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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 전통주의 매력에 빠지다.

신토불이 – 전통주의 매력에 빠지다.

Rachael Lee 2019년 7월 24일

여행을 좋아하고 또 와인을 사랑하는 에디터는 국내 여행을 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지방의 일반 음식점을 가게 되면 메뉴판에 없는 와인. 여행 짐을 쌀 때 중요한 물품이 다른 걸 다 제치고, 와인 몇 병에 와인오프너, 와인잔 이렇게 한 세트를 챙겨야만 집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내가 믿고 있는 식도락의 지론은 “현지 음식에는 현지 와인을!” (Local food, Local wine!)인데 한국 음식을 먹을 때조차 와인을 마신다는 건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다. 와인 애호가인 에디터의 마음 한구석에 늘 남아 있는 일말의 죄책감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한식과 와인의 페어링은 쉽지 않다. 주변에서 종종 묻는 “한국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이 뭐죠?”라는 질문에 “좀 매운 걸 드신다면 쉬라나 리슬링이 좋고, 고기를 드신면 나파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좋을 것 같아요.” 라는 판에 박힌 대답 또한 영혼없는 대응이 주를 이루니 말이다.
이렇게 항상 마음 속에 불편한 느낌이 있던 에디터는 어느 지방 여행 중 맞닥뜨린 전통주를 계기로,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통주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못 본, 현지에서 제조된 술이라는데 한식과 곁들여 마셔보니 그 조화가 범상치 않았다.

보성의 한 식당. 식당 메뉴판을 읽다가 ‘청와대 만찬주’라는 글귀가 흥미로워 주문한 부안 오디뽕 과실주. 산뜻한 과실 풍미, 적당히 상큼한 산도로 인해 담백한 녹돈 (녹차 분말 가루를 사료에 혼합하여 돼지에게 먹여 만든 고기)과 잘 어울린다.

(사진 2: 강원도 속초 막석 닭강정과 인제 곰배령 옥수수 막걸리)

속초 에어비앤비 집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추천받아 마시게 된 곰배령 막걸리. 속초에 왔으면 꼭 마셔봐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하셨다 강원도 찰옥수수가 들어가 일반 막걸리에 비해 적당한 당도와 바디감이 있고, 이 때문에 매콤하고 끈적한 닭강정과 잘 어울린다.

(사진 3: 지리산 사찰음식점에서 맞본 동동주와 나물밥)

지리산 아래 사찰 음식점에서 맛본 동동주. 동동주의 감칠맛으로 인해 각종 나물, 산나물 비빔밥과 잘 어울린다. 고기 한 점 없는 채소 위주, 간도 세지 않는 슴슴한 맛에 경쾌함을 부여한다고 해야할까. 아이러니 하게 사찰음식에 술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호기심이 생기다 보니 전통주 시음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보통 많이 알려진 한국술 이름 이외에, 생각보다 전국 곳곳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전통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림 1: 전통주 지도 – 막걸리와 민속주)

전통주에는 탁주, 약주, 소주, 전통와인 (과실주) 등 다양한 술이 존재하며, 무엇보다 국산 쌀과 누룩 또는 지역 특산 과일로 발효하여 만든 것이 전통주의 매력이겠다.

탁주(濁酒): 가장 역사가 깊은 전통주로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막걸리가 탁주의 한 종류이다. 누룩을 이용해 탁하게 빚은 술로 빛깔이 탁해서 탁주, 색이 희어서 백주(白酒), 농민들이 마신다고 해서 농주(農酒)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약주(藥酒): 술독에서 거름망으로 거르거나 맑은 부분을 떠서 만드는 맑은 술이라는 뜻으로 청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탁주에 비해 얻어지는 양이 적고 특유의 풍미가 있어 고급술로 간주되며, 과거 양반들이 먹는 술이었다고 한다.
소주(燒酒): 약주를 끓여 증류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맑고 독한 술로, 호사스러운 고급 술이다. 고려 화시대, 원나라에서 전래된 증류방법에 그 시초가 있으며 불로 끓여냈다고 하여 소주(燒酒)라고 불린다. 전통방식으로 증류된 소주는 원료의 풍미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으나, 현재 일반적으로 마시는 대량 생산 소주는 화학 증류 방식으로 희석한 무색무취의 술이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소주는 한자 명칭도 ‘燒酎’로 다른데, 이는 ‘酒’의 뜻이 ‘군물을 타지 않은 진국의 술’을 뜻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일제강점기하에 전통주의 발전이 단절되었으며, 전통 가양주 문화가 말살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전쟁 및 빈곤했던 시절의 식량난과 쌀 소비 억제를 이유로 가양주 제조는 계속 금지되었고, 전통주의 대중화는 근래 1980년대 들어서야 무형 문화재 지정 등으로 활성화되었다. 아직까지 전통주를 접하기 힘든 이유,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가 한국 근대사의 아픈 상처와 맞닿아 있었다.
필자와 같이 전통주에 대해 보다 이해하고 접하고 싶은 독자는 지방 곳곳에 있는 양조장을 방문하기는 힘들겠지만, 서울에 있는 전통주 갤러리를 방문하기를 추천해 본다. 매월 몇 가지 종류의 전통주 시음도 가능하고, 전통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배워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사진 6 – 전통주 갤러리)

전통주의 매력에 일단 빠지게 되면, 지방 양조장 방문도 한번 해봄 직하다. 시간이 문제지, 에디터는 주말 하루 비워 꼭 양조장 방문을 한번 해보고 싶다. 해외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기행이 될 테니 말이다.

내가 와인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의 비스트로에서, 이태리 노천카페에서 여유 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와인 한 잔을 현지 음식과 먹었을 때 느낀 여유로운 기분 때문이다. 근래 모던 한식당에서는 전통주와의 페어링 된 코스가 많이 일반화 되긴 하였지만, 한국에서, 한국이니까 굳이 파인 다이닝 한식당이 아니라도 편안한 “밥집” 에서도 어울리는 전통주 한 잔 찰지게 반주로 마실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 많은 전통주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오로지 소주와 맥주만이 우리 술의 대표 이미지는 아닌데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와인짐을 싸가는 수고는 과감히 버리고, 여행지 주변 지역에 어떤 지방 특산물을 활용한 우리 술이 만들어지는 지 한 번 찾아볼 생각이다. 그와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지방 음식도 있을 텐데, 이런 걸 찾아내는 게 여행의 소소한 작은 기쁨이 될 것 같다. 옛 어른들이 달리 신토불이를 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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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ael Lee

Life, world, contemplation, and talk through a glass of wine 여행과 예술을 사랑하는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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