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 밸리(Napa Valley)는 미국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와인 수집가는 물론이고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값비싼 와인이 몰려 있는 곳이다. “나파”는 마치 브랜드명처럼 와인 레이블에 붙여지면 품질은 좋고 비쌀 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우리에게 낯익은 미국 와인 중 나파 밸리 지역 와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 와인 산지를 지도에서 보면 나파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거대한 미국 땅에서 와인 산지를 나파로만 한정할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카운티 내 나파 밸리 말고도 캘리포니아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와인 산지가 많은데, 그중 나파에 근접한 소노마(Sonoma), 캘리포니아 센트럴 코스트(Central Coast) 주변 산타 크루즈 마운틴(Santa Cruz Mountain)과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를 비롯해 워싱턴(Washington) 그리고 오리건(Oregon)을 알아보자!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Sonoma)는 나파와 인접한 와인 산지로, 나파처럼 엄청난 유명세와 화려함으로 무장한 곳은 아니지만 다양성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다. 해안가는 차가운 태평양 영향을 받아 서늘한 편이고, 내륙 또한 러시안 리버를 비롯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영향을 받는다. 남서쪽은 서늘하고 북동쪽은 따뜻하거나 덥기에 다양한 품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품종이다.
소노마에는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 미국 포도 지정 재배지역)가 18개 있는데, AVA 몇 개를 알아 두면 미국 와인을 고를 때 유용하다. 소노마 코스트(Sonoma Coast) AVA는 소노마 지역의 대표적인 AVA로, 앞서 말했듯이 태평양이나 러시안 리버의 영향으로 서늘한 기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품종이 지배적이고 퀄리티도 좋다. 그중, 소노마 코스트 내 러시안 리버 밸리(Russian River Valley) AVA에는 소노마의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키슬러 빈야드(Kistler Vineyards)와 플라워스 빈야드 앤 와이너리(Flowers Vineyards & Winery)가 소노마의 대표적인 와이너리다.
소노마 밸리(Sonoma Valley) AVA는 소노마 코스트보다 따뜻한 기후를 보이기에 소비뇽 블랑이나 메를로 품종이 더 잘 자란다. 소노마 밸리 AVA 내 소노마 마운틴(Sonoma Mountain) AVA는 오후에 직사광선을 받지 않기에 무더운 날씨를 피할 수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이 자라기에 좋다.
요즘 소노마의 인기는 나파 못지않아 가격이 오르는 추세지만(요즘 가격 안 오르는 와인 있나요?), 매력적인 미국의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맛볼 수 있으니 강추! 1976년에 열린 파리의 심판에서 화이트 와인 부문 1등을 거머쥔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샤르도네 70% 이상이 소노마에서 생산한 거라고 하니 은근 믿음이 간다.
두 번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센트럴 코스트(Central Coast) AVA에는 속하지 않지만 그 주변에 있는 산타 크루즈 마운틴(Santa Cruz Mountain) AVA와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 지역이다. 산타 크루즈 마운틴 AVA는 1981년에 승인된 포도 지정 재배지역으로, 비교적 고도가 높은 곳에 포도밭이 많다. 유수의 와이너리는 이곳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해 와인을 양조하는데 샤르도네, 카베르네 소비뇽 그리고 피노 누아가 대표적인 품종이다. 유명한 와이너리로는 릿지 빈야드(Ridge Vineyards) 등이 있으며 산타 크루즈 마운틴의 개성이 잘 드러난 와인을 만든다.
산타 바바라는 클래식 와인 영화인 사이드웨이(Sideways)에 등장하는 와인 산지로, 주인공인 마일즈(Miles)가 피노 누아 품종을 극찬하면서 산타 바바라 지역이 확 뜨기도 했다. 여하튼 이곳은 태평양의 서늘한 바람이 그대로 닿는 곳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스타일 와인 생산이 가능하며, 주 품종은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다. 산타 바바라 카운티에는 AVA가 7개 있으며, 그중 산타 리타 힐즈(Sta. Rita Hills) AVA는 우아한 피노 누아로 유명하니 눈에 띄면 마셔보는 걸로.
이번에는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워싱턴(Washington) 주로 가보자.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포도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주인 워싱턴은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Range)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다. 태평양의 영향을 받는 서쪽은 습도가 높아 눈이나 비가 많이 오고, 포도를 재배하기는 좋지 않은 환경이다. 반면에 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면 대륙성 기후 지역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지만, 습도가 낮고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래도 강이 주변에 있어서 물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워싱턴은 AVA가 16개 있으며(대부분 캐스케이드 산맥 동쪽에 위치) 그중 컬럼비아 밸리(Columbia Valley) AVA에 주목해보자.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AVA이기에 ‘여기는 이래!’라고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매력적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그리고 리슬링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포도 95% 이상이 워싱턴에서 재배한 것이어야 와인에 워싱턴 표기를 할 수 있기에, 워싱턴 주만의 특색을 즐기려면 워싱턴 혹은 해당 AVA(해당 AVA에서 재배한 포도 85% 그리고 워싱턴 주 내에서 재배한 포도 95%를 충족해야만 표기 가능)를 표시한 와인을 골라보자. 와인 비평가 로버트 파커가 극찬한 퀼세다 크릭(Quilceda Creek)이나 합리적인 가격대의 샤토 생 미셸(Chateau Ste. Michelle)이 워싱턴 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마지막 오리건(Oregon) 주는 워싱턴 주와 캘리포니아 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에 이어 세 번째로 포도를 많이 재배하는데, 주로 와인 양조에 포도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뉴욕보다 와인 생산량은 적은데, 그 이유는 뉴욕은 포도를 뉴욕 외 지역에서도 조달해 와인을 양조하기 때문이다. 오리건은 워싱턴보다도 더 엄격한 와인 레이블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오리건 주를 레이블에 표기하려면 100% 오리건에서 수확한 포도여야 하며, AVA를 표기하려면 100% 오리건에서 수확하면서 해당 AVA에서 수확한 포도가 95% 이상이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오리건 와인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오리건의 윌라멧 밸리(Willamette Valley) AVA는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서늘한 기후 조건에 겨울비가 일찍 내리는 편이라서 충분히 익은 포도를 딸 수 있는지가 관건인 곳이다. 이곳은 피노 누아와 피노 그리(Pinot Gris) 품종을 주로 생산하는데, 오리건의 기후 조건이 피노 누아에 적합해서 그런지 부르고뉴 생산자인 조셉 드루앵(Joseph Drouhin)도 오리건에 도멘을 두고 있다.
오늘은 나파 말고 미국 내 다른 지역의 와인을 골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