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라는 단어는 휴식을 의미하는 라틴어 ‘Bever’에서 파생됐는데, 음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인간의 갈증을 해소하고 에너지를 주는 것이 주요했다. 하지만 현존하는 다채로운 음료 가운데 유독 그 이상의 효능을 불러오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것은 단연 ‘알코올음료’일 것이다.
치명적이기에 더 매력적인 ‘알코올음료’에 대한 소비는 코로나19로 긴 장막의 시기를 보내야 했던 최근 몇 년 동안 전에 없이 이례적인 현상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시기, 전 세계인들은 팬데믹이라는 피하기 힘든 시기를 조금 더 슬기롭게 보내기 위해서 자신만의 작은 ‘사치’를 허락하려는 독특한 현상을 보였던 것. 특히 팬데믹 기간 중 전 세계 수많은 알코올음료 애호가 중에는 집에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정보를 공유하는 등 새로운 패턴의 ‘홈술족’이 되기를 스스로 자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홈술족들이 보인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펜데믹 이전보다 더 고가의 고급 알코올음료을 선뜻 구매, 소비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 꼽힌다. 실내를 떠나지 못한 채 장시간 좁은 집 안을 주요 무대로 생활해야 했던 고단한 상황 속에서 보다 더 향기롭고 고급스러운 알코올음료로 스스로를 보상하려는 듯 고가의 술에 대한 소비력이 급증했던 셈이다.
그런데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기나긴 팬데믹도 점차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분위기다. 코로나19 봉쇄라는 장막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이전과 같은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는 국가가 크게 늘어났을 정도로 분위기는 완화됐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전 세계 홈술족의 입맛을 길들인 고급 와인과 각종 고가의 알코올음료에 대한 수요는 예상외로 꾸준하면서도 강력한 소비력을 과시 중이라는 점이 화제다.
고가의 와인을 소비하며 스스로에 대한 삶의 만족도를 높여가는 현대인들의 패턴이 일상화된 분위기다. 실제로 최근 영국의 시장조사업체인 ‘3GEM’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20년 3월 영국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봉쇄가 있은 직후 20세 이상의 영국인 중 무려 4분의 3이 이전보다 더 고가의 고급 와인을 소비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봉쇄로 일시 중단된 경제, 사회, 산업 전반의 침체된 분위기와 상반되게 오히려 이 시기 홈술족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작은 사치로 기대 이상의 큰 만족을 얻기 위한 목적의 고급 와인에 대한 급격한 소비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 시장 조사 결과, 영국에 소재한 다수의 와인 소매업체와 상인, 경매 업체 등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오히려 강력한 소비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500명 중 무려 86%는 팬데믹이 종료, 이전만큼 외부 활동이 전면 허용되는 상황 속에도 고가의 와인 소비를 꾸준하게 이어 나가고 있으며, 고급 와인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면서 느낄 수 있는 충분한 만족감 등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이 이미 삶의 중심에 자리 잡은 탓에 이를 바꿀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또, 응답자의 약 27%는 ‘취하기 위한 것’의 단순한 목적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삶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고급 와인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보르도 와인 거래 기업 보르도 인덱스의 투자 총책임자인 매튜 오코널 이사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했던 팬데믹이 오히려 다수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고급 와인을 접하고, 소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면서 “다수의 홈술족들은 팬데믹 이전보다 더 좋은 알코올음료를 구매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충족시키려는 열망이 매우 크다. 그들의 열망에 시장이 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현상은 비단 영국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라면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다수의 아시아 국가와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조사는 홈술족의 등장과 이들이 소비하는 고급 와인 소비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장기적인 새 트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이와 관련해 지난 7~8월에 걸쳐 시장조사 전문업체 CGA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이 해제된 이후에도 소비자들은 이전과 동일한 수준에서 가정에서 손님을 맞고, 가족과 가까운 지인 또는 자신을 위한 고급 와인 소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CGA의 유럽, 중동 아프리카 사업부 이사인 칼 체셀은 “팬데믹이 종료된 직후 영국인의 다수가 외부에서의 소비 활동을 매우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면서도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상당수가 외부에서의 식사와 음주 문화를 선호하게 된 경향이 증가했고, 그 대신 배달과 테이크아웃의 판매량은 다소 둔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한 번 고가의 고급 와인에 입맛이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쉽게 저가의 알코올음료로 갈아타기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더욱이 이전에 없었던 홈술족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고급술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앞으로 더 발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분위기를 타고 이탈리아와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는 기존에 없던 고가 라인의 와인 상품을 출시했으나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파는’ 상황에 이를 정도로 주문량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개된 이탈리아와 미국의 와인 판매량과 관련해 2019년 이전 대비 2020년 이후에 고급 와인의 소비량이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시기 1병당 4천 달러 이상의 고가의 최상위급 와인들은 지난 팬데믹 시기 동안 최고의 판매 성적을 거뒀다.
영국에 본사를 둔 보르도 인덱스 관계자들은 “와이너리 저장고를 가득 메웠던 고가의 빈티지 와인들이 공급 물량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빠르게 팔려나가고 있다”면서 “그 덕분에 가격 역시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가격 상승은 아랑곳하지 않는 꾸준한 고객들의 수요 탓에 물량 공급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