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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독일은 ‘맥주’다. : 뮌헨 옥토버페스트

가을의 독일은 ‘맥주’다. : 뮌헨 옥토버페스트

신동호 2016년 10월 25일

유럽 여행을 하기 전, 내게 맥주는 기네스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돈을 내고 사 먹는 맥주가 기네스, 어쩌다가 칼스버그였다. 칼스버그는 맛보다는 덴마크란 나라의 충성도가 높아서 관심도에 이끌린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기네스 맥주는 진정한 맛으로 내 기호식품 반열에 올렸다. 유럽에 도착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은 ‘맥주의 종류’였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온 이유가 순전히 기네스 맥주였는데, 처음에는 아일랜드에서 기네스 맥주만 생산하는 줄 알았다. 그 생각이 부끄러울 정도로 지역마다 생산하는 맥주가 즐비하다. Off-Licence(허가를 받은 주류판매점) 매장에 가면, 아일랜드 맥주뿐만 아니라 유럽의 맥주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더블린 생활 초반 홈스테이를 하던 시절, 어학원을 다녀온 후 할 일이 뚜렷하게 없어서 맥주를 3병씩 사와 시음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아일랜드 맥주 위주였다가, 이후에는 독일 맥주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처음 사서 먹었던 독일 맥주가 프란치스카너 Franziskaner weiss beer 밀맥주였다. 그때의 설익은 평을 옮겨본다.

“Franziskaner’s weissbier products는 두 종류가 있다. Hefe-Weisse Hell and Hefe-Weisse Dunkel이다. 두 맥주 모두 기분 좋은 탄산과 후추 밀 맛을 내는 훌륭한 발효 맥주다. 모든 Franziskaner weiss beer는 1516년 바이에른 순도법을 지키며 양조하고 있다. 특유의 부드러움이 마치 크림 같고 진한 효모 향과 초콜릿 향이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스미딕스 페일 에일과 비슷한 맛과 비주얼이 나는 걸로 느꼈다.”

 

[사진 001] 더블린 홈스테이하면서 처음 접했던 독일 맥주 프란치스카너 Franziskaner weiss beer

[사진 001] 더블린 홈스테이하면서 처음 접했던 독일 맥주 프란치스카너 Franziskaner weiss beer


축구를 제대로 한번 보려면 월드컵 경기장을 찾듯, 독일 맥주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려면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 현장에 가야 한다. 전 세계 ‘맥덕’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곳,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에 시작해서 총 16일간 약 700만 명이 이 축제를 방문한다. 말로만 듣던, 그 웅장함을 경험하고자 바가지요금은 감수하기로 했다. 평소 1박에 25유로 하는 호스텔 비용도 이 기간만큼은 50유로 혹은 100유로까지 치솟는다. 별 생각 없이 예약을 하지 않고 뮌헨에 왔다면, 그 이상의 비용이 다음 달 카드 명세서가 찍힌다.

[사진 002] 옥토버 페스트 현장 안은 숨쉴 틈도 없다.

[사진 002] 옥토버 페스트 현장 안은 숨쉴 틈도 없다.


뮌헨 시내에서 옥토버 페스트 현장까지는 걸어서 갈 거리다. 이곳은 테레지엔 비제 Theresienwiese, 놀이동산과 비어 텐트(16종류)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보통 이 텐트는 아침 10:30에 문을 여는데, 텐트 안 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1시간 전에는 줄 서는데 동참해야 한다. 사전 예약을 하면 좀 더 아침이 편하다. 텐트 안은 제한 인원이 있으므로, 보안 요원들이 일정한도가 지나면 텐트 출입을 막는다. 그리고 일정 인원이 퇴장하면 그만큼을 들여보내 준다. 결국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즐길 전략이 필요하다. 모든 텐트를 다 가보겠다는 원대한 꿈은 접고, 선택과 집중을 권고한다.

 

[사진 003] 보안요원이 텐트 밖에서 인원을 통제한다.

[사진 003] 보안요원이 텐트 밖에서 인원을 통제한다.


약 5,000,000ℓ. 옥토버 페스트 기간에 소비되는 맥주의 양이다. 몰리는 손님들과 스태프들도 어마어마하리라 추측된다. 텐트 안에 들어가면,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는 광경들의 연속이다. 앉을 자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겠고(그래서 아침 일찍 줄 서서 기다린다는), 앉아도 정말 좁게 겹쳐서 앉아야만 한다. 나는 결국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건 포기하고, 적당히 서서 맥주를 주문해 마시기 시작했다. 가끔 도발해오는 독일인들이 있다. 나랑 원샷 대결을 하자고. 사실 난 맥주를 빨리 마시지 못하는 편이지만, 일단 자존심 때문에 도전을 받아들인다. 옥토버 페스트용 잔은 ‘마스’라고 불리는 1ℓ 짜리 맥주 잔이다. 단단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잔의 무게만 해도 2.3kg이라고 한다. 그런 잔을 여기서 서빙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인데, 양손에 8개씩 들고 서빙을 한다. 가격은 1ℓ에 10유로로 다소 비싼 가격이다. 무대 중앙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곡을 연주하는 밴드가 있다. 연주하다가, 독일의 승전가(?)가 나오면, 독일인들은 모두 일어나 합창을 하고 건배를 하는데, 며칠 동안 하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면서 옆자리 독일인과 잔을 마주쳤다.

 

[사진 004] 텐트 한가운데 밴드가 자리하고 있어서, 흥을 돋운다.

[사진 004] 텐트 한가운데 밴드가 자리하고 있어서, 흥을 돋운다.


