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추운 겨울 동안 먹을 김치, 깍두기, 동치미 등을 한 번에 많이 담가두는 일을 의미한다. 대부분 입동 전후에 마을 사람 내지는 온 가족이 모여 김치를 담근다. 꼭 내 것, 우리 것이 아니더라도 김장을 하는 곳이 있다면 찾아가 일손을 보태는 한국인의 정, 다시 말해 품앗이 문화도 엿볼 수 있는 게 김장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한국의 문화’
그래서일까?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김장의 정식 명칭에는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행위가 아닌 나누는 문화까지 깃들여있다. 나눔의 정신을 높이 산 것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여전히 그럴까?’하고 말이다. 예전과 달리 현대에는 혼자 사는 가구도 많을뿐더러, 김장은커녕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온 식구가 1년에 한 번 모이기도 힘들다. 김장을 하지 않더라도 식량의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으며 정말 김치를 먹고 싶을 땐 사 먹으면 된다.
하지만 데이터는 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농업관측센터가 내놓은 ‘2022년 김장 의향 및 김장채소류 수급 전망’을 보면 올해 김장 때 김치를 직접 담그는 비율은 65.1%로 작년보다 약 1.8% 증가했다. 측정 범위와 모수가 적기 때문에 유의미한 데이터인가는 좀 더 확인해야겠지만, 주변에 김장했다고 인증 사진을 올리는 친구들이 꽤 있는 걸 보면 지금까지 김장을 오해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나눔의 문화는 다소 희석된 듯하지만, 다행히 김장이란 문화는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직접 김치를 담그는 이유
김치를 직접 담그지 않는 이유 중에는 ‘힘들다’와 ‘사서 먹는 것보다 비싸다’라는 이유가 많다. 반대로 직접 담그는 이유에는 ‘입맛에 맞출 수 있어서’가 압도적으로 높다. 매일 먹는 식품이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것보다 가격에 민감할 수도 있지만, 역시나 매일 먹는 식품이기 때문에 기호와 입맛이라는 취향이 정말 중요하다. 김치는 가성비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나 또한 식당이나 급식에서 나오는 김치를 즐겨 먹진 않는다. 위생이나 원산지 이슈도 있겠지만 결국엔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김장의 역사: 식탁 위의 동반자가 되기까지
라면 하나 먹을 때도 필요한 게 김치이다. 그렇기에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한국인들에겐 다소 성스러운 영역일 수도 있다. 추운 겨울은 물론, 1년 내내 함께할 식탁 위의 친구를 만드는 일인데 분명 대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쯤 되니 김장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과연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김장을 했던 것일까?
김장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무는 장을 곁들이면 여름철 석 달간 먹기 좋고 소금에 절여 아홉 달 겨울을 대비한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김장이 존재하지 않았나 싶은 유추를 해볼 수 있다. 19세기 조선 후기에 쓰인 동국세시기에서는 김장이라는 단어와 함께 직접적인 언급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고려시대, 조선시대 김치의 모습과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김치의 모습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 차이는 대표적으로 고춧가루와 배추로 볼 수 있다. 김치하면 떠오르는 빨간색의 이미지는 고춧가루로부터 온다. 고춧가루의 전신인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유입됐다는 설이 유력한데, 당시에는 고추를 독초로 인식해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7세기에 소빙하기가 찾아오면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데에 사용해야 할 땔감을 난방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소금의 공급이 어려워지게 됐다. 김치에서 소금은 간을 맞추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소금이 귀해지면서 김치의 저장력을 유지할만한 대체재가 필요해졌는데 그때 사용한 것이 바로 고춧가루다. 그렇게 붉은색의 김치가 시작된 것이다. 김치에서 주연 역할을 하는 배추도 들여온 지 얼마 안 된 작물 중 하나다. 배추는 18세기 후반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왔으며 현재에는 우리 환경에 맞는 배추로 품종 개량하여 사용하고 있다.
김장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김장 문화가 사라지면 어쩌지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자료를 찾고, 글을 쓸수록 되려 김장의 단단한 뿌리를 알게 되어 괜한 걱정을 한 거였구나 싶었다. 그 형태는 바뀔지언정 김장의 추억은 앞으로도 계속 쌓아져만 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화된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는 김치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 김치전용 냉장고까지 만든 민족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