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는 쌀이나 보리, 밀 등의 원료를 ‘누룩’과 섞어 발효시킨 뒤 불순물을 걸러내는 우리의 전통 곡주다. 곡식을 발효시켜 담갔다는 점에서 필자 주변의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밥 대신 마시는 주식과 같은 것이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한국인의 ‘주류(酒類)’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상품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애주가들의 공통된 막걸리 양조 과정에 대한 의견은 ‘누룩’과 함께 빚는 술은 제대로 된 발효를 위해 다른 알코올의 숙성 기간보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누룩은 보통의 발효 속성제와 비교해 가격적인 측면에서 고가이기도 하지만, 그 맛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랜 기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세월이 빚어낸 제대로 된 ‘막걸리’에는 만드는 이의 정성이 첨가될 수밖에 없으니, 밥 대신 주식으로 마셔도 탈이 없다는 것이 애주가들의 일관된 논리다. 필자도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는 막걸리 애호가 중 한 명이다.
인류가 ‘곡주’를 즐긴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들에게 ‘곡주’는 오랜 기간 함께해온 먹거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곡주’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이후 중국으로부터 전래됐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전해진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한반도의 굴곡진 역사와 함께했으리라는 것.
‘조선양조사(朝鮮釀造史)’에 최초로 등장하는 막걸리에 대한 기록은 ‘중국에서 전래된 막걸리는 《조선양조사》에 중국에서 전래된 막걸리가 대동강(大同江)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온 뒤, 이 일대에서 가장 먼저 빚어내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한반도 구석구석에 전파되어 우리 민족의 고유주(固有酒)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전해진다. 그 진위를 가리기 어렵지만, 막걸리라는 명칭 외에도 탁주, 농주, 회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곡주에 대한 관심은 수 천 년이 흐른 현재도 여전히 ‘뜨겁다’.
특히 최근에는 ‘막걸리’의 본산지로 알려진 중국에서 오히려 우리 식으로 제조된 막걸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 국경선과 인접한 동북 3성의 연변 자치구 조선족들이 주로 즐겨 마신 막걸리가 바로 한국 전통 방식으로 양조 된 우리식 막걸리다. 연변 일대의 조선족과 헤이룽장성(黑龙江) 일대의 한인 후손들이 옛 우리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만든 막걸리는 지역에 따라 ‘탁주’ 또는 ‘곡주’, ‘곡차’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가장 초기 이 지역에 막걸리 문화를 전래한 이들은 중국인이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제조 원료가 변화했는데, 귀한 입쌀로 빚는 그들의 막걸리 주조 방식 대신, 달달한 맛을 품은 노란 옥수수와 조, 수수, 기장 등을 주재료로 한 누룩으로 빚은 것이 연변식(式) 막걸리의 주요 특징이다.
주원료를 기존의 ‘입쌀’에서 ‘옥수수’로 바꿔 담갔으니, 그 맛에 변화가 온 것은 당연지사. 한 국자 첫맛에서 느낄 수 있는 ‘연변미주(延边米酒)’는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 등이 오묘하게 담겨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그 사이사이에 시원한 감칠맛이 더해져서 갈증을 풀어주기에 제격이다.
특히 곡주 특유의 묵직한 알코올의 향까지 두 배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옥수수를 주요 원료로 빚은 ‘연변 미주’의 특성상 입안에서 톡 터지는 탄산의 향까지 배가 된다는 점은 현지 젊은 세대 고객들의 발길을 이어지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는 목소리다. 도수는 6도. 반주로 즐기기에 최적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현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으면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최근에는 K-pop과 한국에 대한 관심이 중국 내에서 영업 중인 한국 간판을 단 식당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케이팝과 한국 대중문화 인기의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곳은 단연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한식 레스토랑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버금가는 인기 고공행진을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곳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연변식(式) 식당이다.
우리말로 표기된 간판과 메뉴판이 눈에 띄는 이곳에 중국 10~30대 젊은 고객들이 열광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효자 상품은 단연 달달한 맛의 ‘막걸리’다. 일명 ‘연변미주(延边米酒)’ 또는 ‘연길막걸리’ 등으로 불리는 조선족 특색의 전통 막걸리다. 쌀을 주요 원료로 담그는 현지식 막걸리와 비교해 옥수수를 주원료로 담가 고소한 맛이 배가 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쌀과 옥수수를 적당히 조합해 빚은 옥수수 막걸리는 이름은 ‘곡주’라는 의미에서 기존의 ‘미주’라는 명칭을 그대로 갖고 있지만, 사실상 ‘옥수수’ 함량이 높다는 점에서 노란 옥수수 빛깔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주문한 ‘연변미주’는 한국식 양은 주전자와 양은 사발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다만 따로 직원에게 요청 시 유리 호리병 또는 커다란 대접에 국자로 떠서 마시는 형식으로 주문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미주’의 특징은 따뜻하게 데워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맥주, 양주, 고량주 등 그것이 무엇이든 뜨겁게 데워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술 풍습상 ‘미주’ 역시 적당히 데워진 냄비 속에 담겨 고객의 식탁 위에 진열되는 셈이다. 시원한 막걸리에만 익숙했던 한국인의 입맛에는 다소 낯선 풍경이지만, 마치 구수한 ‘곡차’ 한 잔의 향을 즐길 때처럼 옥수수의 고소한 맛이 배가 된 따뜻한 미주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으니, 어려워할 이유가 없다.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또 다른 막걸리는 찹쌀을 주원료로 빚은 ‘누오미미주(糯米米酒)’다. 이름 그대로 ‘찹쌀막걸리’. 옥수수를 주원료로 한 ‘연변미주’와의 차이점은 쌀과 소맥분의 비율이 높게 제조됐다는 점에서 뒷맛의 묵직함을 느낄 수 있다. 가벼운 맛 대신 무거운 무게감을 즐기는 애주가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제품이다. 또, 찹쌀 고유의 달달한 향을 코끝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는 정도가 차이점이다.
두 가지 막걸리 모두 이 집의 대표 ‘추천 상품’이다. 여행 중에 만난 현지인과 함께 찾아간 식당에서 ‘연변 특산 술 하나 추천해달라’는 필자의 부탁에 식당 매니저가 망설임 없이 적극 추천한 제품도 이 두 가지다. 두 제품 모두 한 주전자당 35위안(약 7천 원)에 맛볼 수 있다. 1인이 마시기에는 조금 많은 양이지만, 2인이 함께 찾아가 조선족 특산 먹거리와 ‘반주’로 즐기기에 가장 적당하다.
혹, 그 양이 많다면 포장도 대환영이다. 포장 문화가 발달한 중국에서 식사 후 남은 술을 병에 담아 집에 가져가는 고객은 그야말로 ‘대환영’이기 때문. ‘커이다빠오마?(可以打包吗, 포장 가능한가요?)‘라고 직원에게 문의하면 일회용 술병에 담아 들고 가기 편하게 포장해준다. 같이 여행 중인 지인이 있다면, 여행지에서의 따뜻한 막걸리 한 잔 추억을 만들기에 좋고, 나 홀로 여행객이라면 반주와 함께 즐긴 후 남은 막걸리는 포장해 호텔에서 느긋하게 맛보기에 좋은 이유다.
* 연변식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지역마다 수백여 곳에 달한다. 필자가 찾은 곳은 중국 후난성(湖南) 창사시(长沙) 소재의 ‘언니 오두막 막걸리(嘉岗小木屋米酒店)’다. 대형 실내 쇼핑몰 내에 입점해 있어서, 쇼핑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