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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여성에 의한, 그러나 모두를 위한 와인 이야기

여성의, 여성에 의한, 그러나 모두를 위한 와인 이야기

노지우 2021년 4월 20일

오늘은 와인 업계의 한 획을 그었던 여성 생산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전 세계 와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성별을 떠나 와인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 여러분께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이라 약속드립니다.

주로 남성 위주의 경제활동으로 돌아갔던 1700-1800년대 서구 문화사에서, 샴페인 시장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두 여성이 있으니, 바로 바브 니콜 퐁사르당(Barbe-Nicole Ponsardin)과 루이스 포므리(Louise Pommery)입니다.

바브 니콜 퐁사르당은 1777년 프랑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규수였습니다. 21살에 프랑수와 클리코(François Clicquot)와 결혼한 지 6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고, 남편이 설립했던 샴페인 생산 회사를 대신 경영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의 시작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그녀는 그간 빈티지 개념이 없었던 샴페인에 처음으로 작황이 좋은 포도를 선별해서 1810 빈티지의 샴페인을 만들었고,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블렌딩한 로제 샴페인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었죠. 덕분에 샴페인은 유럽 전역의 왕실은 물론 러시아 귀족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술로 등극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침전물을 걸러 투명하고 아름다운 색의 샴페인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인 리들링과 데고르주멍을 고안해 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가히 샴페인 역사의 시초를 닦았던 여성이라고 불러도 충분한 그를 기리기 위해 뵈브 클리코에서는 ‘위대한 여성’이라는 뜻을 담아 라 그랑드 담(La grande Dame)이라는 샴페인도 내고 있답니다. 실제로 ‘뵈브'(Veuve) 라는 뜻도 남편을 일찍 잃은 미망인이라는 뜻에서 클리코 앞에 붙였다고 하니,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1700년대에 바브 니콜 클리코가 있다면 1800년대에는 루이스 포므리가 있습니다. 1839년 알렉산더 포므리(Alexandre Pommery)와 결혼한 그녀는 1960년 남편이 죽고 그의 샴페인 사업을 맡게 되죠.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 중 원활하지 않던 양모 사업을 팔아버릴 정도로 결단력이 남달랐던 그녀는, 기존에 당연시되던 ‘달달한 샴페인’의 맛을 바꿔버리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침전물 처리 과정을 거친 샴페인의 줄어든 용량 보충을 위해 와인과 당분을 첨가하던 ‘도사주’작업을 과감히 줄여 Brut 단계의 달지 않은 샴페인을 1874년 처음 만들어 냈죠. 이런 그를 기리기 위해 아직도 포므리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Louise Pommery’ 샴페인을 내고 있답니다.

그 뒤를 잇는 여성은 바로 안토니아 페레이라(Dona Antónia Adelaide Ferreira)입니다.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그녀는 포트 와인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줄 수 있게 힘쓴 와인 메이커이자 사업가였죠. 물론 그녀도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포도밭이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업적이기는 합니다만, 생을 마감하며 30개에 달하는 포도밭을 남겼다고 하니 경영 능력을 직접 입증한 셈입니다.

실제로 페레이라가 세운 혁혁한 공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시 포도밭을 잡아먹던 필록세라를 이겨낼 수 있는 기술을 영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입니다. 덕분에 포르투갈에서 직접 수확한 포도로 만든 포트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20세기로 넘어와 드디어 신대륙, 미국의 최초의 여성 와인 메이커로 회자되는 이자벨 시미(Isbabelle Simi)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80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아버지의 와이너리를 물려받은 이자벨은 1920년부터 1933년까지 계속되었던 미국의 금주법 시행 기간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습니다. 와인밭을 팔아가며 그 시간을 몸으로 잘 버텨낸 그는, 금주법이 끝난 후 저장해 두었던 와인을 풀어 판매하는 큰 손이 되었죠. 당시 소노마 카운티의 256개 와이너리 중 206개가 문을 닫았다고 하니, 미국 최초의 여성 와인 메이커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시기를 잘 견뎌낸 오너로서도 충분히 인정받을만해 보입니다.

이렇듯 여성은 와인 역사의 여러 페이지에서 그 존재감을 꾸준히 드러내 왔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아직 와인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의 차는 큰 편입니다. 산타클라라 대학의 루시아 알비노 길버트와 존 길버트가 펴낸 Women Winemakers라는 책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4천 개가 넘는 와이너리 중 10%만이 여성 헤드 와인 메이커를 보유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성이 보유하고 있는 와이너리는 4% 남짓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꾸준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Meet Five Women Who Are Changing the World of Winemaking in Bordeaux” (보르도 와인 양조의 세계를 바꾸고 있는 다섯 명의 여성들) 기사 사진]

실제로 2011년 4월에는 알자스 와인 업계의 여성 50여 명이 모여 DiVINes d’Alsace라는 여성 와인 생산자 협회를 만들었고, 와인에 대한 열정으로 연결된 여성들의 협회인 Women Do Wine도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구글에 ‘Female Winemakers’를 검색하면 매년 업데이트되는 훌륭한 여성 와인 메이커들의 수상작도 볼 수 있습니다.

장담하건대 와인을 만들고 즐기는 일에 있어서 성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와인이라는 문화를 닦아 나가는 일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닌, 멈추어 썩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일 테지요. 그렇기에 늘어나는 여성 와인 생산자들이 와인 업계에 불어넣을 변화의 바람이 기대되는 바입니다. 그 변화가 마시자 매거진 독자 여러분들의 테이블에도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며, 오늘도 San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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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우

“사고(buy) 사는(live) 것을 사랑하는 소비인간. 와인 소비의 즐거움에 빠져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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