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청나라 말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산둥성 옌타이(烟台市)를 중심으로 수입산 포도나무와 토종 포도를 혼용한 중국 최초의 와인 회사를 설립하는데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산둥 반도 북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인 옌타이는 지금도 100년 전 설립된 와인저장고가 있는 ‘장유 술 문화 박물관’(Changyu Wine Museum)이 있을 정도로 중국 와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와인 생산 지역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한 뒤 누구나 중국 와인의 역사와 생산 과정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시음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어서 중국 국내 여행객들의 꾸준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나라 말기를 시작으로 한동안 중국에서는 와인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이후 문화의 말살이라고 불리는 문화대혁명이 종료된 이후에서야 중국 국내 와인 산업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됐을 정도였죠.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시작된 중국 와인 산업을 살리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도 중국 정부와 일부 국영 기업의 합작 형식으로 한 카베르네 소비뇽을 본딴 프랑스산 포도나무를 중국에 수입해 해외 유명 와인의 맛을 모방하려는 행보의 수준에 그쳤다는 아쉬운 평가가 주류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중국 와인 산업의 규모나 형식은 국가가 주도하는 천편일률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 결과 오히려 수년에 걸쳐 실험됐던 해외 유명 포도나무 이식 시도는 거의 실패에 가까운 수준으로 처참한 결과를 맞았습니다. 중국의 기후나 풍토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해외 유명 포도 묘목을 가져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데만 혈안이 됐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피노 누아와 같은 얇은 포도 껍질을 가진 묘목은 중국 기후나 풍토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이 사실을 확인한 뒤에서야 중국의 국내 와인 산업 몸집 불리기에 대한 욕심은 점차 사라지고 기후와 풍토를 고려한 적절한 수준의 해외 협업과 시도를 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최근에는 중국 국내 와인 시장의 규모를 겨냥한 전 세계 유명 와이너리의 대규모 투자 유치 성공까지 이어지면서 이제는 중국 시장이 머지않은 시기에 글로벌 와인 시장을 주도하는 새로운 핵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뜨거워졌었죠.
◇ 또다시 지펴진 ‘국가 주도’ 양상, 이대로 괜찮나?
하지만 지난 2012년 시진핑 국가 주석이 새로 집권하면서 이런 상황은 크게 반전됐다는 분석이 주요합니다. 매년 초대형 와이너리에 속한 해외 유명 와인 전문가를 초빙해 대대적인 투자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려 했던 과거 중국의 모습과는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얼마 전부터는 강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현지 상황에 맞물려 시 주석의 고위 공직자를 겨냥한 반부패 캠페인이 강하게 진행되며 이전과는 다른 와인 산업의 저성장이 한동안 점쳐졌던 것이죠.
실제로 베이징에 본사를 둔 한 와인 컨설턴트 소속 익명의 와인 전문가는 “이전까지는 지방 정부나 국영 기업에서 주로 해외 유명 와이너리 전문가를 현지에 유치해 각종 행사를 주도 했고, 글로벌 와인 시장에서 중국 수입 규모가 눈에 띄게 증가할 정도로 지방 정부나 국영 기업을 필두로 한 대규모 수입이 일반적이었다”면서 “이런 식으로 중국은 와인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에 큰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시 주석의 집권 이후 지방 정부와 국영 기업을 필두로 한 해외 고급 와인 수입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전에는 개인 고객을 유치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해외 유명 와인 업체들은 이제 각개전투로 중국인 개인들을 상대로 한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시 주석이 집권한 후에는 고위 공직자나 정부를 대상으로 했던 와인 판매가 대부분 무산됐고, 개인 구매자를 찾아 판매하는 새로운 개척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것이죠.
◇ 중국 국내 와인 수출 성적 ‘저조’
그렇다면 중국 국내에서 생산돼 해외로 팔려나가는 수출 물량의 수준은 얼마나 될까요? 최근 중국 국내 한 미디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와인 생산업체들의 국내산 와인 수출 성적도 대부분 저조한 편이라는 분석입니다. 지난 2016년 약 1,000만 리터의 와인을 수출했던 것과 비교해 지난 2022년 300만 리터로 오히려 그 양이 급감했고, 그나마 대부분의 수출 대상 지역이 홍콩과 싱가포르에 그쳤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는 평가입니다.
대개 아무리 작은 규모의 소형 와이너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처음 설립하고 꾸준하게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며 적절한 수준 이상의 맛을 구현하는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대형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더욱이 와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급 포도 묘목을 키우고, 재배하는 준비 단계까지 감안한다면 와인이 유리병에 담겨 제품으로 완성돼 소비자의 손에 닿기까지는 매우 긴 인고의 시간과 투자가 있어야 하기에 와인 산업은 자본 집약적 사업으로 분류됩니다.
더구나 무려 14억 명에 달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 성인의 단 2.5%만 한 달 평균 한 두 번 정도의 수입산 와인을 음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최근 중국 내 수입 와인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는 해외 유명 와인을 대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관심과 현지 정부의 각종 제한 조치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암울한 예측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의 와인 생산량은 지난 10년 사이 꾸준히 감소해 오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그 생산량에 큰 차질을 입고 지난 2022년에는 전년 대비 무려 2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산 포도 품종을 가져와 건강한 포도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가장 좋은 지중해성 기후는 중국에 매우 부족합니다. 중국 대부분의 지역이 혹독한 겨울을 감내해야 하는데 이때 포도나무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의 와인 생산가 대비 약 20~30% 이상의 비용이 추가된다는 점도 중국 와인 사업 육성의 약점으로 꼽힙니다. 여기에 더해 전문가 초빙 등을 감안한 추가 인건비 상승 문제도 눈 감을 수 없는 부분이며, 젊은 청년 근로자들을 포도 농장과 와인 산업에 끌어들여 꾸준한 와인 산업 육성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노력도 중국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중국 산시성의 한 포도 농장에서 가장 젊은 농부의 연령이 무려 62세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중국 청년들이 정부로부터 어떠한 큰 혜택을 약속받지 않은 한 대도시를 떠나 포도 농장을 스스로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현재 중국의 현실을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죠.
이처럼 치솟는 생산비용과 기후 문제 등으로 인해 일부 와이너리 소유자는 대대적인 투자를 오히려 재고하는 입장이 우세합니다. 한 중국 와이너리의 익명의 운영자는 또 다시 이전과 같은 와이너리 설립과 투자 기회가 자신의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면 재투자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결코 아니다. 와이너리를 설립하는 선택지 대신에 그저 와인 한 잔을 사서 즐겁게 마시는 데 그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