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여기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인다면, 으슬으슬 추위 따위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웬만한 술을 가리지 않는 필자지만,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만큼은 서너 잔을 넘기지 못한다. 희석식 소주에서 느껴지는 단맛 때문이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소주를 주문했는데 특유의 향과 단맛이 거슬려 소맥(소주+맥주)으로 만들어 마셨던 기억도 있다. 왜 소주에서 단맛이 날까?
증류주 개론(광문각, 2016)에 따르면 소주는 전분질 원료를 물과 누룩으로 발효하여 단식 증류한 증류식 소주와 연속식 증류기로 주정을 제조하여 희석한 후 조미한 것을 말한다고 한다. 후자인 희석식 소주의 경우 95도의 주정에 물을 희석해서 도수를 맞추고, 밋밋한 술에 감미료를 더 해 맛을 낸다는 의미다. 주변 사람들은 오늘 컨디션이 좋다는 얘길 술이 몸에 잘 받는단 말로 “오늘 이상하게 소주가 다네.” 에둘러 표현했지만, 실제로 희석식 소주에는 감미료가 들어가 있었다. 필자가 느꼈던 희석식 소주의 단맛은 감미료에서 나왔던 게 분명하다.
필자가 마셨던 첫 증류식 소주는 <안동소주>였다.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보다 도수가 높았지만, 한잔을 마셔도 입안에 남는 텁텁함과 탄 맛이 마치 뻥튀기를 먹고 난 후에 고소함이 후미에 남았다. 희석식 소주의 단맛이 싫어 소주를 마시지 않았던 분이라면, 증류식 소주를 마셔보자. 진짜 소주 맛에 놀랄 것이다. 단, 도수가 높은 데다가 시간과 정성으로 귀하게 빚은 술이니 보약처럼 천천히 한 두 잔 마시자.
108일간 발효를 시켜 증류한, 삼해소주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주인 삼해소주는 서울시 무형 문화재 8호, 식품명인 제69호인 김택상 명인이 빚는다. 삼해소주는 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렸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술이다. 삼해주는 석 삼(三), 돼지 해(亥)를 사용하는데, 이름에 양조 방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음력 정월 돼지날(해일)에 밑술을 담그고 36일 후인 2월 돼지날에 덧술을, 이로부터 36일 후인 3월 돼지날에 덧술을 첨가하고, 이로부터 36일 후인 4월 돼지날에 항아리를 개봉한다. 발효하는 데만 무려 108일이나 걸리니 정성이 가득 들어간 술이다. 이렇게 발효한 술은 소주의 원료가 되는 ‘술덧’이다. 오랜 기간 천천히 발효시키기 때문에 저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냉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겨울 한 철만 발효했다고 전해진다. 108일간 발효를 끝내면 탁주가 완성되는데, 여기에 맑은 부분인 약주를 떠서 증류를 거쳐야 삼해소주가 완성된다.
발효를 오래 하기 때문에 숙성은 거의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삼해소주의 맛과 향은 혀에 부드럽게 맴돈다. 오직 쌀, 물, 누룩 만을 사용한 삼해소주. 상압증류 방식으로 불의 향을 담은 묵직한 맛. 소주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용인’에서 빚는 프리미엄 소주, 미르모월 양조장에서 빚는 술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듯 정성이 가득하다. 술덧인 <모월 연> 약주는 원주에서 농사지은 토토미, 치악산과 백운산의 청정기슭에서 시작한 맑고 깨끗한 물, 전통 누룩을 원재료로 빚은 이양주로 발효와 숙성까지 걸리는 시간이 4개월 이상이다. 약주를 증류하는 과정도 엄격하다. 숙취 없이 깔끔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증류할 때 나오는 초류의 5%를 버리고, 후류에도 누룩취가 있다고 해서 30% 정도는 재증류하고 맛을 보고 다음에 사용할지 결정한다. 이렇게 깐깐한 과정을 거친 <모월 인>은 깨끗한 향과 맛이 나며 숙취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