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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찾아내는 아로마, 나는 왜 못 찾을까?

친구는 찾아내는 아로마, 나는 왜 못 찾을까?

조나리 2021년 9월 6일

“어떤 아로마가 느껴지나요?” 2018년 여름, 친구와 보르도에서 WSET 수업을 듣던 나는 테이스팅 시간에 어김없이 날아오는 선생님의 이 질문이 조금 두려웠다. 뉘앙스 정도는 알겠지만 세부적인 아로마를 구별해낼 자신이 아직 없었고, 어쩌다가 식별되는 아로마가 있을 때도 괜히 나서서 엉뚱한 답을 말해 망신을 살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함께한 친구는 나보다 후각과 미각이 예민한 편인 데다 시음 경험도 풍부했기에 내가 느낀 걸 친구는 모르겠다고 하면 ‘아, 내가 틀렸구나.’하며 자꾸 엉뚱한 냄새만 맡는 내 코를 원망했다.

그런데 내 코는 왜 가끔 친구가 못 맡는 냄새를 감지하고, 또 가끔은 친구가 짚어내는 아로마를 놓치는 걸까? 누구의 코와 혀가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있긴 한 걸까?

후각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뇌는 생각보다 잘 속는다. 우리는 와인 잔을 코로 갖다 대면서 냄새를 맡는다고, 와인을 입안으로 흘려 넣으면서 맛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이미 받아들인 시각적 정보와 배경지식을 총동원해서 그 향과 맛을 판단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2감각 통합 연구소(Crossmodal Research Laboratory)를 이끄는 찰스 스펜스는 3천 명의 피험자에게 검은 잔에 담긴 레드 와인을 주고 하얀색 조명, 붉은색 조명, 녹색 조명 아래서 마셔보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와인 전문가를 포함한 참가자의 15~20%가 조명에 따라 와인의 과실 아로마와 신선함을 다르게 묘사했고, 선호도 또한 달라졌다.

같은 와인을 다른 와인병에 담아 서빙하면 고급 와이너리의 레이블이 붙은 병에서 나온 와인을 마실 때 테이스터의 뇌가 더 활발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 가지 와인을 다른 환경에서 테이스팅한다면, 또 와인에 대해 서로 다른 사전 지식을 갖고 있다면, 같은 와인에서 다른 향과 맛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유전과 환경의 차이

그러면 같은 와인을 같은 방식으로 서빙했을 때조차 각기 다른 아로마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유전적인 차이에서 그 까닭을 찾아볼 수 있다. 김밥에서 오이를 골라내다 ‘어린애처럼 군다’ 혹은 ‘꼴사납다’는 핍박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오이 향을 싫어하는 데 유전적 이유가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쾌재를 불렀을 터. 인간이 가진 냄새 수용체의 종류는 400가지인데 그중 3분의 1 정도는 그 민감도가 사람마다 각기 다르고, 그 때문에 같은 냄새 분자도 다르게, 혹은 강하거나 약하게 느낄 수 있다.

와인의 특정 아로마를 누구는 잘 감지하고 누구는 놓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르 몽드>에 와인 칼럼을 기고하는 와인 전문가 오펠리 네만은 자신이 베타이오논을 감지할 수 없는 50%의 인구에 속하기 때문에 제비꽃 아로마를 구분해 내기 어렵다고 고백한 바 있다(모든 제비꽃 아로마를 식별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베타이오논으로 인해 나타나는 제비꽃 아로마의 경우에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국 사람에겐 낯선 과일, 블랙커런트]

사회문화적인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태어나서 블랙커런트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와인에서 블랙커런트 향을 구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두 번 냄새를 맡거나 먹어본 적이 있을지라도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블랙커런트를 먹으며 자란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와인을 공부하는 이들이 자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과일을 보면 코부터 갖다 대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꼭 익숙한 향기만 강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다. 테이스터가 평소 거부감을 가진 냄새 역시 빠르게 포착된다. 빵에 박힌 건포도를 전부 골라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와인에서 건포도 아로마를 남들보다 쉽게 찾아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슈퍼테이스터들은 짠맛은 더 짜게, 신맛은 더 시게, 단맛은 더 달게 느낀다.]

슈퍼테이스터의 고충

이제 후각에서 미각으로 넘어가 보자. 혀에 분포하는 미뢰의 숫자는 사람마다 다르고, 미뢰가 많을수록 맛을 강렬하게 느낀다. ‘6-n-프로필티오유라실’이라는 약물을 흡수한 필터지를 혀 위에 올려두면 25%의 미국인들은 아무 맛을 느끼지 못하고, 50%는 쓴맛을 느끼며, 나머지 25%는 끔찍할 정도로 강렬한 쓴맛을 느낀다. 이 마지막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미뢰가 많은 슈퍼테이스터들이다. 물론 쓴맛만 강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슈퍼테이스터들은 짠맛은 더 짜게, 신맛은 더 시게, 단맛은 더 달게 느낀다.

맛을 강렬하게 느끼면 남들은 못 찾는 맛을 쉽게 감지할 테니, 와인 테이스팅에서도 유리하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지나치게 강한 맛은 불쾌하게 느껴지기 쉽고, 때문에 슈퍼테이스터들 중에는 와인 자체를 즐기기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다. 타닌과 신맛이 강한 이탈리아 와인이라면 테이스팅이 고통에 가까운 경험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쓴맛에 민감하므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 역시 마시기 어렵다. 실제로 슈퍼테이스터는 알코올음료를 적게 마시는 경향이 있고, 논테이스터(필터지에서 쓴맛을 아예 못 느낀 그룹)들은 알코올 중독이 될 확률이 다른 그룹보다 높다고 한다.

그러니까 친구와 내가 하나의 와인에서 다른 아로마를 느끼는 건 유전적 특성과 자라온 환경, 선입견과 배경지식, 다른 감각의 개입 등 다양한 원인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어떤 아로마는 내가, 또 다른 아로마는 친구가 더 잘 찾아내는 것도, 좋아하는 와인의 스타일이 사람마다 다른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물론 작은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은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고 와인 전문가가 되려면 이런 차이를 객관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남들이 다 좋다는 와인이 나는 별로라고 해서, 당장 친구는 찾아내는 아로마를 나는 못 느꼈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모넬 케미컬 센시즈 센터(Monell Chemical Senses Center)의 디렉터 보샹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유전적 특성과 경험을 받아들이세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감각적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즐기는 것을 즐기고, 남이 뭘 음미하는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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