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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병 소주 시장, 누가 ‘초’를 친 걸까?

초록병 소주 시장, 누가 ‘초’를 친 걸까?

이재민 2023년 2월 23일

초록병 소주가 사라지고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색·투명한 소주의 열풍이 매섭게 불고 있다. 이쯤 되면 ‘초록병 소주’로 총칭하기도 무색할 정도다. 이들은 왜 소주병을 가만 놔두지 않는 것일까?

초록병 소주만의 세상

가만 놔두지 않는 것도 맞지만, 사실 소주 ‘병’에 다들 예민한 게 더 맞는 말 같다. 그렇다고 이유 없는 예민함은 아니다.

2009년, 우리나라 소주 제조사 사이에서 하나의 협약이 만들어졌다. ‘소주 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이란 것인데, 쉽게 말하자면 소주병의 규격을 통일화하는 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360ml의 초록색 소주병이다. 이들은 왜 자발적으로 소주 공병 공용화를 추진했던 것일까? 그 이유에는 2가지가 있다.

[[ 환경보호와 비용 절감 ]]

소주 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은 제조사는 총 10곳이다. (환경부까지 포함하면 11곳) 이 중 ㈜롯데주류BG, ㈜한라산, 보해양조(주)를 제외한 7곳은 이미 같은 규격의 병을 사용하고 있었다. 동시에 소주병은 기름이 묻어 있거나 심각한 오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세척 후에 재활용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타사 공병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재활용을 못 하도록 일부로 오염을 많이 시키는 사례도 있었고, 경쟁 과열로 새로운 병을 출시하는 등의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각 회사들은 자사의 소주병도 잘 회수하지 못해 매번 새로운 병을 구해야만 했다. 세금을 제외한 소주 원가는 450원. 이 중 150원이 병값이다. 반대로 병을 세척하는 비용은 50원밖에 들지 않는다. 병 회수와 재활용만 잘하게 된다면 병을 새로 만들고 사들일 필요가 줄어드니 결과적으로 환경보호와 비용 절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연간 2.5억병 생산비용 절감과 잣나무 1,050만 그루를 심은 만큼의 탄소 배출량 저감이란 효과를 나타내는 소주 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이 이뤄진 것이다.

[투명병의 진로이즈백 / ⓒ 하이트진로]

소주병 깨지는 소리

협약은 딱 10년째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하이트 진로는 뉴트로 열풍에 맞춰 1975~1983년에 출시했던 진로 소주의 병 모양과 뚜껑 색을 재현한 ‘진로이즈백’을 시장에 선보였다. 문제는 옅은 푸른색과 기존 초록색 병과는 다른 병 모양을 가진 진로이즈백을 타사에서는 재활용할 수 없었고, 이는 그동안 지켜오던 소주 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과는 맞지 않는 행위라며 소주 제조사 사이에서는 공방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형병(규격에 맞지 않은 병)을 사용한 진로이즈백의 성공 신화는 소주병에 다양성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좋은데이 1929, 금복주 독도소주, 롯데칠성 새로, 마치 기다렸단 듯이 새 옷을 입은 소주들이 출시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형병의 회수가 어려워 재활용률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환경에 많은 부담이 갈 것이라고 바라보는 측면도 있는데, 하이트 진로 측은 공병 회수율이 85~90% 달하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주병 = 초록색 병, 공식의 시작

진로이즈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소주병은 원래 투명하거나 옅은 하늘색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94년에 출시된 초록색 병의 그린소주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다른 소주 업체들 또한 소주병 대부분을 초록색 병으로 바꾸게 됐는데, 그렇게 소주병 = 초록색 병이라는 공식이 생기게 됐다. 하지만 정작 협약에서 360ml의 초록색 병의 기준이 된 건 판매량 1위인 ‘진로’였다고 한다.

[크라운 캡을 사용하는 강릉소주 / ⓒ 술담화]

첫 잔을 버리는 이유

병 색깔만큼이나 알게 모르게 바뀌어온 것이 바로 소주병의 뚜껑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주병에는 코르크 마개와 크라운 캡(왕관 모양의 병뚜껑)을 사용했다. 사람들이 소주의 첫 잔을 버린 이유도 뚜껑과 연관이 깊다.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 시절에는 코르크 마개의 찌꺼기가 둥둥 떠다녔는데 이를 제거하기 위해 첫 잔을 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82년 대선주조가 소주 업계 최초로 스크류 캡을 도입하면서 코르크 마개와 크라운 캡의 소주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

스크류 캡은 녹슬지 않아 위생적이고, 맥주와 달리 도수가 높은 소주는 개봉 후에 재밀봉의 가능성이 높은 상품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많은 소주 제조사에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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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음식과 술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전통주 큐레이터'이자 팟캐스트 '어차피, 음식 이야기' 진행자, 이재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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