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기가 좋아하는 맥주 브랜드의 잔을 소장하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브랜드에 따라서 맥주잔을 수집해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보다 과학적이거나 시각적으로 즐기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코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맛이 잘 안 느껴지는 것처럼, 사람은 혀에 있는 미뢰뿐만 아니라 코의 후각신경을 이용해서도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맥주를 캔이나 병으로 바로 마시는 것보다 잔에 따라 먹을 때 잔 위로 향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잔에 따르는 편이 좋습니다.
이러한 효과를 가장 잘 활용한 것 중 익숙한 것은 호가든 잔입니다. 팔각형의 넓은 면적의 잔은 마시기 전 향을 맡기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잔의 두께가 두꺼워 손의 체온이 잘 전달되지 않고 빛의 굴절로 인해 양을 많아 보이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맥주잔을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필스너나 라거 맥주에 사용되는 ‘테이퍼드 잔(Tapered Glass)’ 입니다. 이 잔은 좁은 바디를 가졌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테이퍼드 핏’의 청바지와 모습이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탄산 감이 강한 라거 맥주의 탄산 기포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도록 긴 높이를 가진 것이 특징인 이 잔은 필스너나 일반 라거 맥주에 사용되는 편입니다. 물론 꼭 이 잔에 마셔야만 더 맛있게 느껴지거나 하진 않으니 꼭 이 잔을 고수해서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잔은 튤립 잔인데, 특히 벨기에 맥주에서 많이 발달한 형태의 잔입니다. 벨기에는 다양한 맥주가 있는 만큼 그에 따라 다양한 잔 또한 생산하는 국가인데,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이런 튤립 형태의 잔입니다.
둥글고 넓은 바디에서 향을 한 번 모았다가 튤립처럼 넓어진 림 부분을 통해 내보내기 때문에 더욱 향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튤립 모양이기 때문에 다른 모양의 잔에 비해 향을 더 잘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와인잔으로 많이 알려진 ‘슈피겔라우’에서 만든 맥주잔도 있습니다. 크게 아메리칸 위트, 스타우트, IPA로 나누어지는데, 부담스러운 가격대를 형성하지도 않고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소장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이 잔들은 와인잔과 동일한 고급 크리스탈 유리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맥주 고유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잔을 개발하여 맥주 고유의 특징을 잘 끌어냈습니다. 와인의 노하우를 맥주잔에 적용하였으니, 기존의 맥주잔보다는 고급스러움이 묻어나옵니다.
맥주를 마실 때는 저도수에서 고도수로 넘어가거나 맛이 약한 편에서 진한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추천하는데, 이런 고도수에도 적절한 맥주잔이 있습니다. 바로 ‘스니프터(Snifter)’라는 잔으로, 작은 고블릿 형태를 가진 이 잔은 국내에서는 주로 ‘샘플러(Sampler)’에 많이 사용됩니다.
이 잔은 작은 용량 덕분에 이러한 고도수 맥주에 적절히 사용될 뿐만 아니라 위스키에도 많이 사용됩니다. 집에서 술을 자주 즐기는 이라면 여러 사용 목적으로 구매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위에 설명된 잔 외에도 적재에 용이하고 잔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맥주잔, ‘노닉잔(Nonic Glass)’, 쾰쉬(Kolsch) 전용 잔으로 사용되는 ‘Stange Glass’ 등 다양한 잔들이 있습니다. 만약 특이하고 예쁜 잔을 원한다면, ‘트라피스트 맥주(Trappist Beer)’ 전용 잔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러 가지 잔에 대해 설명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맥주를 맞춰진 잔에 꼭 따라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취미 삼아 맥주잔을 모으고 비교하면서 마신다면 또 다른 맥주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