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지쳐가는 요즘. 마시기만 해도 힘이 펄펄 생기는 ‘약’과 같은 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술을 약처럼 즐긴다는 게 다소 이상적이고 어이없는 상상 같긴 하지만,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도 아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프렌치 패러독스’가 있다. 프랑스인들이 고지방 식이를 하고도 상대적으로 심장병에 덜 걸리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그 원인은 레드와인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시작은 마리아주였을지언정, 알게 모르게 심장병을 예방하는 약으로 레드와인을 즐기고 있던 셈이었던 거다.
[내의원]
술을 약으로써 즐겼던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알고 즐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의보감에는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내장에 독이 쌓여 수명이 짧아진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백약지장(百藥之長)이 되지만 지나치면 백독지장(百毒之長)이 된다”고 나와 있다. 백약지장이란 백 가지 약 가운데 으뜸이란 의미가 있는데, 이 맥락을 통해 과거에는 술을 약과 어느 정도는 같은 이치로 봤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과거 조선시대에는 약을 관리하던 내의원에서 술까지 관리했다고 한다.
[동의보감 속 술의 효능]
동의보감에는 술의 효능도 나와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술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장과 위를 탄탄하게 해주며 피부를 좋아지게 한다고 한다. 또한 술에 약재를 담그면 약재 성분이 더 잘 우러나고, 술이 혈관을 확장해 더욱 깊숙이 약효를 전달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약=술’이라는 인식 때문인진 몰라도 과거에 약이 되는 술로 취급하던 약주는 금주령을 피하기 좋은 핑곗거리가 됐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금주령을 내리곤 했다. 흉년과 금주령의 관계는 우리나라가 즐기던 술의 재료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우리가 즐기던 술의 주재료는 쌀이었다. 하지만 흉년이 들면 술을 빚을 쌀은커녕 밥으로 먹을 쌀도 부족했기에 나라에서는 곡물 관리를 하고자 금주령을 내리곤 했다.
하지만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사람들은 자연스레 술을 마실 궁리를 찾게 되는데, 몸이 아픈 사람이 약주로서 마시는 술은 허용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단속할 때면 약주라 속여 위기를 벗어나곤 했다.
[약이 되는 술]
실제 약효는 증명할 수 없으나, 약이 되는 술이란 목적으로 탄생한 전통주가 현재에도 꽤 존재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는 내국양조의 능이주와 송이주가 있다. 특히 내국양조에서 내국이란 앞서 언급한 ‘내의원’에서 가져온 명칭이며, 내국양조 또한 술과 약을 같은 이치로 바라보며 몸에 이로운 술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충남 당진에서 만들고 있는 면천 두견주도 대표적인 약주다.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이 두견주를 마시고 온갖 약을 써도 고쳐지지 않았던 병에 나았다는 설이 있다.
이 외에도 몸에 좋은 약재를 사용한 홍삼명주, 국화주, 인삼주 등 모두 약이 되는 술이란 의미로 약주라 할 수 있겠다. 무조건적으로 술을 권하는 건 아니지만,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 전통주는 태초에 제로 슈가이기 때문에 헬시 플레저의 문화와도 잘 맞다.
뱀술, 벌술 모두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곗거리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꼭 몸에 좋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이젠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동의보감에서도 적당히 마시는 술은 백약지장이라고 했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의보감 속 적당히 마시는 술이란 주 2회, 소주 2잔 정도의 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