순발력을 가진 지증왕의 내부 개혁을 통해 슬슬 나라의 기반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라의 내부를 정비하기 시작한 지증왕에 이어 법흥왕은 국제적 안목으로 신라를 중국화 시키며 발전을 꾀하는데 신라에 불교를 정착시키는 데 큰 힘을 쓴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 통치자의 국내외적 안목과 결단이 나라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지 보게 된다. 역사서에서는 법흥왕 때 불국사를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하나 불교사에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눌지왕 때를 그 시작으로 보니 분명한 건축 시기는 확실하지 않은가보다. 그 건축 시기야 어찌 되었든, 어떤 유래를 했든 간에 중요한 점 한 가지는 불국사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찰이라는 점이다.
절에 이르는 숲길도 아름답고, 절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보이는 절집의 모습이라든가, 절집으로 오르는 다리의 모양,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다보탑의 모양새는 참으로 아름답다(석가탑은 수리 중이었다). 무엇보다 주변 환경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모습은 화려하기조차 하다. 아마 어느 곳에든 카메라를 가져다 대도 엽서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경주를 봄날의 소풍처럼 돌아봤다.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 동안 산책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동선을 이용해서 옅은 햇빛과 바람과 봄꽃과 새소리와 가볍게 요기를 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산책로를 걷다 온 기분으로 가볍게 둘러봤다. 산책로에서 볼 수 있는 히스토리를 가진 옛것들은 그것들이 가진 오롯한 의미로서만이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기억물과 뒤섞이면서 동행한 사람과 담소 거리가 되어 주었는데 그런 얘기들은 때로는 허리를 굽히고 웃어 젖힐만한 폭소가 되기도 했고, 잊혔던 기억을 되돌려 주는 촉매제의 역할도 했으며, 과거 왕국의 과실들을 기억해내면서 지금의 정치, 사회 상황들에 대한 비판도 하게 했다. 그러면서 역사가 무거운 화석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과거의 사실을 지식처럼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가볍게 숨쉬며 공존하는 오늘의 일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승자의 기록은 지나간 일이 아니라 오늘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는 어떤 승자를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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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화

여행 한 스푼, 와인 한 방울. 즐거운 와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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