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세 종류의 술은 그 본연의 맛을 지키고자 이름 앞에 생(生)을 붙여 생산하는 생막걸리와 나마자케(나마사케, 生酒), 그리고 생맥주입니다.
이들 술의 공통점은 바로 ‘인위적인 공정의 삭제’입니다. 현대 기술을 기반으로 술이 주조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보존을 위한 처리 과정을 건너뛰는 것이지요. 덕분에 대중적으로 소비되던 술과는 조금 다른 맛이 나지만, 이를 좋아하고 즐기는 소비자들도 꽤 많은 덕에 꾸준히 그 입지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생막걸리
막걸리의 어원은 ‘막(방금) 거른 술’ 혹은 ‘마구(거칠게) 거른 술’로 추정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쌀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술에서 맑은 청주를 걷어내고 남은 지게미를 이용해 만든 술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보통의 막걸리는 병입을 하는 중간에 열처리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은 각종 잡균과 효모균, 그리고 초산균까지 살균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초산균은 오늘 기사에서 등장하는 가장 큰 악당으로, 술을 식초처럼 만들어 버리는 주범이거든요. 아세토박테르(acetobacter)라고도 하는 이 균은 알코올과 만나 강한 산성의 맛을 만들어 냅니다. 본디 각종 식초를 만들 때 사용되는 균이기도 하지만, 술을 오랜 기간 보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균이죠.
생막걸리는 바로 이 균을 죽이는 열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는 막걸리를 말합니다. 덕분에 누룩에서 나온 효모균이 아직 살아있어, 우리의 입으로 도달할 때까지도 어느 정도의 발효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죠. 덕분에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로 잔잔한 탄산과 청량함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문제는 초산균 역시도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유통되는 기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금세 먹지 못할 만큼 쉬어 버린다는 점입니다. 물론 초산균이 활동을 못 하도록 산소를 아예 차단하는 밀폐 마개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계속해서 활동하는 효모균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못하면 병이 터져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막걸리 대부분의 유통기한이 길지 않습니다. 제조일로부터 열흘을 넘어가지 못하는 것들도 많고, 길어야 30일 남짓이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생막걸리가 가지는 고유한 톡 쏘는 맛과 신선함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여전히 많은 막걸리 브랜드에서 생막걸리가 출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나마자케(나마사케, 生酒)
이번에도 ‘생(生)’이 붙었습니다. 생사케, 일본의 술입니다. 사케는 우리나라의 청주와 비슷하지만, 발효시키는 누룩의 종류가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막걸리는 보통 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지만, 청주는 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쌀누룩과 쌀을 발효시킨 술의 맑은 부분을 떠내면 그것이 바로 사케입니다. 보통은 병입 과정에서 사케는 ‘히이레’라고 불리는 총 2번의 열처리 과정을 거칩니다. 막걸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균을 죽여 그 보존 기간을 길게 하려는 목적이죠.
나마자케는 이 열처리 과정을 아예 생략한 사케를 말합니다. 참고로 열처리를 한 번만 거친 것은 또 ‘나마즈메’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기도 합니다. 덕분에 가볍고, 청초한 맛과 산뜻한 목 넘김 등의 특징을 지니게 되죠. 동시에 유통기한 또한 아주 짧고, 보관 중에도 빛과 열에 많이 노출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 줘야 하는 아주 예민한 술입니다.
사케는 보통 제대로 된 술의 맛을 보장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상미 기한’을 두는데, 일반적으로는 제조 후 1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마자케의 경우는 이 기한이 3개월 정도로 짧은 데다, 냉장으로 유통되어야 하는 까다로움 때문에 국내에서는 생각보다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편입니다.
생맥주
생맥주는 한국인들의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생(生)’ 술일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보편적으로 접하는 생맥주는 진정한 ‘생’이 아닙니다. 앞의 두 술과 마찬가지로 생맥주란 보통 열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마시게 되는 맥주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농촌 진흥청에서는 ‘가열 살균되지 않은 맥주로서 향미는 좋지만, 효모가 살아 있어 보존성이 낮다’고 정의하고 있죠.
그러나 사실상 요즈음 우리가 가게에서 흔히 접하는 생맥주는 여타 종류의 맥주들과 같은 생산 과정을 거친 후, 병입만 생맥주 통에 되어 유통되는 생맥주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물론 일반 병맥주와는 달리 유통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생맥주 통에서 맥주를 따르는 과정에서 액화 탄산가스가 일부가 첨가되기 때문에 분명 그 신선도와 맛에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는 아니죠.
이러한 생맥주의 진실도 모두 살균 처리되지 않은 술은 그 유통과정이 어렵다는 문제점에서 기인합니다. 여기서도 또 오늘의 악당, 맥주도 식초로 만들어 버리는 초산균이 제일 문제입니다. 물론 이 초산균을 이용해서 만드는 아주 신 람빅 맥주도 있긴 하지만, 이는 특별한 공정과 2-3년의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오늘은 열외로 두겠습니다. 이 초산균으로부터 생맥주를 지켜내려면, 유통 전 과정에서 냉장이 보장되는 시설이 필요할뿐더러 심지어 그 안에서도 술이 변질될 수 있다는 위험이 너무 큽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를 만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규모로 양조 되어 직접 판매하는 맥주들이 있기 때문이죠. 2000년대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가 신설되며 ‘하우스 비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고, 2014년 소규모로 제조된 맥주의 유통이 허용된 후에는 ‘크래프트 비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맥주들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직접 양조하기 때문에 양조 직후 케그 통에 담긴 채로 마시거나, 혹은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콜드 체인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효모가 살아 있는 신선한 상태로 마실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렇게 각자의 특색으로 무장한, 오리지널을 지키고자 했던 술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제법 부는 가을밤, 여러분들을 가장 사로잡는 생(生) 주종은 무엇인가요? 지난 추석 때의 고소한 전을 떠올리면 톡 쏘는 생막걸리가 좋겠고, 시원한 국물과 함께라면 청량한 나마자케도 좋겠네요. 괜히 밤바람을 맞고 싶은 날이면 근처의 크래프트 비어 펍으로 발길을 돌려봐도 좋겠습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 여러분의 저녁을 신선하게 만들어줄 술들인 것은 분명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