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오늘부터 ‘스마트 오더’ 방식의 주류 통신 판매가 가능하다. 국세청이 발표한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모바일을 통해 주문・결제한 상품을 매장에 방문하여 수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신 판매는 그동안 미성년자 보호 및 지나친 음주에 따른 국민의 건강에 대한 이슈로 주류업계에는 제한된 서비스였다. 이제 그 좁디좁은 문을 통해 한 가닥의 빛이 들어오게 되었다.
새 개정안을 통해 온라인 주문이 가능한 것 자체는 긍정적인 흐름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주류 통신 판매의 핵심이 빠져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대형유통사 및 대기업만을 위한 편파적인 정책이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세법 개정의 혜택을 받으며 한 단계 도약을 꿈꿨던 수제 맥주 시장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며 다시 생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홍보 및 판매에 있어 중요한 축제와 행사가 모두 취소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으로 외식과 모임이 사라졌다. 홈술이 크게 증가하면서 맥주가 반사이익을 누린다고는 하지만, 이 혜택을 받는 업체는 아주 소수일 뿐, 대부분의 영세한 수제 맥주 업체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맥주 시장은 편의점과 마트 등 ‘오프-트레이드’와 레스토랑과 펍으로 대표되는 ‘온-트레이드’의 유통 비율이 ‘4:6’에서 현재 대략 ‘9:1’로 변화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온-트레이드에서 생맥주로 유통되는 수제 맥주는 판매 채널이 없어졌다고 봐도 된다. 오프-트레이드에 유통하기 위해서는 병이나 캔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생산 여력이 되는 업체는 수제 맥주 면허를 갖고 있는 110여 개의 업체 중 단 6곳뿐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제품 생산이 가능하더라도 대형 유통회사에 입점하기란 쉽지 않다. 김태경 대표는 “오프-트레이드의 강자로 성장한 편의점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템은 한정되어 있고, 대기업 맥주와 수입 맥주를 빼면 수제 맥주가 진열될 자리는 많아야 10개 정도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시장이 커지려면 품목이 다양해져야 하는데, 지금의 오프-트레이드 중심의 시장에서는 불가능하다. 지역 양조장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라며, 온라인 판매 허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번 개정안이 발표되고 수입 와인 시장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 역시 일부 기업만이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의견이 많다. 와인 수입사를 운영하는 한 대표는 “결국 거대한 물류를 움직이는 곳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자체 유통 채널을 가지거나 수입 물량이 많은 대기업 수입사가 안정적이고 많은 물량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더 많은 기회를 가지고 큰 혜택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주류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의 최대 수혜자가 거대 유통업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유통업체들은 주류 예약 및 할인 판매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와인 당일 예약 서비스를 시작한 한 업체의 경우, 해당 서비스 도입 후 한 달 만에 355%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금과 인력을 가진 곳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와인샵을 운영하는 관계자는 “대형마트·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중심으로 스마트 오더를 통한 주류 판매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많은 매장을 갖춘 대형 회사에는 이번 개정안 시행이 기쁜 소식이겠지만, 작은 규모의 와인샵은 경쟁에서 더욱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온라인 결제를 받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에, 우리와 같은 소규모 샵은 생존하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걱정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스마트 오더’ 방식의 주류 통신 판매를 두고 실효성을 제기하는 이들은 온라인 결제를 넘어 배송까지 가능한 온라인 판매를 주장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온라인 주류 판매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지역별로 상이한 주류법을 규정하여 시행해오고 있으나, 50개 주 가운데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유타 주를 제외하고는 온라인 주류 판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온라인 주류 판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중국 외에도 캐나다, 일본 등에서도 온라인 주류 쇼핑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통신 판매는 더 권장되며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국내에서는 정해진 규정에 따른 전통주에 한해 온라인 판매 및 배송이 가능하다. 전통주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로, 2017년 시행 당시 전통주에만 부여되는 혜택에 차별 논란이 제기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와인샵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온라인 판매 허용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미 많은 선진국들은 온라인 판매 및 배송을 허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소비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직구로 해외에서 주류를 구매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인터넷 또는 모바일로 완벽하게 성인인증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판매를 규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전통주가 가능하다면, 다른 주류도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편의와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본 개정안의 취지에 부합될 수 있도록 전면적인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