축제 기간에 스태프들은 모두 독일 전통 의상을 입고 일한다. 독일인뿐 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이 독일 문화의 일종인 전통의상을 입고 즐긴다. 남성용 의상을 레더호젠 Lederhosen이라 하고, 여성용 의상을 드린딜 Drindl이라 칭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에 ‘레더호젠’ 단편이 실려있다. 레더호젠 Lederhosen은 알프스 지역의 남성전용 전통의상으로써, 멜빵이 달린 가죽 형태의 반바지와 가죽 장화를 신는다. 드린딜 Drindl은 ‘어린 소녀’라는 뜻의 바이에른 방언이며 처음에는 하녀의 복장이었다가 19세기 말에 상류층의 복장으로 바뀌었다. 복장 구성을 보면, 가슴을 강조한 네크라인이 강조된 하얀색 블라우스와 상체를 조일 수 있는 코르셋 형태의 조끼와 폭넓은 치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치마 앞에 앞치마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앞치마에 리본이 있는데, 매듭이 오른쪽으로 묶여 있으면 배우자나 약혼자가 있다는 표시이고, 왼쪽이면 미혼이라는 뜻으로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옥토버 페스트 기간에는 거의 유니폼과 다름없다. 이 전통의상은 길거리 상점부터 백화점까지 판매하며, 상품의 질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옷감의 재질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특히 가죽이 좋을수록 비싸다. 그리고 여성들의 의상이 매년 과감해진다. 한때 정체되었던 축제의 흥행을 위해서라는데… 또 다른 볼거리(?)라 할 수도 있다.

[사진 005] 독일의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관광객들

[사진 005] 독일의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관광객들


모든 것이 문화적 충격이다.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맥주 문화의 파급력에 부럽기 까지 하다. 독일 맥주는 ‘맥주 순수령’으로 유명하다. 1516년, 맥주 원료의 통일과 맥주의 품질 향상을 꾀하기 위해서 보리(맥아), 홉, 물, 효모 외에는 어떠한 원료도 맥주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법령을 제정 공포하였는데, 이 공포령이 바로 ‘맥주 순수령’이다. 물론 이후 밀의 첨가를 허용하여, 밀맥주 하면 독일이라는 대명사격 칭호가 생겨났다. 이를 보면서, 우리 전통주도 뭔가 통일된 재료를 채택하거나 주질의 고급화와 함께 우리 술의 인식을 업그레이드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

[사진 006] 어마어마한 맥주잔 ‘마스’.

[사진 006] 어마어마한 맥주잔 ‘마스’.

군중 속에서 나와, 뮌헨 시내로 걸어 나왔다. 뮌헨 마리엔 광장을 지나 구 시청 근처에는 대규모 비어홀이 있다. 뮌헨에서 가장 큰 홀을 자랑하고 있는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찾았다. 명성이 걸맞게 인산인해. 그래도 자리를 잡아 호프브로이 맥주를 주문했다. 먼저 시킨 맥주는 둥켈과 호프브로이 오리지널 맥주. 둥켈 맥주는 흔히 흑맥주로 불리는 스타우트, 포터 맥주가 아니고, 하면발효를 한 라거 맥주다. 둥켈은 독일어로 ‘어두운(dark)’을 뜻한다. 오리지널 맥주는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인 헬레스 Helles 맥주다. 밝은 노란색을 띠며, 달콤한 몰트향을 느낄 수 있어서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맥주라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맥주 라들러 Radler. 라들러는 독일 남부지방에서 즐겨 마시는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혼합한 맥주다. 다른 독일 맥주에 비해서 도수가 낮아서 여성들이 주로 찾는 술이다. 옥토버 페스트 현장에서 나오는 술은 여기 비어홀의 맥주보다 약 5% 정도 알코올 도수가 높다. 높아진 취기를 라들러로 달래줄 필요가 있다. 둥켈라들러는 둥켈과 라들러를 블랜딩한 맥주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맥주가 베스트다. 레몬 향과 둥켈의 청량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옥토버페스트 현장보다는 맥줏값이 3/4 정도 한다. 사실 독일은 맥주가 물만큼 저렴한 국가다.

 

[사진 007] 어느 테이블 할 것 없이 건배를 외친다.

[사진 007] 어느 테이블 할 것 없이 건배를 외친다.


오늘의 마지막 곳으로 이동한다. 아우구스티너 비어홀. 정말 여기가 마지막이란 약속이 지켜질지 의문이지만. 바이스비어 Weiss bier를 시켰다. 시큼하고 쌉쌀한 맛이 일품인 바이스비어는 ‘흰 맥주’라는 뜻이며, 보리의 맥아를 주재료로 하는 일반 맥주와 달리 밀의 맥아가 50% 정도 포함돼 있어 보통 맥주보다 밝은색을 띈다. 솔직히 독일에서 가장 반한 맥주는 바로 이 밀맥주였다. 특히, 아직 여과하지 않은 밀맥주는 시큼하면서도 풀바디의 텁텁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막걸리도 거친 밀 막걸리를 선호하는데, 비슷한 이유에서다.

[사진 008] 아우구스티너 비어홀에서 마신 맥주. 바이스비어와 헬레스비어

[사진 008] 아우구스티너 비어홀에서 마신 맥주. 바이스비어와 헬레스비어


독일 속담에 ‘맥주는 양조장 굴뚝이 보이는 곳에서 마셔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독일 전역에는 약 1,300개의 맥주 양조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전 세계의 1/3의 규모라고 한다. 각 지역마다 맥주가 있기에, 독일인들은 그 지역의 맥주를 마시는 게 어쩌면 속담처럼 당연한 거 일지도 모른다.

[사진 009] 흥을 춤으로 승화하는 커플

[사진 009] 흥을 춤으로 승화하는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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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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